내가 아들이 둘 있어.
큰 녀석은 이번에 대학 들어갔어. 여름 방학 내내 막일을 뛰더니 도보 여행을 다녀오더군. 강원도를 돌고 왔대.
내년에는 자기 손으로 돈 더 벌어서 해외 여행을 간대. 기특하더라구. 군대는 꼭 장교로 복무할 거래.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자기는 그 정도 수준이 된다고 하더라.
둘째는 고등학생인데 공부를 곧잘 해. 하여간 형제가 머리는 지 엄마 닮아서 똑똑해.
누구 집 아들은 방안에 틀여 박혀 오타쿠로 지낸다고 하는데, 우리 아들은 잘 자라준 게 고마울 뿐이지. 솔직히 든든해. 살아오면서 지 부모 크게 속 썩이지 않았고.
지금 사는 아파트가 42평이야. 이거 장만하고 아들 둘 키우면서 마누라랑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일했어.
내 직업이 뭐냐면 배관공이야. 한강은행 청경 그만두고 건설업체에서 막일 뛰다가 아는 기술자를 만나 이 일을 배웠어. 쉽게 말하면 건물 상하수도 막히거나 누수가 되면 고쳐. 변기나 세면대로 그렇고.
주로 파이프가 휘어지는 부분에 찌꺼기 끼는 경우가 많아.
배관이 막히면 우선 스프링 관통기를 돌려. 만일 안 뚫리면 물 빼내고 화공 약품을 넣어. 그래도 안 뚫리면 배관을 잘라서 교체해야 돼. 천장 위나 건물 틈새에서 혼자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
아마 이렇게 되려고 그때 내가 고 주임이랑 관리실 하수구를 뚫었는지도 몰라. 이 직업과 인연이 있으려고.
서른 살 되기도 전에 내 사업체를 냈어. 배관기술을 가르쳐주던 분이 사업을 접었거든. 내 이름으로 대표 명함을 찍고 물려받은 거지. 주로 동두천 양주 지역이 관할권이었어.
사무실을 차린 다음에 전단지부터 돌렸지. 건물마다 스티커도 엄청 붙이고. 그렇게 뿌린 다음에 항상 트럭에 연장 싣고 기다렸어. 연락이 오면 당장 달려가서 고쳐줬지.
주로 건물 관리실을 상대하니까 로비도 잘해야 했어. 어디를 가나 고 주임 비슷한 인간은 꼭 있더라고. 밥 사달라고 하고, 떡값 달라고 하고, 그런 놈은 비위 맞추기가 정말 힘들었어.
처음에는 직원을 채용할 돈이 없어서 마누라를 조수로 데리고 다녔어. 마누라도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나서기는 했는데, 첫날 작업복을 입은 그녀를 보는 순간 가슴이 울컥하는 거야.
내가 이 고생을 시키려고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죽어라 쫓아다녀서 결혼까지 했나? 정말 미안해서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어.
내색은 할 수 없었지. 사다리 놓고 천장 점검구로 올라가서 물 새는 배관을 살피다가 어떤 연장을 달라고 하면 이 여자는 뭐가 뭔지 모르는 거야. 상황은 급해 죽겠는데 밑에서는 비시시 웃고 있으니 속이 안 터져?
많이 야단치고, 돌아오는 길에 트럭에서 싸우기도 하고. 집에서 며칠 동안 대화를 안 한 적도 있어. 내가 따로 직원을 구할 테니 너는 살림만 해라 하면 꼭 자기가 조수 한다고 나서는 거야. 직원 월급 주는 게 아까운 거지.
경력을 쌓으니까 마누라는 연장 명칭도 다 외우고. 어지간한 작업은 혼자 하게 되더라. 첫애 가지면서 그만뒀다가, 둘째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다시 나를 따라다녔어. 집에서 노는 것보다 이게 더 재미있대.
배관 터진 거 연결했는데 테프론 테이프를 잘못 감아서 물 새는 경우도 있어. 관리실에서 전화 와서 막 뭐라고 하지. 그때마다 허튼 소리 한마디도 안 했어.
한밤중에 자다가도 당장 달려가서 죄송합니다 하고 천장으로 올라갔어. 책임감 갖고 열심히 하니까 건물주는 꼭 다시 찾아주더라.
그렇게 서서히 돈이 모이는 거야. 내가 일한 만큼 버니까 밤새도록 작업해도 피곤한지 모르겠더라.
특히 동두천이 다른 지역보다 춥잖아. 동파 관리 제대로 안 하면 금방 배관이 터져. 겨울철만 되면 휴대폰이 쉬지 않고 울리는 거야. 우리 건물 배관이 얼어서 물이 안 나오니 당장 와서 고쳐 달라고 사정하지.
정말 겨울 내내 쉴 틈이 없었어. 하루 종일 일하다가 저녁 늦게 사무실로 돌아와 세금 계산서 정리하는 마누라 얼굴은 웃음으로 터졌지.
이제 사업체가 커져서 직원도 세명이나 두고 있어. 내가 월 천만 원 갖고 가. 겨울철에는 거의 두 배를 벌지. 웬만한 회사 임원급 정도는 될 거야. 승용차도 대형 세단이야. 마누라 태우고 나가면 아무리 복장이 후줄근해도 행인이 쳐다 봐.
이상한 게, 그렇게 벌어도 사람들이 무시를 해.
공사하다가 밥 먹으러 근처 식당 들어가면 월 200 받는 서빙 청년이 은근히 깔보는 눈으로 쳐다 봐.
특히 처가댁에서 더 해. 일부러 명절에 선물상자 한가득 들고 가면 반갑게 맞아 주기는 하는데 뭔가 허전해. 나를 인정하는 눈빛이 아니야. 장모가 물어. 언제까지 그 일을 할 거냐고. 안쓰러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직업을 싫어하는 거야. 창피하게 여기는 거지.
아침에 출근하면서 경비 아저씨 혹은 청소 아주머니를 만나면 꼭 먼저 인사해.
아이들한테도 그렇게 교육을 시켰지. 절대로 어떤 사람이든 낮춰보지 말라고 가르쳤어.
특히 첫째한테 더 그랬지. 장교가 될 거니까. 네가 사병보다 잘 나서 장교가 아니라고. 군대라는 조직에서 명령 계통으로 필요에 의한 지시를 내릴 뿐이지, 계급이 낮은 사병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게 아니라고 말이야.
가만히 보면 이 놈의 세상이 희한하게 웃긴 거야.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 떠나서, 내가 열심히 일하고 사는데 왜 무시를 당하지?
오타쿠도 많고 사기 치는 놈도 많은 세상에서 남에게 피해를 안 주고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인정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어쩌다 아파트 주민의 횡포에 경비 아저씨가 자살하는 뉴스가 나오면, 정말 이 세상이 미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