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등산객들이 인천본부 로비로 들어온다. 어린 아이처럼 서로 툭툭 건드리며 말장난을 친다. 평일에 산을 오르는 등산객도 많은 것 같다.
그중 한 여성이 저녁에 오는 손주에게 용돈을 주려고 ATM 기계를 찾는다. 같이 온 남성이 그 돈으로 떡 하나만 사달라고 치근덕거린다.
우준이 중앙지점으로 손을 뻗어서 ATM 기계 사용은 은행으로 들어가시라고 안내한다. 그때 정 여사가 문을 열고 나온다.
“어머? 현정아!”
갑자기 들리는 정 여사의 본명에 우준은 예사롭지 않은 사건을 직감한다. 동물원의 원숭이를 대하듯 등산객은 둥그렇게 서서 키 작은 정 여사를 굽어보고 있다.
“너, 여기에 있었어?”
손수건으로 머리를 두르고, 고무 장갑에 밀대 걸래, 칙칙한 유니폼까지 전형적인 청소부 복장이다. 어색한 자리가 만들어진다. 그녀와 대치 중인 등산객 친구들은 이럴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난감하다.
혹시 저들 중에 휴대폰으로 정 여사에게 수작을 부렸던 남자가 있는 건 아닐까.
“나 이런 일 해……. 산에 다녀오는 모양이야?”
정 여사가 태연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자기 말투가 느려진 건 모르고 있을 것이다.
“계양산. 너는 오늘 바빠서 안 된다며.”
“해야 할 일이 있거든. 돈 찾으러 왔나 봐. 얼른 은행 들어가서 찾고 가. 왼쪽에 있어.”
“또 보자.”
“응……. 갈게.”
평소라면 계단으로 내려갔겠지만, 정 여사는 승강기를 기다린다. 등산객에게 지하로 내려가는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갑자기 정 여사가 부들부들 떨면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우준이 언 듯 그녀의 눈물 자국을 봤는가 싶은데 승강기로 들어간다.
이제 정 여사는 산악회에 그만 나갈 것 같다. 그녀의 성격이면 집으로 돌아가 군인이었던 남편에게 괜한 트집을 잡아 한바탕 쏟아붓지 않을까 싶다.
비록 구차하게 살아도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있다. 식당에서 반찬을 많이 담는다고 구박받아도 끄덕하지 않던 정 여사가 산악회에서 자기 직업이 들통나자 무너지고 만다.
식당 아주머니도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다. 그녀가 식판에 반찬을 많이 담지 말라는 이유가 따로 있다.
남은 반찬을 자기 가족에게 먹이려고 갖고 가기 때문이다. 우준은 두툼한 종이 가방을 들고 퇴근하는 그녀를 많이 봤다.
아마 그 안에는 비닐로 잘 포장한 반찬이 들어 있을 것이다. 식당 아주머니도 우준이 눈치챈 사실을 안다.
하루는 우준을 불러 말을 붙인다. 지금은 식당에서 일하지만 예전에는 아주 큰 부자였다고 기막힌 허세를 떤다.
“남편 사업이 망하기 전까지 우리집 대문에서 현관까지 걸어서 20분 걸렸어.”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골치가 아프다. 드라마에 나오는 유럽의 고성이라도 봤던가.
“대한민국 수도권에 그런 집에 어디 있어요?”
“네가 몰라서 그래. 내가 정말 그렇게 살았다니까.”
식당 아주머니가 정색하면서 우기는데 우준은 더 따지기가 어렵다.
그러다가 우연히 중앙지점에서 한 남자를 만나는데, 그 남자는 식당 아주머니를 보자마자 객장이 울릴 정도로 “아줌마!”하면서 무척 반긴다. 통장 정리를 하던 온 식당 아주머니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선 채 대화를 나눈다.
다시 식당으로 올라가는 그녀에게 우준이 묻는다.
“방금 은행에서 만난 아저씨는 누구예요?”
그녀가 아주 태연하게 대답한다.
“옛날에 우리집에서 승용차를 몰던 기사.”
자신도 모르게 우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헛웃음이 터지고 만다. 그렇게라도 자기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는데 더 반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