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한윤수 총무과장

by 은빛바다

안내 데스크 전화벨이 울린다. 우준은 수화기를 귀에 건다.


“감사합니다. 한강은행 안내석 김우준입니다.”


항상 공손하게 전화를 받는다. 서울 본부에서 CS(customer service:고객응대) 테스트를 하는 경우도 있다. 고객으로 가장해서 전화를 걸고 어떻게 응대하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너 지금 회의실에서 나 좀 보자.”


한 과장의 목소리다. 상당히 격양되어 있다. 우준은 이 이유를 짐작한다.


“알겠습니다. 올라가겠습니다.”


덜그럭. 저쪽에서 수화기를 놓는 소리가 거칠다.


우준은 주차 관리를 하는 환구를 부른다. 안내 데스크에서 로비를 지키도록 지시한다.


“어디 가?”


“총무과장님이 좀 보재.”


금방 환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우준은 주먹을 꽉 쥐면서 계단을 딛는다. 어떤 트집이 나올지 모르니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한 과장과 틀어지게 된 계기는 노점상 때문이다. 우준이 인천본부로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다. 1층으로 내려온 한 과장이 우준에게 손가락을 까닥거린다.


“따라 와.”


영문도 모르고 우준은 그의 등을 바라보며 걷는다. 인천본부 건물 모퉁이를 돌자 한 청년이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다.


“어서 오세요.”


반갑게 인사한 청년이 금방 손님이 아닌 걸 눈치챈다. 목장갑을 낀 오른손 손목에 나비 문신이 새겨져 있다. 건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과가 있어서 일반 회사에 취직이 안 되고, 그러다가 마음을 잡고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는지도.


한 과장은 개의치 않고 곧장 용건을 말한다.


“여기에서 장사하지 마세요.”


이제야 우준은 자신을 데리고 온 의도를 안다. 진짜 경찰처럼 절도있게 서서 뒷짐을 진다. 가스총이 도드라지도록 오른쪽 허리를 튼다.


“좀 봐주면 안 돼요?”


이런 경험이 자주 있는지 벌써 청년의 목소리에는 체념이 들어 있다.


“저희 직원이 건물 미관상 좋지 않다고 그래요.”


설령 직원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직접 붕어빵 장사를 찾아올 한 과장이 아니다. 아마 본부장이 창문으로 굽어보고 한강은행 이미지가 안 좋아지니 리어카를 치우라고 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은행 직원도 여기에서 많이 사갔어요. 퇴근할 때 깨끗하게 정리하고 가고요. 제발, 저도 먹고 살아야지요.”


한 과장은 자비가 없다.


“다른 곳에서 장사하세요.”


“이제 정말 갈 곳이 없어요.”


“그건 알아서 하세요. 내일까지 여기에 있으면 경찰을 불러 철거할 거예요. 알았죠?”


청년이 기역자형 쇠막대기로 붕어빵틀을 돌리다가 대답한다.


“아휴, 네…… 알겠습니다…….”


한 과장이 인천본부로 향하는데 뒤에서 쇠막대기를 던지는 소리가 들린다. 우준이 돌아보니 청년은 양손으로 리어카를 짚은 채 목을 깊게 꺾고 있다.


현관으로 들어서며 한 과장이 손가락으로 안내 데스크를 가리킨다. 이제 자리를 지키라는 의미다.


“만일 내일도 장사하면 네가 가서 뭐라고 해. 경찰 부른다고.”


이때 우준은 선을 넘고 만다.


“장사하게 두면 안 됩니까?”


“뭐라고?”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외관상 보기에 조금 안 좋아도 저 사람에게는 가족의 생계가 걸린 일이잖아요.”


“너 지금 미쳤냐?”


감히 용역 청경이 총무과장한테 자기 의견을 똑바로 제시하는 상황을 한 과장은 납득할 수 없다. 어이가 없는 듯 한참 우준을 바라보다가 승강기를 타고 올라간다.


철거시키라는 한 과장의 지시를 어긴다. 우준은 붕어빵 장사에게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


한 과장이 몇번 더 내려왔고 그때는 우준을 외면한다. 박 기사나 고 주임과 동행하며 붕어빵 장사에게 언질을 주다가 결국 경찰을 불러 철거시킨다.


발신 : 한강은행 인천본부 청경 김우준 (한강은행 인천축구팀 총무)

수신 : 각 지점 용역 근무자 청경, 운전기사


안녕하세요.

오늘도 인천 한강은행 각 지점에서 용역 청경으로 혹은 운전기사로 일하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는 한강은행 인천본부에서 청경으로 근무하는 김우준입니다.

어음교환 업무로 인천본부에 들렸을 때 로비에서 저를 만난 분도 있을 겁니다.

다름이 아니라 한강은행에서 근무하는 용역 직원의 모임을 갖고자 합니다.

조촐하게 술도 곁들이면서 같은 일을 하는 직원끼리 서로의 애환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

일시 : 2002년 10월 10일 (목요일) 오후 7시

장소 : 나나치킨 (만수동 시장 사거리에서 정각중학교 방향. 바른안경점 건물 1층.)


“이거 뭐냐?”


우준이 회의실로 들어서자마자 한 과장이 묻는다.


매달 지점의 업무를 평가하면서 시상하는 월례회의 장소다. 그날에는 한강은행 지점장이 전부 이곳으로 모인다.


회의 자료와 생수병이 놓이고 책상마다 명찰을 부착한다. 신용사업부 부장이 사회를 본다. 간혹 PPT를 써서 사업설명회를 하는데 그때마다 언급되는 액수가 수천억이다.


정면 상단에는 태극기가 붙어 있다. 우측 벽을 따라서 인천본부 역대 본부장의 임명장이 나열되어 있다. 이번 본부장은 11대다.


책상에는 A4 용지가 놓여 있다. 우준이 각 지점 용역직원에게 보낸 소식지다. 어음교환실 우편함을 통해 보냈는데, 지점에서 이상한 통지서가 왔다며 총무과에 알린 것 같다.


우준은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 대답한다.


“용역 모임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너 축구팀 총무잖아. 또 이런 걸 만든다고?”


“안 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거기 앉아 봐라.”


한 과장이 가늘게 눈을 뜨면서 손짓으로 오라고 끌어당긴다. 우준이 걸어와 앉을 때까지 마음을 추스른다.


“이렇게 모여서 뭐 하려고. 이번에는 배구팀이라도 만들려고?”


“용역끼리 친목 모임입니다.”


“친목질은 축구팀에서 해도 충분하잖아. 거기는 정규직이니 용역이니 가리지 않고 공만 잘 찬다고 하더구만.”


“저희끼리 따로 모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따로 모여서 뭐 하려고. 거기서 대장 노릇이라도 하려고?”


우준은 슬쩍 태극기를 바라보며 눈을 피한다.


“지점에서 뭐라고 연락 왔는지 알아? 요즘 축구팀에 나가는 용역이 버릇없대. 다른 지점에서 근무하는 과장 부장하고 어울리니까 정규직하고 똑같이 굴려고 한대. 네 영향이 없지는 않다고 봐.”


취조의 강도가 깊어지고 있다. 한 과장의 말투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다른 의도가 있는 거 아냐? 예전에 운동권도 이렇게 시작했어. 처음에는 야학 같은 걸로 말이야. 공장에 위장 취업한 운동권이 지금 뭐하는지 아냐? 혹시 너 그런 거 아니지?”


“그쪽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자발적으로 하는 행동입니다.”


“이제까지 잘 하다가 골치 아픈 일 만들지 마라. 아무리 잘난 척해봐야 너는 여기에서 용역 청경이야.”


한 과장이 1층으로 돌아가는 우준에게 덧붙인다.


“김 과장이 그러는데 너 신학생이었다며. 목사 될 준비나 할 것이지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냐? 형 입장도 고려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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