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4)

by 은빛바다

병원 1층 로비에서 기다린다.


접수처에서 붉은색 번호가 변하는 과정만 멍하게 바라본다. 점심을 굶었는데 배가 고프지 않다.


모르는 번호로 휴대폰이 울린다. 얼른 받으니 응급실 간호사다.


“아버님이 설사를 하셨거든요. 편의점에서 기저귀를 사다 주세요.”


그래서 집에서 나올 때 걸음이 그랬던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는 청년들이 있다. 냄새를 맡았는데 전혀 식욕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저귀를 들고 응급실로 가는 동안 몸이 붕 뜬 것 같다.


응급실 입구에서 간호사에게 기저귀를 전달하면서 묻는다.


“저희 아버지 상태가 어떠세요?”


“몸에 꽃은 주사 바늘을 자기 손으로 다 떼셨어요. 거추장스럽다고.”


“제대로 말은 하세요? 정신도 있고요.”


“네, 이게 받으세요. 아버지가 옷을 벗을 수 없어서 가위로 잘랐어요. 속옷은 버렸고요.”


간호사가 내민 비닐봉지에는 아버지의 옷가지와 신발, 휴대폰이 들어 있다.


당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버지가 그 정도로 의식이 있을 정도면 큰일은 아니라고 여긴다.


다시 1층 로비에서 기다린다.


응급실에서 연락이 온다. 이번에는 의사다. 아버지의 상태를 듣기 위해 응급실 앞에서 만난다.


안경을 낀 젊은 의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부터 반감이 일어난다. 경험도 없는 의사가 아버지를 제대로 진단이나 했을까 의문이 든다.


그가 설명하는 전문적인 의학적인 용어는 다 알아듣기 어렵다. 췌장에 염증이 심해서 다른 장기가 괴사 될 가능성이 많다.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다.


더불어 심각하게 덧붙인다.


“마음의 준비를 해두세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은 안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모든 게 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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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허락을 받아 당신은 응급실로 들어간다. 보안요원이 제지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대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의외로 침대에 앉은 아버지가 멀쩡하다. 환자복을 입고 있다. 팔에 뽑았다던 링거 바늘이 꽂혀 있다.


아버지는 당신을 보자마자 다그친다.


“얼른 집에 가자구. 나 이제 괜찮아. 아픈 거 다 나았어.”


병원비가 아까워서 그럴 것이다. 진통제를 맞아서 고통이 누그러들었을 것이다. 당신은 다시 안심한다.


이렇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괜찮은데 설마?


그 젊은 의사가 오진을 한 거지. 엊그제만 해도 밥그릇을 다 비우지 않았던가. 더 퍼먹으려고 하는 걸 과식하지 말라고 말리지 않았던가. 의사가 중환자실로 가자고 하니 일단 속는 셈 치고 가기는 하는데 금방 나오실 거야. 암, 그렇고 말고.


당신은 어린아이를 가르치듯이 또박또박한 어조로 말한다.


“아버지 몸 안에 췌장이라고 있거든요. 그게 상태가 나빠졌어요. 이제 중환자실로 들어가요. 그거 고치느라 며칠 있다가 나올 거예요. 당분간 만날 수 없어요. 전화도 할 수 없어요. 무조건 의사랑 간호사의 말을 잘 들어야 해요. 그래야 빨리 나올 수 있어요.”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영문을 모르는 아버지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린다.


간호사가 당신에게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중환자실로 들어가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할 일이 있다.


당신은 응급실 간이 의자에 앉는다. 벽에 등을 기댄다.


칸막이 저편에서 누가 죽었다. 통곡이 들린다. 누군가의 어머니고 또 누군가의 아내이다.


아이들은 엄마, 엄마, 부르면서 운다. 남편은 얼른 일어나라고 한다. 아무도 그들을 진정시킬 수 없다. 일단 슬픔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슬픔의 끝은 드러내지 않는다.


저 슬픔에 동요되지 않도록 당신은 주먹을 꽉 쥐고 버틴다. 우리 아버지는 저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아무 근거 없는 확신을 억지로 가슴에 심는다.


아버지의 침대가 이동한다. 당신은 중환자실까지 따라가면서 아버지를 안심시키려고 애쓴다.


“며칠만 있다가 나오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잘 버티셔야 해요.”


침대에서 대답이 없다. 아버지의 얼굴은 아무 감정도 읽을 수 없다. 앞만 바라보고 있다. 그게 더 불안하다.


간호사가 버튼을 누르자 중환자실 유리문이 양쪽으로 열린다. 당신은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다.


침대가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친다. 그때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던진다.


“지금 영호는 뭐 하고 있니?”


중환자실 문이 닫힌다. 아버지는 끝까지 큰형을 걱정하고 있다. 장남이니까. 당신은 그대로 굳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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