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큰형 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고 안방에서는 거친 신음이 난다.
당신은 얼핏 잠이 들었다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아버지가 정수기에 컵을 대고 있다.
새벽 3시다. 밤이 깊어지니 더 편찮은 것 같다.
아버지는 식탁 의자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쉰다. 당신은 여기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을 눈치챈다.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응급실로 향했을 것이다.
방법이 있기는 했다. 대리 운전을 하든지, 119를 부르던지…….
결국 설마? 라는 안일함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낳은 것이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이 ‘괜찮으냐’는 말을 서로 몇 번이나 공방으로 오고 갔을까? 아버지 당연히 괜찮다고 하신다.
“병원에 안 가도 되겠어요?”
“내일 가자. 내일. 으흠……. 으흠……. 으흠…….”
드디어 아버지의 기세가 꺾인다. 죽어도 병원에 안 갈 것 같던 아버지가 결국 죽을 때가 되니까 병원으로 가자고 한다.
어리석게도 당신은 이제까지도 큰일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많이 아파도 병원에 가면 나을 거라고. 어머니도 몇 번이나 그런 과정을 거치다가 돌아가셨으니까.
“내일은 출근하거든요. 오전 근무만 빨리 마치고 올 게요.”
“그래, 너 출근하고 돌아오면. 으흠……. 으흠……. 으흠…….”
아버지는 짧게 말하는 것조차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한다. 허우적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가 눕는다. 계속 아버지의 신음을 들으며 당신은 비몽사몽 아침을 맞이한다.
큰형은 폐기물 수거업체에서 근무하기에 새벽에 먼저 출근한다.
당신은 큰형이 현관문을 닫는 소리에 일어난다. 안방으로 가서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한다. 역시 한숨도 못 잔 것 같다.
“얼른 다녀오너라.”
“아침 식사는 어떻게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얼른 다녀오너라. 얼른.”
이 한마디로 당신은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한다.
출근해서 박물관 오전 업무만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온다. 더 일찍 나오고 싶었지만, 아예 결근하고 싶었지만, 회사 일이라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먼저 퇴근하면 다른 직원에게 잔업을 넘기게 된다. 누구도 남이 하던 일을 떠맡고 싶지 않다.
아버지는 오전 내내 이불속에서 신음을 지르며 현관문 도어록 누르는 소리가 들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빨리 오라고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자식이 회사에서 일하는데 방해가 될까 봐. 당신을 반기는 태도에서 충분히 그것을 알 수 있다.
“제 차 타고 병원으로 가시죠.”
반응이 어제와 다르다. 아버지는 얼른 일어나 옷을 차려입는다. 그 모습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상하다.
벽을 짚고 승강기를 기다리던 아버지가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혼자 걷지 못하니까 잡아 달라는 것이다. 팔에 실리는 무게가 상당하다. 바지에 똥이라도 지린 것처럼 조각걸음이다.
주차장에 이르러서 중심을 못 잡고 기울어지더니 땅바닥에 엎어지고 만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당신은 당황하지만 어떻게든 아버지를 부축해서 승용차에 태우려고 애쓴다. 당신의 머리에는 병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버지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려고 하지만 희한하게도 등에 쌀가마니를 가득 쌓아놓은 것처럼 무겁다.
당신은 서둘러서 119에 연락한다.
그동안 아버지는 어떻게든 승용차에 타려고 주차선을 따라 엉금엉금 기어간다. 군대에서 배웠던 낮은 포복으로, 그걸 이렇게 60년 만에 써먹는다.
당신은 아버지를 등 뒤에서 붙잡고 간신히 끌어당겨 바닥에 앉힌다.
예전에 경찰의 연락을 받고 아버지가 술에 취해 데리러 나갔을 때에도 이렇게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온몸에 토사물이 묻었지만 이 정도로 위태롭지 않았다.
당신은 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119 구급차가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두 팔을 높이 휘두르며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도록 고함을 지른다.
“여기요! 여기요! 여기요오오!”
진열대를 정리하던 금강슈퍼 아주머니가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지금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구급대원이 익숙하게 아버지를 이동용 침대에 눕힌다. 구급차에 태우고, 당신도 탄다.
아버지는 어리둥절하게 구급차 내부를 둘러본다. 산소호흡기, 온갖 약품이 든 수납장, 섹션기까지 장착된 이곳은 공포심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혈압을 재고 채혈하는 구급대원의 질문에 당신은 정신없이 설명한다.
당뇨와 고혈압이 있다. 황반변성으로 한쪽 눈이 안 보인다.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다른 병은 없다. 엊그제 생선을 먹고 체했다.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주말이라 좀 버텨보기로 했다. 밤새 앓으셨다.
계속 검사하던 구급대원은 몸 안의 무슨 치수가 높다며 불안하게 당신을 바라본다.
그 눈 속의 깊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은 짐작한다. 며칠 전만 해도 밥 잘 먹고 산책도 나가고 껄껄거리며 TV도 보던 분이다. 설마?
당신은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밖에서 계속 사이렌 소리가 따라와서 뭔가 싶었는데 당신이 탄 구급차에서 나는 소리다.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119 구급차.”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 중이에요?”
“병원.”
당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의식이 멀쩡한데 큰일이야 나겠는가. 여유가 생겨 아버지를 나무란다.
“이게 아버지 평소에 운동을 안 하고요. 음식을 가려 먹어서 그런 거예요. 식사 좀 거르지 말고 제때제때 하시고요.”
병원에 도착한 아버지는 곧장 응급실로 들어간다.
아무리 보호자라고 해도 응급실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 당신은 문 앞에서 한참 기다린다.
연락이 없다.
응급실 안쪽을 들여다보다가 슬쩍 발을 넣자 무전기를 든 보안요원이 제지한다. 누구든 나와서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면 속이 시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