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좋은 체험이었다고 고마워하는 선생님과 악수를 나눈다.
버스에 탄 학생들이 손을 흔들면서 떠난다. 당신은 직원들과 같이 배웅을 해준다. 행사는 잘 마무리된다.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이 순간이 가장 뿌듯하다. 직원들과 서로 수고했다고 다독거리며 뒷정리를 마친다.
일요일 저녁이다. 당신은 도로가 막히는 시간을 피해 얼른 집으로 가고 싶다. 사실 행사를 진행하는 내내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박물관을 나선다.
안방에 아버지가 벽을 바라보며 누워 있다.
평소라면 당신이 현관문 여는 소리에 얼른 나와서 반겼을 것이다. 아버지가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가족 이외에 없다. 친구들은 전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숨을 내쉴 때마다 거친 신음을 곁들인다. 으흠. 으흠. 으흠.
“많이 아프세요?”
당신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슬쩍 돌아본 아버지가 이불을 끌어올리며 말한다. 정수리가 텅 비었다. 백발이 주변머리를 두르고 있다.
“아까 영호가 사다 준 죽 먹었어, 괜찮아…….”
이불 속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얇게 들린다.
“병원에 안 가도 되겠어요?”
“괜찮다니까 그러네. 어허, 거, 참. 으흠……. 으흠……. 으흠…….”
여기까지다. 더 이상 말을 걸면 아버지는 화를 낸다. 성격을 맞추기가 좀 힘든 분이다.
주방에서 큰형이 반찬을 만들고 있다. 조카 주아에게 갖다 주는 것이다.
큰형은 이혼했다. 가방만 달랑 들고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무렵이다. 그러니까 3년 전부터 이 아파트에서 얹혀살고 있다.
주아는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 큰형수였던 그 여자와 같이 살 수 없어서 혼자 자취한다.
큰형은 매주 김치조림 두부조림 소시지볶음 같은 밑반찬을 만들어 주아의 오피스텔로 배달하고 있다.
반찬만 아니라 주아의 빨래도 갖고 와서 세탁한다. 오피스텔이 환기가 되지 않아서 빨래가 바싹 마르지 않는다는 이유를 댄다.
어쩔 수 없이 세탁기에서 주아의 브래지어와 팬티가 나온다. 이건 당신이 40 넘은 노총각이라고 해도, 아무리 주아가 조카라고 해도, 다 큰 처녀의 속옷을 탈탈 털어 말리는 건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큰형은 민망함을 개의치 않았고, 당신도 묵묵하게 아버지의 팬티와 조카의 팬티를 건조대에 나란히 넌다.
아버지는 그런 행동을 싫어하지만, 큰형에게 뭐라고 타박하지 않는다. 지 자식에게 대한 애정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저렇게 되신 거야?”
당신이 냉장고를 열며 묻는다. 시원한 주스를 마실까 했는데 큰형이 저녁 식사를 할 때 반주로 곁들이는 막걸리가 반긴다.
박물관에서 행사를 진행하느라 신경을 많이 쓰고 피곤하다. 머그잔에 가득 채운다.
안주로 큰형이 만든 김치조림을 접시에 담는다. 잠깐 안방을 바라보며 이 술을 마실까 고민한다. 설마? 갑작스러운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마신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가 되는 술이다.
“약 드렸더니 괜찮으시대.”
큰형은 두부조림을 반찬통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질문과 다른 대답이다.
“병원에 가야 하지 않을까?”
“그 얘기 안 했겠냐. 노인네가 안 간다고 버럭버럭 우기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 내가 알아. 금방 나을 거야. 원래 노인들 다 저래.”
당신은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주말이라 곧장 응급실로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저렇게 완강한 아버지를 설득할 자신도 없다. 더구나 술을 마셔서 운전할 수 없다. 병원으로 가려는 마음을 포기한다.
“걱정하지 마. 내일 되면 다 나을 거야. 나는 주아한테 다녀올게.”
반찬통과 마른 빨래가 든 쇼핑백과 배낭은 터질 것 같다. 그것을 양손에 들고 또 등에 지고 현관을 나서는 큰형의 얼굴은 웃음이 가득하다.
마치 명절 선물이라도 갖고 가는 것 같다. 아버지가 딸에게 무엇이든 더 해주려는 바람은 이해한다.
이혼하는 바람에 딸이 혼자 오피스텔에서 자취하고 있으니 아버지로서 죄책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웃음에 동조하기 힘들다.
현관문이 닫힌다. 큰형이 나간 자리는 막막하다.
그가 딸의 아버지로 정성을 다하는 만큼, 우리 아버지에게도 노력했으면 한다. 당신은 한참 동안 안방을 바라본다.
“으흠……. 으흠……. 으흠…….”
가느다란 신음이 이어진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큰형 말대도 괜찮겠지 하면서 손에 든 막걸리를 비운다.
그 맛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