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5)

by 은빛바다

당신은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절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라면…… 없다, 절대.


뻔한 집안의 뻔한 이야기다.


중학교 시절,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당신은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버지가 어떻게 들어올지 두렵다.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하다.


자정 무렵 집으로 들어오는 아버지는 술냄새를 풍긴다. 매일. 매일. 매일.


어떻게 그렇게 술을 마실 수 있는지 지겹다는 원망조차 지겨울 정도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집으로 들어오는 발소리부터 다르다. 몸을 내던지는 것처럼 턱, 턱, 턱, 거칠게 딛는다.


곧장 안방으로 향하는 경우는 없다. 마루에서 3형제 방문을 열고 막막하게 바라본다. 그냥 응시만 할 뿐이다.


3형제는 책상에 앉아 있지만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런 아버지를 모른 척하는 방어 동작일 뿐이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 지긋지긋한 시간이 20분 혹은 30분 정도 지나면 결국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애들아아~~~~~. 열심히 공부해라.”


주정꾼이 내뱉는 소리가 제대로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아버지는 양 주먹을 쥐고 젖은 수건의 물기를 짜듯 허공에 비튼다. 왜 그런 꼴 보기 싫은 행동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알았어요.”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저녁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짜증이 치밀어 오르지만 당신은 참는다. 작은형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체념하고 있다.


참다 못한 큰형은 주먹을 쥐고 벌떡 일어선다. 굳은 얼굴이 돌처럼 단단하다.


마루에서 아버지를 밀치고 뛰쳐나간다.


“영호야, 영호야아, 어디 가냐아~~~~.”


아버지가 불러도 못 들은 척하면서 거칠게 대문을 닫는다.


드디어 어머니가 안방에서 나온다. 아버지를 끌고 가려고 하면, 오히려 역성을 낸다.


“내 자식이야. 내가 자식들 바라보는 게 뭐가 잘못이야.”


마루에서 술 취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싸운다. 매일. 매일. 매일.


당신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상황을 여러 가지로 추측한다.


술 취한 아버지가 자식에 대한 애정을 그렇게 드러낼 수 있지만, 다른 결론은, 당시 아버지는 우리 3형제를 막막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사업에 실패하고. 자식에게 돈은 들어가고. 암담했을 것이다.


당신은 막내다. 사춘기 시절.


그즈음 어리석은 회한을 품고 지낸다.


-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우리 집은 더 풍족하지 않았을까.


아버지에 대해 다른 기억도 품고 있다.


이슬비가 내리는 날이다. 동네 친구와 대낮부터 술을 마신 아버지는 집으로 들어오지 않으려 한다.


1761803692270.png


러닝셔츠 차림이다. 그의 술주정에 질린 친구들이 비를 맞으면서 억지로 집까지 끌고 온 것이다.


그렇게 취했으면서도 아버지는 한잔 더 하러 가자고, 한잔 더 하러 가자고, 주문처럼 되뇌며 친구를 잡아당긴다.


절대로 대문을 넘어서지 않는다. 집으로 들여보내는 자들과 술을 더 마시려는 아버지는 실랑이를 벌인다.


어머니가 나온다. 제발 좀 들어가자고, 애원을 해도 듣지 않는다.


구경꾼이 모인다. 동네 망신이다. 거기에는 당신의 초등학교 같은 반 여자 아이도 있다.


빗줄기가 굵어진다. 하도 완강하게 버티니 친구들은 아버지의 옷자락을 당기고 뒤에서 밀며 억지로 집안에 넣으려고 한다.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말란 말이야!”


아버지가 팔다리를 휘저으면서 몸부림을 친다.


쾅!


다들 동작을 멈춘다. 어머니가 심장 근처에 손을 얹는다.


아버지가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대문 모서리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빗물이 섞인 흐릿한 핏줄기가 뺨을 타고 내려와 뚝뚝 떨어진다. 러닝 셔츠가 붉게 물든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누군가 당신에게 약을 사 오라고 시킨다. 비를 맞으면서 당신은 슬리퍼를 신은 채 약국으로 달린다.


정황을 들은 약사는 상처를 꿰매야 하니 얼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지만 답답할 뿐이다.


거기에서 술 취한 아버지가 어떤 행패를 부릴지 모른다.


약사에게 연고만 받은 당신은 다시 빗길을 뛰어 집으로 돌아온다.


마루에 아버지와 친구들이 둘러앉아 있다. 핏물이 흘러내리는 정수리를 번갈아가며 수건으로 누른다.


서로 먼저 손을 내밀면서 나에게 약을 달라고 한다.


수건을 들추자 찢어진 살갗이 보인다. 다행히 지혈은 된 것 같다. 벌어진 상처 부위로 연고를 바른다. 머리카락과 엉켜 마치 벌레가 눌어붙는 모양이 된다.


“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 죽어버릴 거야. 죽어버리면 그만이야.”


그 와중에 아버지는 허세를 부린다. 앉은 채 잠이 든다. 주방에서 어머니가 가슴을 치면서 울고 있다.


여기는 아버지가 술에 취하지 않고는 들어올 수 없는 집안이었을까.


다른 기억도 몇 가지 더 있다.


술 취해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지고.


술 취해 남의 집 유리창을 깨뜨리기도 하고.


술 취해 치고받고 싸우는 바람에 파출소로 달려가고.


이렇게 적고 보니 뻔한 집안의 뻔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이 집에서 아버지는 자신을 무엇으로 인정받으려고 했을까.


그냥 아버지니까 아버지 위치에 있었을 뿐이다.


도대체 그에게 자식이란 무엇이었을까.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었기에 그것을 감당하기가 버거워 술로 도피한 것은 아니었을까.


마찬가지로 당신은 단지 자식일 뿐이니, 그 동안 자식 노릇을 한 것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피할 수 없으니, 가슴 깊숙이 상처를 묻어둔 채, 또 성실하게 보이도록.

월, 수, 금 연재
이전 04화아버지의 죽음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