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으로 들어가기 위해 경비실에 신분증을 맡긴다. 출입증에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쓰는 동안 경비원은 신분증 사진과 방문자 얼굴을 확인한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나요?”
“현금 수송이요.”
엄 과장은 경비실 안까지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한다. 환구는 허리 벨트를 풀러 가스총을 내민다.
각 지점은 현금보유량이 있다. 그 이상 넘어가면 한국은행에 입금하고 부족하면 돈을 찾는다. 또한 훼손되어 유통할 수 없는 돈도 이때 반납한다.
그 관리를 엄 과장이 한다. 현금 수송이기에 수행원은 청원 경찰인 환구가 동행한다.
차단기가 올라가자 엄 과장은 승용차를 운전해서 한국은행으로 들어온다. 전방에 보이는 단층 건물이 입고와 출고를 진행하는 객장이고 그 밑에 지하 금고가 있다.
“한국은행은 용역을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 경비원도 전부 국가유공자래.”
엄 과장이 경비실로 눈길을 돌린다. 아까 신분증을 확인하는데 기분이 상한 것 같다.
“정말인가요?”
조수석에 앉은 환구가 묻는다.
“그러니 경비원도 깐깐하지.”
주차장에 한국자산안전 승합차가 4대 기다리고 있다. 운전석 뒤를 금고로 개조한 특수차다. KAS(Korea Asset Securty)라고 불리는 그들은 검은색 제복을 입고 다닌다. 신발도 검은 군화를 신는다. 별명이 ‘까마귀’다.
건장한 청년들이 검은 옷에 무리를 짓고 다니면 위압감이 든다. 까마귀는 금융회사의 현금을 수송한다. 일반인의 귀중품도 맡아서 운반을 해주며 은행의 ATM 관리도 한다.
언제 돈을 노리는 강도가 습격할지도 모르는 직업이다. 꼭 3인 1조로 다니며 승합차에는 가스총만 아니라 전기충격기에 야구 방망이까지 살벌한 도구가 준비되어 있다. 대부분 유도나 태권도 같은 격투기 경력이 있다.
입고가 시작된다. KAS 직원은 승합차 금고에서 사각형 가죽 가방을 꺼낸다. 그 안에는 지폐가 가득 들어있다. 이들은 동인천 서인천 남인천 북인천으로 나눠 현금을 운반한다.
한국은행 객장은 창구가 1개뿐이다. 가방에서 꺼낸 지폐를 만원권 오천원권 천원권으로 분류해서 바닥에 무릎 높이로 쌓는다. 엄 과장이 돈다발을 일일이 세며 확인한다.
“구월동지점 만원권 다발이 7억 4천. 오천원권이 2억 2천. 천원권이 8천2백. 폐권이 전부 47만 6천원. 오케이, 구월동지점 확인됐고! 에구, 돈 좀 깨끗하게 쓸 것이지. 저거 다시 만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다음, 만수동지점 어디에 쌓았어요? 어디 보자, 만원권이 11억 6천…….”
일일이 장부와 대조하던 엄 과장이 확인을 마치자 입고를 시작한다. 창구에 긴 탁자를 놓고 돈다발을 5단으로 쌓는다. 수십억이 쌓이면 탁자가 비좁다. 창구로 입금하려면 돈다발 끝에서 밀며 계속 쌓아야 한다.
한국은행 직원은 돈이 들어오면 10다발씩 비닐 포장을 한다. 만원권은 1억, 오천원권은 5천만원, 천원권은 천만원이다. 빠레트에 차곡차곡 쌓이는 비닐포장은 지게차에 실려 지하 금고로 내려간다.
엄 과장이 만원권 돈다발을 들고 환구에게 몰래 다가간다. 뒤통수를 툭 내려친다. 환구가 눈썹을 찡그리면서 돌아보자 엄 과장이 비시시 웃는다.
“천만원으로 맞아본 기분이 어때?”
묘했다. 여기에 쌓인 돈으로 피 터지도록 얻어맞아도 기분은 좋을 것 같다.
이번에는 엄 과장이 만원권 다섯 다발을 손바닥에 차곡차곡 올려놓는다. 무겁기는 하지만 중심을 잘 잡고 버틴다.
“지금 손에 올려진 돈이 내 연봉보다 많아. 기분 더럽지. 이거 벌려고 1년 동안 죽어라고 일하는 거야. 상사한테 욕먹고 바보 취급 당하면서.”
환구와 안면을 튼 KAS 직원이 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환구가 군생활을 포항에서 했기에 호감이 갔다. 외박을 나오면 그곳 단기사병과 어울려 술을 마셨는데 ‘데끼리’나 ‘찌짐’이라는 사투리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경상도 분이세요?”
“지요? 창원이라예.”
“제가 포항에서 군생활을 했어요.”
“좋은 데서 하셨네여. 억수로 편하게 했네. 맞재?”
촌놈이 도시물 먹고 싶어서 인천까지 올라왔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그 직원이 슬쩍 묻는다.
“그쪽은 혹시 정규직 아닌교?”
환구가 용역이라고 하자, 그 직원은 자기도 용역이라고 대답한다. 여기 현금 수송하는 직원 대부분 용역이라고. 대화가 어색해진다. 왠지 서로 바라보는 눈빛이 씁쓸해진다.
입고를 마치자 엄 과장은 한국은행 직원에게 확인 사인을 받는다. 그는 출고 액수가 많으니 지하 금고로 내려오라고 한다.
승용차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데 뒤에서 KAS 승합차가 줄지어 따라온다. 마치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지하 금고의 셔터가 닫혀 있다. 엄 과장은 내리막길에서 핸드 브레이크를 잡은 채 한참 동안 기다린다. 한국은행 특성상 안쪽 보안이 확실하지 않으면 절대로 문이 올라가지 않는다. 엄 과장은 이것 역시 불만이다. 일반 은행처럼 고객에게 맞춰 처리를 해주면 안 되냐고 짜증을 부린다.
드디어 셔터가 올라가자 빠레트에 사람 키만큼 만원권이 쌓여 있다. KAS 승합차가 벽을 따라 자리를 잡으면서 금고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장부를 든 엄 과장의 지시에 따라 환구가 돈을 나눠준다.
“청천동 3억. 어느 차예요? 3억 받아가시고 여기 사인하세요.”
환구가 비닐 포장된 만원권 세 덩이를 건네준다. KAS 직원은 세탁기에 양말을 던지는 것처럼 금고에 휙 넣는다. 돈처럼 보이지 않는다. 잘 다듬어진 종이 덩어리.
“다음으로 삼산동 지점. 7억. 여기 사인하시고요.”
돈이 나뉘자 승합차 금고가 굳게 닫힌다.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각자 맡은 지역으로 출발한다.
“조심해서 지점에 갖다 주세요. 영화 보니까 이상한 기계로 승합차에 구멍 뚫어서 털어가던데…….”
엄 과장의 염려에 KAS 까마귀들은 키득거린다. 그 놈의 영화가 괜한 걱정을 만든다. 승합차가 전부 빠져나가자 엄 과장은 먼지가 쌓인 것도 아닌데 장부를 탁탁 턴다.
“수고했다. 돌아가는 길에 커피나 마시자. 바깥 공기가 좋기는 좋네.”
부평동 지점장이 자주 인천본부를 방문한다. 월례회의를 진행하는 날도 아닌데 혼자 승용차에서 내려 로비를 지나간다. 평소에도 인사를 잘 받아주는 분이라 환구의 태도는 깍듯하다.
“본부장님 어디 안 가시지?”
안내 데스크에서 신문을 읽는 박 기사에게 묻는다. 비서실 화연을 통해 알고 왔겠지만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그만큼 다급한 상황이다. 평소 너그러운 태도를 떠올리면 의외다. 그는 용역 청경이건 미화원이건 상관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가 지점장이 되기까지 고비가 유쾌하다. 고등학교까지 야구를 했는데 실력이 없어서 아무 대학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잘하는 선수에게 끼여서 대학에 들어간다.
야구를 그만두고 공부를 했는데 한강은행에 들어올 점수는 아니다. 옆에 앉은 친구가 시험 도중에 답안지를 보여줘서 합격한다. 승진도 자기 능력이 아니라 동기들이 추천을 해줘서 올라간다.
자신도 이런 지점장까지 임명된 게 이상하다. 그만큼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부평 지점장이 우수개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어딘가 모르게 부드럽고 여유가 있다.
부평지점 직원이 도박빚에 시달리자 동남아의 어느 나라에 유령 회사를 차리고 30억을 송금했다.
감사 나올 시기가 되자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그것도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직원들과 농담까지 나누면서 백반을 말끔하게 비운 뒤 사라졌다. 전혀 낌새를 챌 수 없었다.
오후 근무가 시작됐는데도 자리에 없어서 휴대폰을 걸었더니 받지 않는다. 집으로 전화를 걸자 돈을 받으러 온 채권자가 받는다. 가구나 주방용품은 그대로인데 옷이 없다고 한다.
“내가 부하 직원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서 큰 잘못을 저질렀네.”
부평 지점장은 허허허 웃기만 한다. 그건 부평지점만 아니라 본부장에게도 타격이다. 전국 규모에서 볼 때 한강은행 이미지가 떨어지는 큰 사건이다. 어떻게든 언론에서 보도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 같다.
어깨가 늘어진 부평 지점장이 계단을 밟으며 본부장실로 향한다. 뒷모습을 지켜보던 박 기사가 훈계를 하듯 환구에게 말한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다 편한 거 아냐. 자기 잘못도 아닌데 저렇게 고생하고 있잖아. 그만큼 자리가 무서운 거지. 너도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해 봐.”
다르게 해석하면, 청경은 책임을 질 일이 없으니 속 편하게 사는 거다. 그러니 나한테 엉기지 말고 시키는 거나 잘해라.
“부평 지점장님 좋은 분인데요. 여기 오면 저희한테도 마음을 써주시고요. 혹시 잘릴까요?”
“이런 일로 잘리지는 않을 것 같아. 그 동안 해온 것도 있고. 조금만 지나면 정년인데 그때까지는 보장을 해주겠지.”
환구가 시큰둥하게 내뱉는다.
“누구는 수십억을 해먹어도 자리를 지키는데, 용역은 실수해서 눈에 거슬리면 용역회사로 전화를 걸어 잘라 버리잖아요.”
곧장 박 기사의 눈꼬리가 올라간다.
“이 자식은 삐딱해가지고……. 하여간 살가운 데가 없어. 인마, 누가 누구를 자른다고 그래. 이제까지 총무과에서 너희 실수했다고 자른 적 있어?”
“워낙 우준이 형이 잘하고 있잖아요. 잘릴 건수가 없는 거죠.”
“에잉, 세차나 하러 가야겠다. 본부장님 일찍 퇴근할 것 같으니까 돌아올 때 즈음에 현관 앞 비워 놔.”
박 기사의 말처럼 부평 지점장은 가벼운 징계에 그친다. 정년까지 잘 지내다가 직원의 성대한 축하를 받으며 퇴직한다.
한국은행 지하 금고는 여전히 굳건하다. 엄 과장은 마치 실수인 것처럼 경적을 짧게 누른다. 어린아이 대답 같은 소리가 좁은 통로에 울린다. 안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다.
환구는 백밀러를 본다. 뒤에 선 KAS 승합자 조수석에서 까마귀가 군화에 양말까지 벗고 맨발을 대시보드에 얹은 채 대기 중이다.
요즘 환구에게 정규직이 아니냐고 묻던 KAS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은행으로 간 거 아닌가 싶은데 물어보기도 좀 그렇다.
지하 금고문이 열리고, 지게차가 비닐 포장된 돈다발을 싣고 온다. 엄 과장의 지시에 따라 환구가 돈을 나눠 주는데 아무리 살펴도 그 직원이 없다.
승합차 금고를 닫고 출발하기 전에 환구는 까마귀에게 다가간다.
“혹시 그 사람 그만뒀어요?”
“누구 말이죠?”
“호리호리하고 여드름이 좀 많았는데 경상도 말투를 썼어요. 내가 군생활을 포항에서 했거든.”
“아, 최정룡.”
서로 눈치를 주고받더니 선임으로 보이는 까마귀가 묻는다.
“그 사람은 왜요?”
“요즘 안 보이기에 궁금해서요.”
“정룡이는…… 병원 입원했다가 퇴사했어요.”
“병원? 병원에는 왜요?”
KAS는 3인 1조로 현금 수송을 하는데 그중 2명이 돈을 갖고 튀자고 제안했다. 미리 작당을 한 것이다.
지방으로 내려가 한동안 숨어 지내면 못 찾을 거라고 정룡을 꼬셨다. 한강은행이나 KAS는 회사 이미지 때문에 기사화하지 않고 신고도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 수억을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 내 지갑에서 들어갈 수 있는 지폐로 여기면 나오는 유혹이다.
당연히 정룡은 거절했다. 돈가방을 갖고 도망치려고 하자 꽉 껴안고 놓지 않았다. 다급해진 한 명이 야구 방망이로 정룡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병문안을 갔는데 침을 못 삼켜요. 입에서 질질 흘러내려. 발음도 어눌하게 하고.”
KAS에서는 정룡에게 표창장을 줬다. 정규직으로 채용해서 내근하도록 조치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표를 냈다. 도무지 다른 직원과 어울려서 생활할 수 없었다.
“평소에도 그 자식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했어요.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부모님 속이 뒤집어졌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 승합차가 지하 금고에서 나가자 엄 과장이 장부를 덮는다. 한국은행 직원에게 인사하고 승용차 운전석에 앉는다. 그때까지도 환구는 승합차가 빠져나간 출구를 바라보며 멍하게 서 있다.
엄 과장이 얼른 타라고 경적을 짧게 누른다. 지하에서 그 소리는 메아리를 치며 환구의 귀에 이명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