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용우회 탄생

by 은빛바다

나나치킨의 네 개 테이블이 길게 이어진다. 성일이 강냉이와 포크를 세팅한다. 지점으로 보낸 소식지를 읽고 용역이 얼마나 모일지는 모르겠다. 일단 매상이 오르니 성일의 아내는 주방에서 콧노래를 부른다.


이 자리에 나오지 않는 용역직원도 있다.


중앙지점 청경과 운전기사는 이번에도 지점장에게 제재를 당한다. 용역끼리 술을 마시면 입이 가벼워져 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을 털어버린다고, 외부로 정보가 새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환구도 불참이다. 이곳에서 나가 더 잘 될 준비를 해야지. 오히려 눌러앉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느냐며 모임 자체를 반대한다. 반면 그가 관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경찰학개론은 23페이지까지만 밑줄을 그은 상태다. 더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토요일 축구 모임에서 만난 주 과장은 자기 지갑을 열어 맥주 더 시켜 먹으라고 찬조금을 준다. 뭘 하려는지 짐작은 하지만 굳이 알려는 눈치는 아니다. 축구팀에 나오는 정규직도 우준이 하는 일이기에 지점마다 좋은 여론으로 은근히 지원을 해주고 있다.


“많은 기대는 걸지 말자고.”


성일이 강냉이를 입안으로 털어 넣으며 창밖 횡단보도를 바라본다. 파란불이 들어오자 행인이 바쁘게 건너가고 있다. 축구팀 용역직은 전부 나오기로 약속했으니 빈자리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우준은 수첩을 들추며 오늘 결정해야 할 사안을 암기한다.


축구팀 회원부터 먼저 자리를 잡는다. 소식지를 들고 온 용역직까지 합하니 20명이 넘는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에 성일은 흥겹게 보조 의자를 갖고 온다.


다들 비집고 둘러앉아 맥주잔을 잡는다. 정규직이 없으니 앉는 자세부터 달라진다. 치킨도 눈치 보지 않고 뜯는다. 대부분 토요일에 축구하면서 만난 사이라 분위기가 서먹하지 않다. 같은 직종이라 대화가 활발하다.


처음 참석한 이들도 쉽게 스며든다. 대부분 은행에서 부려먹기 쉬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나이다.


“거기 용역회사는 퇴직금 받아요?”


우준이 맥주잔을 부딪친 청천동 지점의 운전기사 노영직에게 묻는다. 역도 선수 출신이라고 한다. 어깨를 더듬으면 농구공처럼 빵빵하다. 소란스럽게 떠들던 목소리가 잦아들고 마흔개 넘는 눈동자가 영직에게 모인다.


“이상하더라고요. 용역회사에 전화 걸어서 물으니까 퇴직금을 12등분으로 나눠 매달 월급으로 넣어줬대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우리 월급이 최저 임금에 걸리니까 더 적게 주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퇴직금까지 약탈하려는 거죠.”

너나 할 거 없이 비참해진다. 여기는 전부 용역이니까.


“용역회사는 우리를 소모품으로 봐요. 입사하면 파견직으로 은행에 넣어버리고 퇴사할 때까지 찾아오지도 않아요. 은행에서 나랑 운전기사만 용역으로 근무하니 힘이 없어요. 맨날 정규직에게 무시를 당하죠. 심지어 커피 타오라고 하고 담배 심부름까지 시켜요.”


“피복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죠. 나쁜 놈들, 그거 떼먹는 돈도 엄청날 거예요. 원래 동절기 하절기마다 옷이 나와야 하는데 작년에 줬던 거 캐비닛에 보관했다가 입으라고 하잖아요. 신참에게는 전임자랑 사이즈가 비슷하니까 물려 입으라고 하고요. 원래 명절에 떡값도 줘야 하는데 입 닦고 있어요.”


“부실한 회사가 많아서 언제 망할지도 몰라요. 계산동 지점은 월급이 3개월이나 밀렸어요. 불안해 죽겠어요.”


“이거 노동부에 신고해야 하나?”


말문이 트일 기회를 주니 그 동안 어떻게 참고 지냈을까 의아할 정도로 불만이 쏟아진다.


“싹 다 엎어야 해.”


벌써 얼굴이 붉은 영직이 거칠게 맥주잔을 내려놓는다. 탕!


“한 마리 더 드려요?”


그 소리를 치킨 주문으로 알았는지 주방에서 나온 성일의 아내가 머뭇거리다가 다시 들어간다.


“우리 뭉치면 안 될까요?”


성일이 제안한다.


“뭉쳐요? 어떻게요?”


“용역회사가 각각이잖아요. 전부 한 곳으로 몰아서 들어가는 거죠. 우리한테 힘이 생기는 거잖아요. 용역회사한테 요구 사항을 제시하는 거죠. 월급 제대로 달라. 착취하지 말라. 용역의 복지를 증진해 달라.”


“그게 될까요?”


“용역회사도 자기네 직원이 늘어나니까 좋은 거잖아요. 거절할 이유가 없죠.”


“저는 괜찮다고 봐요. 어느 용역회사로 들어가요? 행정적인 문제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그건 김우준 청경이 해결할 수 있어요.”


다들 고개를 끄덕거린다. 우준이니 믿을 수 있다.


드디어 이 모임의 의도가 드러난다. 다들 해보자는 호응이 거대한 해일처럼 일어난다. 그만큼 이제까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증명이다.


모임의 이름부터 정한다. 용우회. 용역 친구라는 뜻이다. 회장 김우준. 부회장 이성일. 총무는 가장 열정적인 영직이 맡는다.


일단 용역회사를 알아보고, 여기에 모인 회원부터 회사를 옮기고 차츰 인원을 늘리다가 나중에는 미화원까지 옮기도록 계획한다. 매달 모이기로 하고, 다음 모임에서 회칙을 정하고 회원 목록을 작성하기로 한다.


우준이 맥주잔을 들고 건배를 제안한다.


“사람다운 대우를 받아보자. 한강은행 용우회를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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