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긴장과 기대와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유럽여행 초기. 그만큼 마음은 자꾸만 조급해지고 발걸음은 빨라진다. 평소 쉬는 날엔 자느라 오전 따위 존재하지 않았던 내가 아침 7시에 벌떡 일어나는 것은 기본이고, 한인민박에서 주는 아침까지 꼬박꼬박 챙겨먹고 가장 먼저 숙소를 나섰다.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려면 무조건 타게되는 빨간 2층 버스. 로컬들은 귀찮아서 2층엔 잘 안올라가는 것 같았지만 여행객으로서는 이만한 관광버스가 없다.
그렇게 런던아이부터 빅벤, 국회의사당, 웨스민스터 사원과 다리까지 누가봐도 타지에 온 비주얼과 눈빛으로 눈썹 날려가며 런던을 탐방했다. 비장하게 미러리스 카메라까지 목에 걸치고, '사진으로도 남기지만 현재도 즐기자'는 사명감(?)을 안고.
런던은 첫 혼자 여행을 시작한 도시라서 그만큼 기억에 강렬히 남아있다. 사실 첫경험이었던 만큼 그 순간을 100%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무리 여행을 계획하더라도 언제나 이변은 일어나고, 2018년 22살의 어린 나이에는 전부 소화할 수 없는 이방인들과의 조우도 한몫했다.
버킹엄 궁전과 내셔널 갤러리.
관광지를 가기 전 모든 정보를 알아가는 사람도 있고 가서 눈으로 확인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이 때까지만 해도 여행 가이드북까지 사서 읽을 정도로 모든 여행정보를 전부 알아서 가야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생에 다시 못갈지도 모르는 장소를 아무것도 모르고 다녀온다고? 그렇게 여행을 한다면 느낀점이나 영감이 왠지 모르게 적을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눈에 익혀가서 그랬던 걸까. 오히려 정말 열심히 준비한 시험에 너무 쉬운 문제만 나왔을 때처럼 아쉬웠다. '사진과 똑같구나.'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나름 런던피플처럼 느긋함을 즐겨보려 하였으나, 한국인의 피는 못 속이는 걸까. 편의점에서 산 애플사이다와 샌드위치를 학교 급식 먹는 것처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그런데 정말 나를 제외한 모든 생물체가 모두 평온해 보였다. 이곳에서야말로 정말 다른 세상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여행 커뮤니티 카페에서 동행을 구해서 그 유명한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도 먹어보았다. 사실 여러가지 디저트 접시를 탑을 쌓아놓고 티나 커피와 함께 먹으면 그게 애프터눈 티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인스타그래머블 카페에서 많이 마주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영국 런던 오리지널 애프터눈 티의 맛은 어땠을까? 정말 놀랍게도 한국에서 먹는 디저트가 더 맛있었다.
"영국 음식은 맛이 없다"는 우스겟소리가 있는데, 그 연장선에서 가장 먹어보고 싶었던 영국 음식이 바로 피쉬 앤 췹스 였다. '정말 그렇게 맛없을까? 드라마에서는 나쁘지 않아 보이던데.' 그렇게 우연히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피쉬 앤 췹스. 일단 소스가 상당히 부족했다. 초라한 타르타르 소스의 양에 비해 비장한 크기의 생선튀김이 나왔다. 게다가 굉장히 텁텁했다. 영국사람들은 겉바속촉을 안 좋아하나? 내가 외국인이라 대충 만들어줬나? 이 집이 그냥 음식을 못하나? 여행 초짜는 별 생각을 다하며 그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쓰다보니 런던에 대해 너무 무미건조했나 싶은데, 그럴 법도 한게 런던에 간 이유는 명소들이나 음식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드라마 <셜록>과 <해리포터> 때문! 그렇다. 나에게 영국은 덕후투어였던 것이다. 그래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 <셜록>에 등장했던 셜록의 집 221 베이커가! 이 때 런던 여행 내내 중에 가장 심장이 뛰었던 것 같다. 내가 드라마에서 봤던 그 장소에 와 있다니! 심지어 건물 1층의 '스피디스' 카페/바는 드라마에 나왔던 그대로였다.
한참을 성공한 덕후의 마음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들어가서 치즈버거 하나를 시켜보았다. 7월이라 날씨가 굉장히 더운데도 불구하고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도 없었다. 그리고 분명히 점심시간에 갔는데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고, 협소한 공간인데도 자리도 남아있었다.
치즈버거는 정말 평범 그 자체의 버거였다. 패티 하나와 치즈 한장, 그리고 양심상 옆에 따로 나열해준 약간의 샐러드까지. 하지만 나에겐 그 이상의 의미였다. 셜록에 몇번이고 등장했던 곳에서 나도 점심을 먹다니.
이처럼 같은 곳을 여행가도 사람들마다 모두 목적은 다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는다. 모든 여행은 아름답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