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2 [6/23-29]
애니타임(Anytime) 헬스장에 3일 무료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인바디 기계로 측정을 하니 체지방량이 10kg이 나왔다. 아무래도 인바디 머신은 신뢰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한 달에 7만 원을 투자하면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헬스장을 다닐지, 아니면 무료로 숙소 헬스장에서 기구 없이 웨이트 운동만 할지 고민을 해봐야겠다. 한국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말레이시아에서는 운동이나 악기 등을 더 저렴한 가격에 배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잘 분배하여 평소 배우고 싶었던 것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이건 단순히 말레이시아에 살게 된 이유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주기적인 수익이 생기고, 취미나 특기를 기르기 가장 좋은 나이다 보니 더욱 관심이 간다.
처음으로 대중교통 버스를 이용해 봤다. 세븐일레븐에서 교통카드를 10링깃으로 구매해서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충전하면 된다. 생각보다 자주 와서 출퇴근 때는 유용하게 쓸 것 같다. 기본 3링깃인데, 가까운 거리면 내리기 전 카드를 다시 찍을 때 환급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만큼 배차간격 좁고 정확한 버스를 기대한다면 힘들 것! 동남아 치고 대중교통이 잘되어있는 정도다.
계속되는 말레이시아 집 구하기 프로젝트. 말레이시아에도 직방/다방과 같은 어플 'iProperty'가 있다. 한국에서도 자취방 구하러 다니는 게 참 스트레스였는데. 어딜 가나 자가 없는 사람은 서럽다. 오늘 간 집은 The Atrium 3층이다. 주인이 인테리어에 매우 신경을 써서 집 자체는 예쁜데, 저층이라 마음에 걸린다. 말레이시아에서 저층에 살면 벌레출몰의 위험이 매우 커지기 때문. 그리고 동남아에 살면 대부분 통창에 탁 트인 뷰가 있는 집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바로 앞이 대로변인 것도 신경 쓰였다.
숙소로 돌아온 후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다른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차라리 옵션이 별로 없는 고층 방을 골라서, 월세를 더 내는 대신 내 입맛에 맞도록 옵션을 추가하는 딜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벌써 쿠알라룸푸르의 단점들이 눈에 너무 잘 보이기 시작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가득 찬 도시 덩어리,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열악하고 더러운 환경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요소들을 모아놓았다. 아직 소름 끼칠만한 벌레는 보지 못했지만 시간문제일 것 같다. 혹시 나... 너무 생각 없이 입말을 한 게 아닐까?
쿠알라룸푸르 자체에 심적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니 이곳에 취업한 내 결정 자체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분명 세부에 살 때는 '어디에 사는지'보다 '누구와 사는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지양하는 스타일의 환경에 지내다 보니 다시 머리가 아파졌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전을 명확히 세웠다.
운동 / 저축 / 창작활동 / 욕심 버리기
정리하고 나니 머리가 좀 맑아졌다.
회사 적응과 더불어 쿠알라룸푸르 현지에서 평소와 같은 루틴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애니타임 헬스장 등록은 보류하기로 결정. 부정확한 인바디 기계와 숙소에 무료로 쓸 수 있는 미니 헬스장이 그 이유다.
필리핀도 그랬었고, 말레이시아도 마찬가지로 음식 배달 어플은 대표적으로 '그랩(Grab)'을 사용한다. 동남아의 배달의민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임시 숙소에 사는 동안 당분간은 저녁을 사 먹거나 시켜 먹을 것 같은데, 그랩에 들어가니 온통 볶음밥과 누들 천지였다. 역시 개도국도 후진국과 비슷하게 깨끗한 단백질과 신선한 채소, 깔끔한 탄수화물을 먹기가 힘든 것 같다. 하지만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말레이시아는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등 여러 동아시아 음식들을 모두 맞볼 수 있어서 필리핀보다 훨-씬 맛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세계 각국의 음식이더라도 자연스레 현지인 입맛에 맞춰지다 보면 비슷비슷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물가는 한국보다 조금 저렴하다. 요즘은 6-8천 원 안에서 저녁을 사 먹고 있다. (저렴한 음식은 이 정도이고, 보통 일반적인 음식은 1만 원대이다.)
드디어 집을 결정했다. 필리핀에서는 별생각 없이 원룸(거실에 방 하나)에 살았는데, 이번에는 쿠알라룸푸르에 방문할 미래의 게스트들을 위해서 1+1룸으로 구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아이키아(이케아, Ikea)가 국민 가구점이다. 가격이 한국보다 저렴하고 매장도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어서 접근성이 높다. 쇼룸을 쭉 돌면서 가구를 구경하고 난 뒤 마음에 드는 물건을 1층에서 픽업하는 구조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신세를 잊고 마치 신혼집을 꾸리는 것처럼 한참을 봤다.
말레이시아에 이민 온 사람들, 새로 이사 온 사람들에게 이케아를 강추한다! 테이블, 서랍, 침대 프레임 등 큰 가구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다.
무슬림이 대부분인 쿠알라룸푸르에도 밤문화가 존재한다.
오늘은 부킷빈탕 창캇 지역에 술을 마시러 갔다. 말레이시아에 일하러 오면서 걱정됐던 것 중 하나가 무슬림국가라서 술과 돼지고기를 구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는데, 지금까지는 두 가지 모두 큰 불편함 없이 먹고 있다.
술은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긴 하다. 부킷빈탕 창캇에 '그레이비 베이비 (GravyBaby)'라는 펍에 갔는데, 생맥 500ml가 해피 아워 가격으로 26링깃 정도였다. (한화 8,300원) 하지만 우리나라 물가와 비교하면 큰 거부감이 생기진 않는 가격이다.
돼지고기는 일반 국가들에 비해 많이 팔지 않는 건 사실인데, 그래도 중국 음식점에 가면 흔하게 먹을 수 있고 한인식당도 많이 있는 것 같다. 말레이시아에 왔다고 금주와 돼지고기 금식을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
작년에 퇴사한 방송국에는 또래 동기들이 꽤 있었다. 그다음 필리핀 회사에는 규모가 작기도 했지만 또래 친구라 부를 사람이 전혀 없었다. 지금 쿠알라룸푸르 회사에는 또래들이 적지 않게 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비슷한 나이의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굉장히 반가웠다.
오늘은 그중 한 분이 집에 초대해 주셨다. 회사 얘기도 하고, 사적인 얘기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인간관계에게 덜 연연하게 된 건 사실이다. 나 같은 경우 불안정한 삶 때문에 주변인들이 계속 바뀌기도 했고, 점점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 자체를 인정하게 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시간이 놀라울 만큼 빠르게 지나간다. 책임과 의무가 늘어나는 만큼 하루가 제대로 음미해보지도 못하고 스쳐간다. 마치 배터리가 빨리 소모되는 오래된 휴대전화가 된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나는 건 유쾌한 일이다. 궁금한 사람이 생긴다는 건 여전히 깜깜한 방에 작은 촛불이 되어 잊고 지냈던 감정을 밝혀준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교류하며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받을 운명인 것. 입사를 하며 그 사이클에 다시 불을 지핀 것 같다.
망할 놈의 호텔 빨래 시스템. 호텔 자체가 그리 좋은 호텔이 아니라서 빨래를 작은 빨래방에서 직접 해야 하는 데, 30분에 10링깃 (한화 약 3,300원)인 데다가 세제도 시원치 않다. "자연친화적(eco-friendly)" 세제라서 거품이 안나는 거라는데, 헛소리 같다. 결국 30분씩 두 번 빨래를 돌리며 옷감만 낭비했다.
이런 사사로운 일들이 모두 쌓여서 이민, 이사를 피곤하게 만든다. 평소 익숙하게 했던 일상들을 전부 다시 알아가야 하고, 그 과정이 절대 매끄럽지 않다. 그럼 기존에는 뇌를 쓸 필요 없는 습관이었던 것이 새롭게 학습해야 할 과제가 된다. 삶에 과제가 갑자기 늘어나는 것이다.
'BEAN BROTHERS KL'라는 카페에서 작업을 했는데, 분위기도 좋고 식사도 만 원대에 해결할 수 있어서 앞으로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한국 카페와 비슷한 감성에 브금도 집중할 수 있는 음악이 나와서 많은 로컬들이 노트북을 들고 와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KLCC공원을 처음으로 제대로 가보았다. 6월이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숨 막히는 더위는 어쩔 수 없었지만, 분수 쇼와 거대한 트윈 타워가 꽤나 아름다웠다. 물론 도시의 매력을 잘 모르는 나에겐 큰 의미가 없다.
쿠알라룸푸르가 내가 사는 마지막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