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복이란 것이 터져버렸다

WEEK3 [6/30-7/6]

by 시옹

6/30 월, 삐빅- 월요병입니다

해외취업을 하면 외국생활 적응과 회사 적응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당한 압박 속에 놓인다.

나는 슬프지만 새롭고 낯선 환경이 오히려 익숙한 사람이라서 조금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순 없다. 집도 구하면서 일도 하고, 운동을 할 곳을 찾으면서 회사 사람들의 이름과 직책도 외우려니 조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나! 오롯이 나의 결정인 것을.

오늘은 예기치 않게 조금 초과근무를 했다. 야근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이벤트가 퇴근시간 후에 있어서 사전에 이미 알고 있는 경우, 일이 너무 많아서 8시간 안에 해결하지 못한 경우, 그리고 갑작스레 이슈가 생겨서 예기치 않게 집에 못 가는 경우 등이 있다. 모든 초과근무는 해롭지만, 특히 예측불가능한 초과근무는 더욱 해롭다. 회사에 의해 일상생활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지금은 회사 사정상 특수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지만, 회사에 끌려다니는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나에겐 오늘 같은 날이 좀 난감하다.

퇴근하고는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호텔 한달살기' 라니, 어쩌면 남들의 눈에는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영장과 조식, 그리고 매일 방을 치워주는 서비스는 물론 좋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누웠던 침대에서 매일 잠에 들고, 그들이 썼던 수건으로 매일 몸을 닦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넓은 수영장을 나 혼자 차지한 채 둥둥 떠있을 때는 이런 삶에 감사하다.


7/1 화, 올해가 반절 남았다니

2025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동안 반년이 지나갔다. 2025년이라니! 숫자만 보면 먼 미래 같다.

꽤나 꽉 찬 업무를 보고 호텔로 돌아와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호텔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다. 그리고 배달어플 그랩(Grab)으로 'Eatomo'라는 포케집에서 포케를 시켜 먹었다. 배달비까지 약 12,000원 정도 했는데, 신선한 채소와 단백질, 건강한 탄수화물이 들어있어서 가치가 있었다. 사실 이렇게 매일 먹으면 한국과 식비로는 거의 비슷하게 든다. 다음다음 주부터 진짜 집에서 살면서 음식을 해 먹게 되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처럼 살려면 한국만큼 비용이 든다"는 후진국/개도국 생활 국룰은 역시 말레이시아에서도 똑같은 것 같다.


7/2 수, 아는 척하는 하루

회사일로 공항을 다녀왔다. 쿠알라룸푸르 도심과 KLIA(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은 차로 1시간 정도 걸릴 만큼 꽤 거리가 있는데, 지하철을 이용해 차 없이도 갈 수 있지만 보통 택시/차를 이용하는 것 같다. 아직도 프로젝트 중간에 투입된 바람에 어리바리의 연속이다. 모르면 알아야 하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아는 척해야 하고.


7/3 목, 절 찾지 말아 주세요

점심시간에 만난 펫샵 속 고양이

직장인들은 공감할 것이다. 회사에서 아무도 날 찾지 않았으면 좋겠는 그 마음.

다음 주에 큰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회사는 요즘 정신없다. 사실 이 또한 요란한 빈 깡통인지 꽉 차서 넘치는 물통인지는 까봐야 한다. 나는 어차피 일개 졸병일 뿐이니 어느 쪽이든 똑같다. 그저 한주 한 주가 지날수록 좀 더 이 환경에 적응하고 있을 뿐.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쿠알라룸푸르 안에 암팡(Ampang)이라는 지역인데, 몽키아라(Mont Kiara)가 한인타운화 되기 전에 구 한인타운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한식집이나 상점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한식이 땡긴다는 동료분과 함께 점심으로는 정가네에서 짜장밥을 먹고, 저녁에는 Shawarma Habibi라는 곳에서 슈와마를 시켜 먹었다. 슈와마는 중동식 케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뭐든 쉽게 맛있어하는 사람인지라 여기 치킨 슈와마가 딱 입맛에 맞았다. (사실 그래서 어제오늘 모두 똑같은 음식 시켜 먹음)

나는 구독자 1.9천 명의 유튜브 채널 '시옹표류기'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유튜브와 브런치, 블로그, 숏폼 영상 등의 작업을 회사와 병행하고 있다. 강제성이 전혀 없는 순수 취미기 때문에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의자에 앉는 게 참 힘들다. 그래도 퇴근 후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하면 그건 야근과 다를 바 없다는 정신으로 오늘도 영상 편집을 해내본다.


7/4 금, 타지에서는 직장동료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다음 주 행사 때문에 정신없는 근무시간을 보낸 뒤 직장동료의 집에 집들이를 갔다. 타지에서는 직장동료는 회사에서는 직장동료, 밖에서는 한국인 친구가 된다. 특히 나이가 또래면 더욱 빠르게 친해진다. 필리핀에서는 또래인 한국인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서 상당히 반갑다.


7/5 토, 주말 근무를 하는 회사가 있다고요?

토요일 9:30-17:30. 풀타임으로 초과근무를 하게 되었다. 다음 주 행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쿠알라룸푸르 컨벤션 센터(KLCC)를 돌아다니며 온갖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회사 밖의 생활을 중요시하는 나에게 주말근무는 매우 치명적이다. 근무 자체가 싫은 것의 차원이 아니라, 그만큼 스스로에게 할애할 수 있는 정신과 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례적인 행사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만... 이만큼의 업무강도가 용납될만한 월급과 복지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면 직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월급쟁이 직장인들은 누구나 다 공감할 것!

결국 숙소에 돌아와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절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지도, 건강한 음식을 챙겨먹지도, 영상편집을 하며 나의 작업을 하지도 못한 채 몸과 마음을 회사에 바친 불행한 토요일이다.


7/6 일, 인간은 모두 자신을 미화한다

어제 회사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스스로를 만회하기 위해 카페에 작업을 하러 갔다. LOKL Coffee Co라는 곳인데, 필리핀도 그렇고 말레이시아도 그렇고 카페에서도 기본적으로 식사를 다 팔아서 점심으로 태국식 계란덮밥을 먹으면서 작업을 했다.

직장동료 H와 함께 1950년대 흑백영화 <라쇼몽>도 보러 갔다. 일본 특유의 수치심 문화, 여성을 나약한 존재로 그리는 그 당시 분위기 등 공감 안 되는 요소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주제는 "인간은 모두 자신을 미화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전 세계 인류가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다음 주가 지나가면 회사 행사도 끝나고, 제대로 된 집으로 이사도 간다. 그래서 다음 주가 끝나는 그날이 너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