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몽생미셸
파리 여행을 검색하다 보면 근교 여행으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 바로 몽생미셸이다.
남들은 몇 박 며칠을 잡아가면서 느긋하게 즐기는 근교 투어지만, 바쁜 한국사람들은 당일치기로 알짜배기만 속성으로 보고 가는 곳. 나도 피는 못 속이는지, 새벽같이 일어나 당일치기 투어로 몽생미셸로 향했다.
한국인이 가이드인 투어 특징, 절대 한 장소만 가지 않는다. 다양하게, 많은 곳을 체험하게 해 준다. 물론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은 필수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에트르타. 해외여행을 한 번만 가도 알게 되는 것은 바로 날씨가 그 장소에 대한 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다행히 에트르타 해안에 갔던 날 날씨가 완벽했다.
등산하면 질색이었던 나도 저절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드는 저 그림 같은 절벽 쪽으로 올라가 봤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환상적인 바다풍경이 펼쳐진다. 분명 바다는 다 같은 바다일 텐데, 색깔부터 밀도, 습도, 냄새까지 다른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이게 여행의 냄새인가 싶다.
두 번째 도착지는 옹플뢰르라는 항구도시다. 항구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인상적이다. 옹플뢰르는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강의 끝자락에 위치한 항구도시라고. 신기하게도 항구도시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구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영화 세트장 같다. 마을사람들이 작정하고 예쁜 페인트색을 골라 칠해놓은 것 같다. 유럽 여행을 오면 이런 것에 가장 충격을 먹는 것 같다. 어떻게 이런 곳이 사람 사는 곳이지? 우리나라는 전부 네모난 회색 건물인데. 이게 식민지가 아니었던 나라들의 여유일까. 여긴 세븐일레븐도, ATM도, 24시 빨래방도 없다. 심리학에서는 태생과 환경(Nature or Nurture), 둘 중 어떤 요소가 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많은 연구가 존재하는데, 옹플뢰르를 보면 과연 태생적 기질이 환경을 이길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여기서 태어났으면 과연 지금과 같은 성격을 갖고, 지금과 같은 생각을 했을까?
에트르타, 옹플뢰르를 거쳐 드디어 몽생미셸에 도착했다. 정말 허허벌판에 웅장한 성 하나가 떡하니 놓여있다. 실제로 보면 더 입이 안 다물어질 정도로 신기하다. 완전히 혼자서는 참 오기 어려웠을 것 같은 곳. 배낭여행을 하면서도 이렇게 중간중간에 가이드 투어를 넣어서 하루 정도는 신경 쓰지 않고 전문가를 따라다니며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몽생미셸은 수도원이다. 옛날에 잔인함으로 악명 높았던 바이킹들이 이 지역의 공작이 되고, 본인들의 권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종교를 사용했고, 그래서 몽생미셸을 만들었다고. 몽생미셸의 수도사들은 평생을 저 안에서만 지낸다고 한다. 심지어 죽어서도 저 성 안에서 화장을 한단다. 그들은 세 가지 맹세를 하는데, 바로 청결, 청빛, 그리고 순명이라고. 그리고 그들은 교황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한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몽생미셸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꽃핀다. 성에 불이 들어오기 때문. 디즈니 인트로 영상이 떠오르게 만드는 비주얼이지만, 디즈니 로고에 영감을 준 성은 따로 있고, 그건 독일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다.
하루만 봐도 성 구석구석을 다 볼 수 있는 저런 작은 공간에서 평생을 갇혀 살 수 있을까. 얼마나 굳은 신념을 을 가지고 있어야 그 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성직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걸까. 그러나 몽생미셸 수도사들은 오히려 성 밖 사람들이 세상에 갇혀 산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세상에 갇혀 산다니. 놀랍게도 무엇을 말하는 건지 이해가 되어버린다. 소셜미디어 친구들의 삶에 부러움을 느끼고, 트렌드를 쫓아가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을 느끼고, 언젠가부터 무섭게 늘어난 온갖 책임을 다하며 사는, 세상에 갇힌 나.
몽생미셸 덕분에 내 삶의 창살을 한번 더 만져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