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도시

미국 샌프란시스코

by 시옹
KakaoTalk_20190720_034916764_10.jpg 페리 빌딩 (Ferry Building)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는 나의 미서부여행의 덤과 같은 도시였다.

영화 마니아로서 죽기 전 꼭 가보고 싶었던 로스앤젤레스처럼, 혹은 광활한 자연을 좋아하는 내가 한 번쯤 두 눈으로 보고 싶었던 그랜드 캐니언처럼 로망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샌프란시스코는 안개가 자주 끼기로 유명해서 "안개 도시(The Fog City)"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한,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해서 라스베이거스, 그랜드 캐니언 투어까지 마치고 미서부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로서 도착한 샌프란시스코에는 큰 기대가 없었다.




KakaoTalk_20190720_034916764_04.jpg 페리 플라자 파머스 마켓 (Ferry Plaza Farmers Market)

하지만 기대를 하지 않아서일까. 샌프란시스코는 그만의 매력이 확실했던 도시로 기억에 남는다.

숙소 근처였던 페리 빌딩에서 쭉 걷다 보니 '페리 플라자 파머스 마켓'이라는 플리마켓이 열려있었다.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부터 섬세하게 만든 만년필, 동양화버전 금문교 등 누가 봐도 눈길이 갈만한 작품들이 많았다. 내가 샌프란시스코 주민이라면 이곳에 주기적으로 와서 꺼져가는 창의력과 영감에 다시 불을 붙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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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조금 우습게도 공원에서 여유롭게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었다.

이날 처음 만난 동행과 함께 피츠 커피(Philz Coffee)에서 민트 모히또 라떼, 슈퍼두퍼 버거(Super Duper Burgers)에서 버거, 베트남 샌드위치 가게에서 치킨 반미를 사서 알라모 공원으로 향했다.

알라모 스퀘어 공원은 샌프란시스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사각형의 작은 공원이다. 로컬들이 반려견 산책이나 조깅, 유유자적을 위해서 찾는 곳 같았다.

우리는 이곳저곳에서 열심히 사 온 음식들을 벤치에 펼쳤다. 패티가 두툼한 슈퍼두퍼 버거와 향근한 고수 냄새가 나는 치킨 반미 샌드위치, 그리고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는 민트 모히또 라떼까지. 알라모 스퀘어에 앉으면 보이는 파스텔톤의 주택들을 보며 한입씩 베어 물었다.




알라모 스퀘어 (Alamo Square)에서 보이는 Steiner Street

이날 만났던 동행은 나보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언니였는데, 상당히 깊고 진지한 얘기를 했어서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이 여행에서 어떤 것을 얻어가야 하는지, 꼭 무언가를 얻어가야만 하는 건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입술에 묻는 버거 소스를 연신 닦아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만큼 마음이 맞았던 동행이었던 것이다. 언니, 잘 지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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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도착한 곳은 더 카스트로.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보다 더 직접 보고 싶었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더 카스트로는 성소수자(LGBTQ+) 인권 운동의 발상지이자 심장부로 알려진 아주 상징적인 지역이다.

한국은 아직도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이 잘 적립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 하다못해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았다면 모두 (영어를 하는)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나라인 것 같다. 나는 기질적으로도 평등과 화합을 좋아하고, 어릴 적 해외에 살았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가치관이 상대적으로 포용적이다. 그래서 단순히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쟁취해 낸 자유의 상징인 이곳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카스트로 (Cas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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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무지개 횡단보도.

거리의 화려한 색깔들이 희끄무레한 샌프란시스코 하늘조차 환하게 만들어주었다.

카스트로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외치고 있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멋지다'라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수많은 차별의 한 가지 유형일 뿐이라 생각한다. 세상엔 사사로운 이유로 수많은 차별들이 존재한다. 모든 인간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사랑받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의 날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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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교 웰컴 센터 (Golden Gate Bridge Welcom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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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금문교.

금문교 뷰포인트는 여러 곳이 있다. 나는 그중 가장 전형적인 금문교 웰컴 센터로 향했다. 관광지답게 금문교가 새겨진 여러 기념품들을 살 수 있고, 금문교에 대한 역사가 담긴 안내문도 있다.

금문교는 세게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로 손꼽힌다. 다리가 세워진 1930년대 당시에는 거센 조류와 안개, 강풍 때문에 "지어질 수 없는 다리"라고 불렸었지만, 4년 만에 극적으로 완공했다고 한다. 금문교의 독특한 붉은색은 아예 공식 명칭이 있는데, '인터내셔널 오렌지(International Orange)'라고 불린다. 주변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면서도 샌프란시스코의 짙은 안갯속에서 배들이 다리를 잘 볼 수 있도록 세심한 논의 끝에 선택된 색상이라고.

확실히 금문교는 정확히 맞춘 퍼스널 컬러처럼 칙칙한 날씨 속에서도 아름다웠다. 빨간색도, 벽돌색도, 주황색도 아닌 그만의 색, 인터내셔널 오렌지. 개인적으로 가을 웜톤인 내 마음에도 쏙 드는 컬러였다. 칙칙한 샌프란시스코에 즉각적인 화사함을 얹어주는 찰떡 립스틱과 같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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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픽스 야경 (Twin Peaks)
삼각형으로 보이는 것이 베이 브리지(Bay Bridge)

나는 도시보다 자연여행을 더 선호하지만, 오직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야경!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트윈 픽스라는 쌍둥이 봉우리 언덕에서 도시 전체 뷰를 감상할 수 있다.

여행자에겐 바이블과 같은 구글지도만 철석같이 믿고 버스를 탔다가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길이 막혀있어 낭패를 봤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걸까, 다행히 해가 전부 지기 전 샛길을 발견해서 쫓기는 사람처럼 재빠르게 언덕을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도착한 트윈 픽스, 소문대로 야경이 끝내줬다. 불타오르는 것처럼 환한 도로가 다운타운을 관통하는 마켓 스트리트 (Market Street)이고, 그 뒤로 고층 빌딩들이 보였다.

내가 방문했던 날은 날씨가 맑아서 금문교와 베이 브리지(Bay Bridge) 모두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은하수를 보는 시간, 도시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시간이다.


야경이 깊어지니 여기저기서 대마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오락용 대마가 합법인 캘리포니아 주 로컬들에겐 이곳이 대마를 즐기는 장소로 유명한가 보다.




소살리토(Sausal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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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엔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소살리토에 들렀다.

소살리토는 '작은 버드나무 숲'이라는 뜻을 가진 휴양 마을이다. 과거에는 예술가와 작가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라서 여전히 거리 곳곳에 독특한 갤러리와 공방이 많았다.

특히 주택 하나하나가 독특한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 날따라 유독 뿌연 안개가 짙어서 소살리토 거리를 걷는 내 마음에도 안개가 드리웠었다. 미국 서부여행의 끝자락이 되어가니 체력과 함께 호기심과 흥미도 점점 바닥이 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장기간의 세계여행은 어렵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새겼다.




피셔맨즈 워프(Fisherman's Wha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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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마지막으로 간 곳은 피셔맨즈 워프.

워프(Wharf)는 부두라는 뜻으로, 피셔맨즈 워프는 과거 이탈리아계 어부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항구다. 보통 해산물 위주 먹거리와 피어 39(Pier 39)의 야생 바다사자들을 보러 이곳을 방문한다.

가난한 학생 여행자였던 나는 해산물은 사 먹지 못하고 인앤아웃 버거(In-N-Out Burger)로 배를 채웠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피어 39에는 생각보다 정말 많은 바다사자들이 쉬고 있었다. 도시 한복판에 이렇게 많은 바다사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휘둥그레 그들을 쳐다보는 인간들과 달리 바다사자들은 인간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도심 속에서도 야생 동물들과 공존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샌프란시스코를 마지막으로 미서부여행이 끝이 났다.

2019년 미국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살던 시절 봄방학을 맞아 다녀왔던 여행이라, 떠날 때 아쉬움이 덜했던 것 같다. 인천 공항이 아닌 JFK 공항으로 향했으니.

당시 기숙사 룸메이트와 봄 방학 얘기를 하다가, 미국인인 룸메이트는 정작 서부지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마치 서울사람이 남산타워에 가지 않는 것과 비슷한 걸까. 아님 내가 모두가 여행을 좋아하는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사는 걸까.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 남는 시간에 뭘 하고 살았을지 상상해 보며, 이제는 집과 같은 기숙사 싱글 침대에서 잠에 들었다.


San Francisco, California, The United States_ Key words
- Ferry Building
- Ferry Plaza Farmers Market
- Alamo Square
- Steiner Street
- The Castro
- Golden Gate Bridge Welcome Center
- Fort Point National Historic Site
- Battery Spencer
- Baker Beach
- Sausalito
- Fisherman's Wharf
- Pier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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