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화. 나는 기다리지 않았어

by 단슬강

입영일 아침부터 스펙타클했다. 부모님 차 문이 꽁꽁 얼어붙어 열리질 않았다. 새벽 댓바람부터 렌트카를 급하게 구해 겨우겨우 논산까지 닿았다. 군대 가는 날이 이렇게 어수선해도 되나 싶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덕분에 너무 무겁지 않게 그날 아침을 통과할 수 있었으니까.

그녀는 논산에 없었다. 전날 2차 임용시험을 마치고 태백 본가로 내려가는 날이었다. 머니까 오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이 배려였는지 강함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훈련소에 있는 동안 편지가 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인터넷 편지였지만 그녀의 하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늘 수업이 어땠는지,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저녁 하늘이 유난히 예뻤다는 이야기들. 별것 아닌 문장들이었는데, 매일의 훈련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그 편지를 펼칠 때마다 바깥세상이 아직 거기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 느낌이 꽤 중요했다.

그녀가 나중에 말해줬다. 임용 최종합격 발표가 난 날, 가장 먼저 나에게 알리고 싶었는데 이미 내가 입대한 뒤였다는 걸 그 순간에야 실감했다고.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왔던 그날, 처음으로 이별이 느껴졌다고. 나는 그날 논산 훈련소 어딘가에서 밥을 먹거나 구보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기쁨을 몰랐다.

자대 배치는 강원도 고성, 최전방이었다. 후방을 바라며 논산 훈련소를 택했고, 국방부에서 나를 선택해 운전병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장군차 운전병 면접까지 봤다. 면접관의 질문에 예배일을 지키겠다는 신념을 고백했다. 안락한 후방의 보직과 맞바꾸기엔 너무 무거운 말이라는 걸 알았지만, 입술 밖으로 나온 말은 단호했다. 결과는 강원도 최전방 배치였다. 같은 기수 훈련병 중 강원도로 간 운전병이 여섯 명이었고, 그 안에 내 이름이 있었다. 그때의 황당함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자대에서 생활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예배일에 교회를 못 간 적이 없었다. 인간의 계산으로 그토록 피하려 했던 자리에서, 정작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지켜졌다. 억울함이 감사로 바뀌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에서 고성까지는 세 시간이 넘었다. 굳이 오겠다는 그녀의 평일을 지켜주고 싶어서 오지 말라고 했지만 결국 오랜 기다림 끝에 그녀는 왔다. 주말 외출을 아껴뒀다가 속초로 나갔다. 반년 만의 만남이었다. 밥을 먹고 카페에 앉아 한참을 떠들었다. 그러다 그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연애한 지 꼭 5년이 되던 해였다. 한 남자만 오래 만나면 다양한 사람을 경험하지 못한다는데, 자기는 억울하다고. 나는 딱히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럼 내가 한 달마다 다른 사람처럼 다른 모습으로 사랑해 줄게. 그녀가 웃었다. 그 한마디에 가슴이 몽글해졌다고, 한참 후에 말해줬다.

1년 9개월 동안 주변에서 이런저런 바람이 불었다고 했다. 군대 간 남자친구는 없는 거나 다름없다는 둥, 소개팅을 받아보라는 둥.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그 시절 기다림이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기다리지 않았어. 그냥 내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재밌게 살다 보니 네가 나와 있더라."

서로가 서로를 붙잡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래서 더 단단해졌다.

작가의 이전글05화. 내가 그리지 않은 지도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