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휴학계를 낸 뒤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이번엔 의대를 목표로 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학원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독서실과 도서관을 오가며 혼자 모든 것을 알아보고, 혼자 계획을 세우고, 혼자 버텼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공부를 하는 동안 보고 싶은 마음도 꾹꾹 눌러 참고 수 주, 어떨 땐 한 달도 훌쩍 넘어서야 한 번씩 만났다. 긴 기다림 끝에 만날 때면 그녀는 도시락을 싸주기도 했고, 별말 없이 옆에 앉아 밥을 먹고, 함께 책을 읽고, 또 돌아갔다. 마지막 수능을 5개월 정도 앞두고 그녀가 6개월간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었지만 우리 사이의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쉬웠던 첫 번째 수능을 뒤로하고 마지막 수능을 치르던 날, 그녀는 캐나다에 있었다. 시험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알았다. 또 망쳤다. 모의고사 성적은 어찌어찌 지방의대까지는 도전해볼 만 했는데, 정작 수능에서 대차게 말아먹었다. 결국 실력 부족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그 모든 버팀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내가 가는 이 길이 맞기는 한 건지. 그 질문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절망스러운 민낯을 그대로 태평양 너머로 전할 자신이 없었다. 대신 가장 친한 친구에게 연락했다. 피곤할 텐데도 한걸음에 달려와줬다. 우리는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늦은 밤 하염없이 걸었다. 한참을 쏟아냈다. 푸념이었고, 울음이었고, 분노였다. 가로등 불빛 아래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한 바탕 비워내고 나서야 겨우 전화기를 들었다.
그녀는 그저 그냥 들어줬다. 그리고는 딱 한마디로 나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라앉혔다. "뭐가 걱정이야? 내가 있잖아. 자기를 위한 다른 길이 있겠지."
그제서야 맑게 개인 내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의사가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붙들고 기도를 많이 했다. 돌아보니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했던 일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가장 즐거웠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 그 눈빛을 볼 때마다 마음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해서 사범대라는 방향을 잡았다. 학과는 점수에 맞춰 생명교육과와 화학교육과 사이에서 고민했다. 화학교육과는 솔직히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면접으로 뒤집어보자는 마음으로 원서를 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입학하는 학번만 유독 합격선이 낮았다. 추가합격도 아니고 최초합격이었다. 얼떨떨했다. 나중에 알고 교수님들과 웃으며 얘기한 것이지만,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우리 학번이 좀 덜떨어지는 놈들이라는 말이 돌았다고 했다. 그리고 희한하게 다음 학번부터는 바로 다시 원래대로 높은 수준의 학생들이 채워졌다고.
우연치고는 너무 딱 맞아떨어졌다. 하나님을 믿는 나로서는 웃음이 먼저 나왔다가, 곧 감사기도가 나왔다. 여기를 보내시려고 예비하셨던 건가. 그 질문이 이번엔 불안이 아니라, 조용한 안도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