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신뢰

04화. 휴학계를 내던 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by 단슬강

3학년이 되던 해, 신학과의 모든 학생들은 지역교회로 파송되었다. 학생 전도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각자 배정받은 교회로 나가는 것이 학교의 오랜 전통이었다. 대부분은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 선배들이거나 연륜 있는 만학도들이었다. 나만 홀로 스물한 살이었다. 군복도 입어보지 않은 애송이가 전도사 명함을 달게 된 것이다.

파송식 날, 대표 교수님이 한 명 한 명 악수를 건네며 격려의 말씀을 하셨다. 내 차례가 됐을 때 교수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 교회가 지금 문제가 조금 있는데, 윤 형제가 기도 많이 하면서 잘 하리라 믿습니다."

복학생 선배들을 건너뛰고 왜 하필 나인지, 그 말이 격려인지 부담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가슴 한 켠이 서늘해졌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처음 교회에 발을 들이던 날부터 공기가 달랐다. 새로 부임한 전도사를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계시던 목사님들은 각자의 부서 일에만 집중하셨고, 아무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예산 처리도, 청소년부 운영도, 모든 것이 말 그대로 나에게 던져졌다.

맡겨진 청소년들은 신앙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억지로 나온 티가 역력했다.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게임을 하다가 저녁때가 되면 밥을 사달라고 졸랐다. 교회에서 아무런 지원도 안내도 없었다. 결국 과외로 용돈벌이나 겨우 하던 내 사비를 털어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반복됐다.

그날 오후, 예배가 끝나고 나는 혼자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차 문을 닫자마자 눈물이 났다. 서러웠다. 너무 이상했다. 한참을 울다가 기도했다. 이게 맞는 건지,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 건지. 당장에 들리는 목소리는 없었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오히려 하나의 물음이 선명해졌다. 목회에 진정한 뜻도 없는 내가 누군가의 영혼을 돌보는 이 막중한 자리에 있는 것이 과연 옳은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담임 목사님과 담당 교수님께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휴학계를 냈다. 부모님은 도망치지 말고 버티라고 하셨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애초에 목회에 뜻이 없었던 나였다. 마음이 이미 많이 흔들린 터였다.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이 죄송했지만, 이제는 여기서 멈추고 진정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가기 위해 결단을 내리고자 한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결국 아들을 믿어주셨다.

그녀에게는 전화로 먼저 털어놓았다. 한참을 들어주던 그녀가 말했다.

"무슨 결정을 하든 응원할게. 고생많았어."

그리고 며칠 후 만났을 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꼭 안아줬다. 그 품 안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그날의 선택을 도망이라고 생각했다. 버텨야 했는데, 더 기도해야 했는데.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것이 나를 지금 이 자리로 이끌어온 보이지 않는 손길이 아니었을까. 그때 실패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다음 길을 열어주는 시그널이었다는 것을,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작가의 이전글제2장.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신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