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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법 연구

탁월한 작가이자 독자가 되는 과정

by 김윤후


독서는 세상과 면하는 탁월한 방법들 중 하나이다. 독서는 세상의 물리적 실체, 정신적 실체, 형이상학적 실체 등 여러 실체를 보여준다. 그래서 많은 사상가들과 학자들은 독서를 학문 탐구와 진리 탐구에 있어 매우 탁월한 방법론으로 이해했다.


나에게 역시 독서와 책은 세상과 더불어 진리를 탐구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추적인 수단이다. 그래서 독서법은 나의 생각의 구조와 발전을 좌지우지하는 민감한 부분이 아닐 수가 없는데, 이 글은 최근 내가 생각한 독서법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다.



밀실철학의 독서법 - 내재적 독서


밀실철학은 돌아봄의 철학이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과 이에 대한 재구성을 기반으로 세상 유일한 자기만의 '내성적 서사'를 탐구하는 철학이다. 그래서 밀실철학의 독서법은 내성적이고 자기 회귀적이다.


내가 생각의 과정으로써 차용하고 있는 '생각 공정'은 밀실철학 독서법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생각 공정은 생각이 모여 운동하여 어떤 완결된 결과물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한 방법을 담고 있다. 생각 공정의 운동은 다음과 같다.

우선 input이 들어온다. 그것은 음악, 텍스트, 영화, 경험 등 다양하다. 다만 그것이 어떤 내성적인 모습으로 들어온다면, 그것은 내성적인 서사를 결합한 내성적인 생각으로 발전한다. input들은 흩뿌려진 생각들의 형태로 마구 휘갈겨진다. 그리고 휘갈겨진 생각들은 유사한 키워드로 묶여 정리되는데, 이것이 바로 '생각 정제'이다. 그리고 생각 정제의 키워드가 모여 하나의 생각의 세계관을 만들면 그것은 생각 정립의 단계가 된다. 생각 정립은 하나의 유기적인 세계관이다. 마치 한 철학자의 철학관, 문학가의 문학관과도 같다. 그리고 생각 정립은 그 최후의 형태를 맞이하려고 하는데, 그 최종 귀결이 바로 '창조'이다. 창조는 작품을 만듦으로써 가능해진다. 창조로서 최고로 아름다운 형태를 지니게 되는 생각은 이제 안식일을 맞이하고 연명한다.


생각 공정의 과정을 차용한 내재적 독서는 자아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읽는다. 다만, 자아는 최적화된 나르시시스트의 자아가 아니라, 많이 희석된 감성적인 자아이며, 나름 이질적인 세계의 요소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여분의 공간이 존재한다.


정리: 내재적 독서는 '내성적 서사'를 중심으로 생각의 완결을 이루어 가는 독서 - 자기 회귀적이다. 모든 생각의 완결은 <나비>와 <ARCANE> 작품 창조에 기여한다. 두 책이 내재적 독서의 최종 목적지이다.




세계철학의 독서법 - 외재적 독서


세계철학에는 돌아봄이 없다. 오직 바라봄과 내다봄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독서법 역시 순수 지식, 외부 맥락에 대한 객관적인 공부에만 그친다. 그들 사이에 유기적인 관계를 논할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 '자아의 초상'은 매우 희박하다.


외재적 독서 역시 생각 공정을 거치지만, 궁극적인 창조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결이 좀 다르다. 그것은 끊임없는 비교연구, 학술 공부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아카데미이지, 예술활동이 아니다.


하지만 외재적 독서에도 예술활동이 있다. 이 경우는 신화, 역사 등을 공부해서 판타지 세계관을 창조하고자 하는 <무제 판타지 소설> 프로젝트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는 신화, 역사 등에 대한 객관적인 공부를 바탕으로 하는 창조 행위이기 때문에 세계철학적 맥락에 포함된다. --> <드래곤 노트>에 아이디어를 적고 네이버, 브런치 등을 활용하여 소설을 작성한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세계철학은 창조를 배제한 아카데미에 있다. 아카데미에서는 함부로 창조와 철학관이라는 도그마를 설정하지 않는다. 그러면 비판은 수단이 되며 아카데미는 그저 박제된 정신이요, 인공 식물처럼 되어 버린다. 그래서 세계철학의 외재적 독서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 <세계철학노트>에 내용을 정리한다.


지식, 개념, 화두, 주제 위주로 탐구가 진행된다. -> '자유'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여러 사상가들과 이데올로기들의 입장을 공부함

한 작가를 위주로 공부하는 경우도 있다. ->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작가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그의 작품은 순차적으로 읽고 재독 해봄.

학문의 맥락 위주로 공부하는 경우도 있다. -> 러셀 서양철학사 등 공인된 철학사 계보를 수용하여, 주관적으로 발췌해서 읽는 철학 공부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학문 그 자체를 존중하는 공부를 함.


정리: '자아'가 무력화된 상태에서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공부를 하는 독서




푸른 광장의 철학 - 리히트적 독서


푸른 광장의 철학은 가장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상태의 철학으로, 돌아보고 바라보고 내다보는 철학이다. 가장 성숙한 철학의 방법으로, 이를 기반으로 한 독서는 리히트적 독서라고 불린다.


리히트적 독서는 재독을 통한 '인간'의 발견을 전제로 한다. 리히트적 독서는 자기를 가장 무력화시키며, 스스로를 최초의 상태, 어린아이의 상태로 만든다. 어린아이는 세계를 나의 연장으로 보지도 않고(내재적 독서) 세계 그 자체로서 객관적으로 보지도 않으며(외재적 독서) 세계의 물감을 자기 몸에 마구 바른다. 그이는 david jamin의 그림처럼, 가장 비상하고 자유롭게 존재한다. 리히트적 독서는 감탄하는 독서이다.


최초의 인간은 순간에, 정오의 순간에만 존재한다. 그래서 그이는 소멸을 환영한다. 그래서 문자로 남기는 것을 경멸한다. 문자는 순간을 죽인다. 감탄을 죽인다. 그래서 노트도 없고 창조도 없다. 순수한 독자가 전부다.





내재, 외재, 리히트 세 독서법 비교


내재적 독서와 외재적 독서는 자아에게 어느 정도 중점을 주느냐에 따라 절대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생각공정을 통해 유기적인 구조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탐구 방법에서의 유사함이 있다.


외재적 독서와 리히트적 독서는 반대로 탐구 방법은 구조물을 만드느냐 여기에 아예 단념하느냐에 따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지만 근본적인 독서법은 비슷하다. 둘의 사유의 운동은 자아를 온전히 무력화시키고 세계 안으로 배치시키기 때문이다.





예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내재적 독서: 혜윰 노트에 있는 생각정제와 연계해 이해 --> <arcane> 작성에 기여하기 / 리히트적 독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 순차별로 읽으며 작가의 문학관, 표현론, 인간관, 철학 등을 마구 음미해서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인간의 정수를 보기, 그리고 감탄하기


한병철 저서들 ---> 내재적 독서: 생각 정제 및 정립에 매우 큰 기여 --> 사유를 구체화, 가시화, 구조화해서 <arcane> 작성의 주축으로 삼음 / 외재적 독서: 책에 파편적으로 소개되는 개념들을 연계해서 추가로 공부해 나감.




유의사항 및 추가적인 연구


일반 책들을 독해할 때, 특히 고전을 독해할 때는 항상 푸른 광장철학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즉, 책 자체를 읽기의 목적으로 두어야 한다. 고전은 그 자체로 욕망의 대상이지 다른 목적을 위해 소비되는 이차적인 텍스트 다발이 아니다. 고전을 읽을 때는 '그냥' 읽어야 한다. 그리고 재독 하고, 인간을 발견하고, 세계를 발견하고, 감탄해야 한다.


그럼에도 여기서 제시된 독서법은 분명한 위계를 보이는데, 내재적 독서의 경우, 창조로 마무리(<나비>,<아케인> 집필)하면서 안식일을 준다. 외재적 독서의 경우, 예술로서 <무제 판타지 소설>이 완성되어 약간의 안식일을 주지만, 공부로서는 끝이 없다. 마지막으로 리히트적 독서는 가장 탁월한 독서법으로, 모든 순간이 탄생이고 안식일이다. 그래서 문자를 남기거나 창조 행위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 가지 독서법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사실 한 가지만을 차용한 독서법은 리히트적 독서 외로는 불가능하다. 리히트적 독서법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모든 독서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내재적 독서와 외재적 독서를 감행하는 것이다.


내재적 독서가 주로 일어나는 경우는 나의 삶을 성찰하고 내면의 복잡다단한 정서들을 파악하기 위해 읽는 경우가 있으며 대표적으로 헤르만 헤세를 읽을 때가 그렇다.


외재적 독서가 주로 일어나는 경우는 특정 주제, 작가, 학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발원하는 경우가 있으며, 특정 학문의 계보를 통한 진지한 공부나, 특정 작가를 탐독하는 것, 특정 주제와 담론에서의 여러 철학 사상들을 섭렵하는 것 등이 있다.



눈치 채었겠지만 세 독서법의 구분 외로 다른 층위의 구분도 존재한다. 이러한 층위들은 나중에 종합하여 독서법 연구의 정점으로 두어야 겠지만 말이다.


우선 첫번째 층위는 관조적 차원이다. 관조적 인식은 자아가 무력화되고 존재에 대한 집착을 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순수 의식을 지향한다.

모든 독서법은 관조적 차원이 있다. 내재적 독서는 자아와 존재를 중시하기에 관조적 인식을 추방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재적 독서에도 자아를 잠시나마 무력화하고 성찰하도록 하는 의식적 기능이 있다.

외재적 독서와 리히트적 독서는 관조적 인식이 상대적으로 더욱 강하다. 외재적 독서의 경우, 독단론을 배척하기 때문에 공정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그 공정한 인식은 바로 때 묻지 않은 관조적 인식의 도움을 받는다. 한편 리히트적 독서 역시 자폐적 독서를 배척하기 때문에 자아와 존재에 대한 집착에서 가장 자유로운 상대를 긍정한다. 그렇기에 리히트적 독서는 관조적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을 본다.


두번째 층위는 완결의 여부다. 내재적 독서의 경우는 내면적 서사를 하나의 통합된 결과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창조라 불리며, <나비>, <ARCANE>의 집필로써 완성된다. 외재적 독서는 이런 완결을 도그마라며 반대하지만, 예술작품으로서 외재적 독서에는 <무제 판타지 소설> 집필이라는 완결을 지향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리히트적 독서는 완결을 가장 반대하는 입장으로, 무언가 '결과물로 남기는 것'을 경멸한다. 그래서 리히트적 독서에는 글쓰기나 메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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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ReFBbD7RY3k&list=PLNZwtDpbB2DGB5eZlCncUYn9Ldp2Sr-Sa&pp=gAQ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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