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평화 창조
https://blog.naver.com/yunhoo0704/223869430451
https://blog.naver.com/yunhoo0704/223585096060
자유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는 '최초'와 '최후'이다. 자유는 원래부터 있었거나 영원히 있어왔거나 최후에 도래할 것이다.
최초로서의 자유는 모든 발단의 발단으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근원적 자유는 회화적이다. 그것은 흰 바탕과도 같다.
최후로서의 자유는 해방에서 오는 선물로서 존재한다. 고통스러운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자는 최후의 시간에 뛰어오르며 비상한다.
대책 없는 자유는 방종이다. 모든 자유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평화가 필요한데, 평화는 정원과도 같아서 그 안에서 풀과 동물들이 자라나도록 유도한다.
정원의 울타리는 구속이 아니다. 정원사는 계획하고 기획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정원 속 생태계가 자연발생적으로 자라나도록 '내버려 둔다'. 정원사는 그저 비옥한 토양을 제공할 뿐이다.
창조의 수식어는 '그다음에'이다. 자유는 도래할 것을 환영하고, 평화가 그 도래하는 것이라면, 창조는 소급하고 수렴하여 어떤 작품으로 완결된다. 모든 수단은 창조를 향하고, 창조는 모든 합목적성의 조각품이 된다.
창조와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목적이다. 그래서 그것은 정적인 목적지로 표상된다. 그것은 '도래한 것'이다.
비로소 신들이 하강한다.
창조 이후에는 이데아가 산산조각 나서 대지에 흩뿌려진다. 태양의 조각들은 산산조각이 나서 대지의 별들이 된다. 하늘과 땅이 뒤섞인다. 디오니소스는 가이아의 품에 안긴다. 모든 신들은 서로의 친구가 된다. 신성과 친함이 결합한다. 만질 수 있는 신! 발가벗겨진 삶.
dark fantasy
밀실철학의 아우라는 숨겨져 있기에 완성된다. 숲 속 깊숙한 곳, 적란운의 심장, 고전의 텍스트들 속에 고유하게 존재한다. 숨어있기에 아우라가 완성된다. 그래서 밀실의 아우라는 미스터리하고 강렬하다.
내성적인 밀실은 고향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근원적 원초와 거주에 대한 갈망은 죽지 않고 생생히 살아있다. 그것은 자궁과도 같은 근원의 상징을 산출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소우주를 자처하는 밀실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상정하기에 반역적이고 모순적이게 된다. 그래서 밀실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된다. 아이러니는 다시 아포리아적인 아우라를 풍긴다.
모순은 피를 흘린다. 그것은 결코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모순은 두 상반되는 논제의 스파크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근본적으로 피를 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꿋꿋이 존재한다. 꼭꼭 숨은 상태로.
그래서 밀실의 수식어는 아케인이다.
밀실철학의 방법론은 기억이다. 그것은 '돌아봄'을 통해 탐구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성적이고 내재적이며 자체의 서사를 따른다. 다만, 항상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경향이 있어서 다시 아이러니한 구조를 지닌다.
-밀실의 부작용
밀실철학은 거주와 서사를 회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그 반복은 공허를 낳고 고립을 낳을 수 있다. 그리고 거주와 서사는 자유를 죽인다. 그리고 죽음과 적막에 가까운 기괴한 평화를 준다. 그리고 밀실은 닫혀 있기 때문에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산할 수 있다. 그래서 밀실의 창조는 사생아를 싸지르는데 그친다.
-밀실의 이상
밀실은 이상적으로 소우주로 발전한다. 꿈의 세계로 그것은 나아간다. 그리고 근원과 접촉하고 단숨에 박제된다. 미소를 띤 채로.
https://youtu.be/U44qKaKpAMk?si=uBr2LJ7Mg3C4R0zC
-밀실철학의 과제
<나비> 다듬고 출판하기
<ARCANE> 완성하기
내재적 독서하기: 혜윰노트 기반 생각 공정에 기여
the game of thrones
세계철학의 시선은 외부를 향한다. 그것은 돌아보지 않는다. 돌아봄을 단념한 시선은 이제 현재와 미래를 향한다. 그래서 세계철학의 방법론은 바라봄과 내다봄이다. 그래서 세계철학의 수식어는 열림이다.
-세계철학의 이상과 부작용
그 시선은 철저히 눈의 본성에 충실하다. 눈은 안에서 밖으로 뚫려 있는 만큼 눈은 밖을 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세계를 향한 시선은 자신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시선은 거주를 단념한다. 그 단념은 최후로서 해방의 자유를 선사한다. 그래서 세계철학은 열려 있다. 세계철학이 준 열린 자유는 창조의 발판이 되어준다.
다만 거주 없는 세계철학은 주거의 평화를 잃어버린다.
세계철학은 이상적으로 세계로 비상한다. 그리고 거대한 것을, 초월적이고 초극적인 것들을 만난다. 세계철학은 높게 뛰어올라 가장 높은 곳으로 상승해 간다.
-세계철학의 과제
<무제 판타지 소설> 작성하기
외재적 독서: 순수 지식, 음미 독서
ghibli
푸른광장은 자유, 평화, 창조의 모든 조건을 고려한 캔버스다.
푸른광장은 돌아봄으로써 거주지를 기억한다.
푸른광장은 바라봄으로써 평화를 품는다.
푸른광장은 내다봄으로써 창조를 지향한다.
그 탁월한 자유는 아이러니를 초월해 활공한다.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 역사가, 즉 음유시인이 유람한다.
진리에 귀속되는 철학을 넘어 절대성을 공석으로 남겨두는 수사학이 우위를 점한다.
최초의 인간으로서 세계의 물감은 고유한 밀실의 안과 겉에 묻힌다. 최초의 인간은 어린아이여서 놀이한다.
속하면서도 속하지 않는 노마드로서 자유로운 연대를 이룬다. 노마드에게 영원한 작별은 없다. 그에겐 도래하는 것들이 지나가는 길 위에 있을 뿐이다.
푸른광장의 독자는 한 작가가 아니라 인간을 본다. 고독의 촛불이 그의 여기저기를 비추며 한 고독한 인간을 본다. 독서의 리추얼인 재독을 통해서 고전과 작가의 성당에 겸허히 들어간다. 그 신화적이고 회화적인 시간에서 그는 그저 감탄한다.
모든 서사의 종언에서 그는 외친다.
'한 갓 바보일 뿐! 한 갓 시인일 뿐!'
All this longing to be free
What if I could let it be
Don't know when I'm ever find out how
But we'll see
my legs won't go where my head wants
when you touch me and I feel butterfly
밀실철학이 깊어지면 나무의 뿌리가 깊어진다.
세계철학이 성장하면 나무가 열린 하늘로 생장한다.
푸른광장 철학이 발전하면 나무 밖 드래곤과 나비들이 노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