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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20. 2021

나이 드는 것도 좋군요.

  한 발짝 뒤로 물러날 수 있는 ᆢ


 <주님, 나이 드는 것도 좋군요>

 지은이 베르다네트 멕카버 스나이더는 카피 라이트라는 전문직을 가지고 성실하고 반듯하게 살아오신 유럽 중산층 80대 초반의 할머니로 짐작된다.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며 어떤 처지에서든 감사하는 삶을 잔잔하고 곱게 써 내려간, 지성과 감성과 영성이 다 갖춰진 평화로운 내용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도 따뜻해지고 편안해졌다.


 맞아,

 나도 이런 노후의 삶을 보낼 수 있지.

 ㅡ하루하루가 주는 선물에 감사하고 언제 어디서나 조금씩 기도하면서 '노년'을 누릴 수 있지.

 주위를 돌아보면 감사할 일이 더 많고 걱정할 일이 거의 없지.

 슬프고 외로운 날은 위로자이자 은총을 주시며 가장 잘 경청해 주시는 하느님이 함께 계시지.

 늘 해오던 일보다는 변화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일에 도전해야지.

 정말 열심히 해내고 싶은 일이나 소속되고 싶은 모임을 찾아내는 것이 하루를 생기 있고 활발하게 지내는 비결이지.

 일의 규모를 줄이고 해야 할 일을 몇 가지로 정리해야지.

 어수선한 인생을 잘 정리해서 남은 능력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모두 다 써 버리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거나 오랜 친구에게 편지를 쓰거나 누군가를 위해 점심이나 저녁을 요리해야지.

 과거의 폭풍우에 연연하지 않고 화창하게 좋은 날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야지.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언제나 근심을 잊게 하고 마음을 지치지 않게 하는 좋은 방법이지.

 참된 경청과 진정한 기도로 온전히 듣고 온전히 함께 있어 줘야지.

 지난 시절, 늘 안갯속에서 저를 이끌어 주신 그분께서는 지금도 나를 혼자로 버려두지 않으시지.ㅡ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선물이다.

 자칫 무기력의 늪으로, 상실감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려 하는 나를 다시 빛으로 이끌어 주는 사랑이다.


 지난 2월, 68세로 완전히 퇴직을 한 남편과 4월부터 단 둘만 남게 된 나날들. 눈 뜨면 하는 일이 세 끼 챙겨 먹고 친구들 만나고 성당 활동하고 산책하고 간혹 아이들 도울 일이 생기면 불려 가는 일 등이다.

 건강하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것도 은총이지만 변화를 도모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경남 함안에 돌아가신 시부모님이 사시던 고향집이 비어 있다. 그동안 가까운 마산에서 살고 있는 큰시누네 부부가 잘 관리하며 활용하고 있었다.

 거의 8,90대 나이 든 노인들만 사시고 점점 인구가 줄어드는 시골 동네. 제법 넓은 텃밭이 딸려 있긴 하지만 지은 지 40년이 넘는 오래된 농가. '그냥 팔아 버릴까?' 하는 남편의 생각도 있었지만 그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서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 보자고 서로 뜻을 맞췄다. 일을 놓아버린 도시 생활이 무료해 보이기도 했다.


 도시에서 자란 나와 고등학교 때부터 고향을 떠나온 남편. 익숙하고 편한 서울을 떠나 낯 설고 물 선 시골과 몸에 익지 않은 농사일을 선택한다는 것이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50분짜리 TV 프로를 같이 시청했다. 거친 세파와 힘든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혼자만의 힘으로 보금자리를 일구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개척해 가는 내용이었다.

 거의 50편 가까이 매일 밤 그 프로를 한 편씩 보아 가며 우리도 그 자연 속에서 치유되어 가는 느낌과 저렇게 자연 속에서 한번 살아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오직 본인의 땀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인간 승리의 그분들에 비하면 '땅 짚고 헤엄 치기'에 가까운 우리들의 귀향 귀농을 결심하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40여 년의 결혼 생활. 그 동안 세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공부시켜 다들 좋은 짝을 만나 독립해 나갔다. 인척 관계에도 신경 쓰며 거의 제로에서 시작한 가정 경제를 일구어 와했던 긴 시간. 우리 둘에게 주어진 역할이 만만치 않았다. 긴장과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팍팍한 세월었다.

 서로 많이 주고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퇴색해 버린 사랑을 소원해진 둘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모든 역할로부터 완전히 은퇴하게 된 이 시점에서 복잡한 도시 서울 생활을 접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 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시골 농가는 너무 좁고 마을은 외진 곳이라 일단 가장 가까운 읍내 아파트를 전세 내어 살아 보기로 했다. 걸어서 50분, 승용차로 5분 거리인 읍내 아파트에 머물면서 근처 도시에 사는 시댁 형제들과 따로 또 같이 고향집을 잘 활용해 보자고 생각했다. 남편이 인터넷으로 읍내 아파트를 검색해 보았다. 인연이 닿아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전세 계약 맺었다. 같은 평수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의 6분의 1 수준이었다. 


 이제 세 아이들의 서울 생활은 각자의 몫에 맡기고 남편과 나는 그야말로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살아 볼 계획이다.

 40년 간의 서울 생활을 힘든 광야 생활로 체험했으니 이제 비교, 경쟁, 성취, 책임에 내몰렸던 세상의 일을 떠나 치유, 휴식, 사랑, 평화의 자연생활에 머물러 보려 한다.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 힘들고 아이들과 멀어진다는 것이 쉽진 않지만 한 번 시도는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장남인 남편은 시댁 형제 카톡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ㅡ오늘 제매와 동생에게 전화로 간단히 의논한 것처럼 그동안 제법 많이 생각해 본 함안 살림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우리 고향에 아버지께서 남겨 놓으신 터전이 있고 그것을 우리 모두가 잘 관리해 온 덕분에 새로운 생활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말,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고 이어서 ㅇㅇ네 가족의 독립, ㅇㅇ의 결혼  몇 달을 지내면서 하루하루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처럼 보다 자연에 가까이 살면서 조금이나마 생산적인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우리 둘에게 점점 짙어졌습니다. 마침 알아본 가야읍 소재 아파트가 있어서 일단 전세 계약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거의 40년을 서울에서 살아온 우리가 시도하는 변화가 잘 실천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오늘 보여 준 제매와 동생의 호응에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들이 한창이었을 때의 부모님의 나이가 된 우리 형제자매가 다시 고향 가까이에서 함께 지내는 감회가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진행 사항, 있는 대로 공유하겠습니다.ㅡ


 시누 둘도 환영하며 동서도 응원 답글을 올려 주었다.


ㅡ 네에, 아주버님 형님.

 새로운 발걸음,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년으로 접어들 때쯤 여러 가지 이유로 자연생활을 생각하며 꿈을 꿀 수 있을지라도 또 여러 가지 걸리는 게 있어 실제 실천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두 분께서는 정말 대단한 큰 결심을 잘하신 것 같습니다.

 새로운 터전에서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찾으시면서 이제는 이해관계로 전혀 얽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내놓아도 되는 자연과 사람들과 더불어 좋은, 보람 있는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주버님 형님.

 준비하시는 지금부터 내내 계속 설레는 마음으로 진짜 진짜 좋은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ㅡ


  주님, 나이 드는 것도 좋군요♡

  감사합니다.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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