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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21. 2021

미친년 방댕이만한 ᆢ

   텃꽃밭 소꿉놀이


 "미친년 방댕이만한 데서 하고 있노? 어른이 너이나(넷이나) 붙어서."

 "머가 그래 할 끼() 많노?"


 우리 텃밭에 붙어 있는 큰길가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이가 90을 넘으셨지만 다리만 조금 불편하실 뿐 몸과 정신이 정정하신 용구 어머님이시다. 조그만 전동 의자몰고 다니시면서 혼자 온갖 논일 밭일을 다 해 내신다. 주말이면 다니러 오는 아들네 딸네들이 어머님이 키우신 농작물들을 바리바리 승용차에 싣고 간다.


 오늘도 들에 있는 밭으로 상치 모종을 심으러 가시는 길인가 보다. 당신의 넓은 밭에 비하면 150평 정도밖에 안 되는 우리 텃밭은 그야말로 미친년 방댕이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숙이고 있던 허리를 펴고 웃음으로 대답했다.

 동네 할머니들은 대부분 귀가 좋지 않으시다. 그래서 목청 높여 큰 소리로 이야기하신다. 우리도 큰 목소리로 간단하게 대답하거나 아니면 그냥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곤 한다.

 다시 말씀을 덧붙이신다.


 "어찌나 풀을 열심히 뽑아쌓든지 밭이 칼클어서(깨끗해서) 방 구들 같다."


 전동 의자에 싣고 가던 상치 모종도 한 뭉치 툭 던져 주신다.


 "이것 한번 심어서 뜯어 먹어 봐라. 어제 장에서 모종 좀 사 왔다 아이가."

 

 우리도 씨 뿌려 오종종 한창 올라오고 있는 상치 싹이 수북하다고 말씀 드려도 그냥 던져 주고 가신다.

 세상 떠나신 부모님들과 긴 세월 함께 이웃사촌으로 지내 오신 분들이다. 우리를 당신 자식들 대하듯 스스럼없이 대하신다.

 지나가실 때 간식이라도 하나 챙겨 드리고 말 걸어올 때 말 친구 좀 해 드리고 당신 밭에는 없다는 작물 좀 뽑아서 건네 드리면 오케이, 관계는 쾌청 모드를 유지할 수 있다.  뭐든지 주고 싶어 하신다. 삶은 달걀도 주시고 쑥떡도 주시고 아이들이 사 왔다며 치킨 같이 먹자고 부르시고 당신 밭의 냉이도 캐 가라고 이르신다.

 

서울로 떠나올 때는 너도나도 물으셨다.

 

 "집간장은 있나?"

 "찹쌀은 있나?"

 

 모두 모두 많이 많이 있다고 사양의 말씀을 드려도 이것저것 챙겨 주신다.

 이제 가면 언제 또 보겠냐? 한 번 오기가 어렵겠제?그래도 부모님 산소가 있으니 자주 놀러 오너라.

 아쉬운 마음들을 전하신다.


 우리가 내려오기 전 7,8년 동안 이 밭과 집을 관리하며 활용해 오신 시매부는 남편보다 한 살 연상이며 중학교 선배이다. 서열상으로는 남편의 여동생과 부부인지라 둘은 서로 처남, 매제라고 호칭하며 존칭을 생략하고 편하게 반말을 주고받는 사이다. 살고 있는 마산에서 이곳까지 승용차로 40여 분 걸리는 길을 거의 매일 하루도 빼지 않고 다녀간다. 날마다 농사일기를 쓰고 해마다 일 년 농사 계획을 세우며 깨, 고추, 콩, 마늘 등 생산 작물의 소출도 목표량과 수확량을 비교, 기록해 놓는다고 한다.

 아침형이라 우리가 없을 때는 두 부부가 해뜨기 전 새벽녘에 다녀 가곤 했다는데 우리가 내려온 후로는 아침 8,9시경 텃밭으로 온다.


 시누이가 같이 올 때면 나도 동행하여 네 명이 함께 움직이고 시매부 혼자 오실 때는 남편과 둘이서만 밭으로 향한다.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다가 오전 한나절 필요한 작업을 끝내고 읍내에서 점심을 사 먹고 서로 헤어져 귀가한다. 그런 날이 훨씬 많다.

 나는 오후 시간에 혼자 저탄소 뚜벅이로 밭을 다녀온다. 왕복 2시간쯤 걷는다.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텃밭이라 혼자 있어도 전혀 위험하거나 무섭지 않다. 바로 곁에 붙어 있는 집에는 가전제품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밭에 들어서면 정말 시간이 잘 간다. 먼저 이곳저곳 심어져 있는 작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구경한다. 보고 또 보아도 새롭다. 열 종류도 넘게 자라고 있는 작물들을 구석구석 살펴보노라면 해야 할 일들이 다. 어떤 것은 옮겨 심고 어떤 것은 흙 북돋워 주고 어떤 것은 물을 줘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풀들도 눈에 쏙쏙 들어온다.

 엉덩이에 달고 다니는 동그란 비닐 방석 의자를 착용하고 호미를 들고 본격적으로 풀 뽑기에 들어간다. 작정하고 한 고랑씩 구석구석 깔끔하게 풀을 뽑으면 내가 지나간 자리는 한층 산뜻해진다.  위로 따끔따끔 쏘아대는 모기들의 침 세례는 보너스다.


 어느덧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면 서둘러 필요한 야채들을 수확해서 배낭에 담고 사용했던 도구들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문단속을 한다. 농로를 걷고 시골 차도도 지나 읍내 아파트로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평화롭고 여유롭고 넉넉한 일과였다.


 매번 늦게 다닌다는 남편의 지적마음이 무거웠지만 마을버스를 타는 것보다 아무 생각 없이 시골길을 걸어 다니는 것이 나는 훨씬 더 좋았다. 길가에 자라나 있는 풀들, 들꽃들, 넓은 들판을 싱싱하게 채우고 있는 온갖 농작물들, 길게 뻗어 있는 길, 멀리서 가까이에서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겹겹의 산들과 시간 따라 변하는 하늘. 눈길 가는 대로 자연과 함께하며 유유자적 걸어 다니는 시간이 평화롭고 넉넉하기만 할 뿐 위험하다거나 시간에 쫓긴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50여 분 저녁 노을길을 걸어 7시 경 에 도착할 때쯤이면 한여름의 서늘한 저녁 어스름이 길가에 깔린다. 하루 중 가장 낭만적인 시간이기도 하다. 좀 많이 수확해 온 야채는 오는 길에 아는 사람들나누는 즐거움도 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자연도 사람도 도대체 겁내는 게 없다고 닦달하며 몰아세우는 짝꿍에게 나의 이 평화와 넉넉함은 이해되지 않았다. 기세등등하게 높이 내건 기치는 아내의 안전을 염려하는 남편의 사랑이었다. 나는 나대로 이미 60 중반에 접어든 나이로 누리는 이 한가함맥없이 내려놓싶진 않았다. 둘만 있는 차갑고 팽팽한 집안 분위기보다 평화로운 텃밭이 훨씬 좋았다. 서로 힘들 때가 많았다.


 텃밭 농사를 제대로 즐기려면 바로 옆에 있는 농가에서 지내며 아침저녁 해 뜨고 해 지기 전후의 시간을 활용해야 하는데 편의상 그러지 못하니 반쪽이 농사꾼 흉내에 지나지 않았다. 아침이면 눈뜨자마자 텃밭부터 나가 식물들과 만나고 저녁나절 또 한 바퀴 둘러보며 돌보는 그 뿌듯함을 접어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텃밭에만 들어서면 무념무상, 매일 자라나는 채소들의 싱싱한 생명력에 온통 마음 뺏겨 버리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흙과 함께하는 순간에는 어떤 잡념, 근심 걱정과도 바이바이였다.

 스트레스여, 너와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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