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큰일 났네. 올해 배추 농사는 다 망쳤다."
"김장 김치 배추는 사서 담아야겠다."
밭 저쪽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가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내가 어제 옮겨 심어 놓은 배추 모종들이 한결같이 고개를 푹 숙이고 비실비실 땅에다 몸을 눕히고 있는 게 아닌가?
귀향한 첫해 초가을, 백일쯤 키운 후 수확하여 김장 김치를 담는다고 시매부가 배추씨를 뿌렸다. 싹이 트고 자라나 쏙쏙 땅을 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며칠 자라는 것을 지켜보니 하나, 둘, 땅을 뚫고 빽빽하게 고개들을 내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 중 실하게 자란 모종들을 골라 뽑아 땅이 비어 있는 다른 고랑으로 옮겨 심었다. 꽤 긴 고랑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두 줄로 가득 채워 심었다. 그게 어제 저녁나절의 일이다.
그런데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간이 철렁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맘대로 손을 대서 한 해 김장 김치 배추를 다 망쳐 버리는구나.
큰시누 부부랑 작은 시누, 남편, 네 사람 모두 이건 못 쓰게 되었으니 뽑아 버려야 된다고들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귀향 후 첫나들이를 위해 모인 날이다. 2박 3일 예정으로 지리산 산청 법계사를 다녀오기로 되어 있었다.
먼 길을 떠나야 하니 밭일은 손을 댈 수 없어서 다녀와서 처리하기로 하고 그냥 두었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여행은 여행이다.
'에라, 어쩔 수 없지 뭐. 잘난 척하느라 대형 사고를 한 판 쳤구먼.'
큰시누가 정성스레 준비한 다양한 메뉴의 집밥 음식으로 어른 다섯 명이 다섯 끼나 해결해 가면서 가을산 산행을 재미있게 잘 다녔다.
처음 가 본 법계사는 비탈진 좁은 땅에서도 비범한 기개를 품고 우뚝하니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이라고 했다. 두세 시간 더 가면 천왕봉이라는데 난이도가 높은 편이라고 해서 법계사로 만족하기로 했다.
오가는 길에 들른 산청 금호강가 식당에서 먹은 어죽도 정말 맛있었다. 강에서 오늘 막 잡아 올린 싱싱한 민물고기로 바로 끓여 낸다고 했다. 근처에 있는 시골 장터 대형 베이커리에서 갓 구워낸 쿠키랑 빵들도 고급지고 맛있었다. 가격도 착한 가격.
깨끗하고 맑은 가을 산길의 정취를 흠씬 맛보며 어른끼리 편하게 잘 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 같이 일단 고향집으로 향했다.
나는 배추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배추 고랑으로 향했다.
아! 이런 게 기적일까?
비실비실 죽어 가서 뽑혀 던져질 뻔했던 배추 어린싹들이 싱싱하게 생기를 머금고 꼿꼿이 바로 서 있는 게 아닌가?
반갑고 기뻤다.
"어머, 어머. 이것 좀 보세요. 배추가 다 살아났어요!"
이틀 전, 시든 배추를 보고 크게 걱정하던 때와는 달리 다들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혼자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천우신조(天佑神助)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남편을 포함한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완전 얼굴을 못들 뻔했던 내 처지를 바로 잡아 준 어린 배추싹들이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농촌에서 자라진 않았지만 태어나서 20년 가까이 한 집에서 살았던 친정집에는 꽤 넓은 텃밭이 있었다. 해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봄날이면 엄마랑 이웃 아주머니들이 자기 집에 있는 꽃모종들을 서로 바꾸어 나누면서 마당 텃밭 가장자리에 옮겨 심곤 했다. 학교 실과 과목 수업에서는 묘목이나 모종이 튼튼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 자리를 바꾸어 심는 이식을 배운 적도 있었다.
한참 지난 어느 날 농촌에서 장녀로 자란 큰올케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원래 배추 모종은 옮겨 심으면 그렇게 되고 2,3일 지나면 도로 살아난다고 한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남편과 시누이들은 왜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을까?
옮겨 심어진 나도 처음에는 움츠려 들고 비실거리더라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튼실하게 잘 적응해 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 이후로 엉뚱한 곳에서 힘들게 자라고 있는 어린 모종들을 보면 눈에 띄는 대로 알맞은 곳을 찾아 곱게 옮겨 심어 주었다. 옮겨갈 곳과 지금 자라고 있는 두 곳 모두 흙에 물을 흠뻑 주어 땅을 충분히 적신 다음 흙째 뿌리를 떠서 촉촉한 땅으로 옮겨 심고 도독하니 흙을 덮어 눌러 준다.
잘 자라라고 기원하며 떠나온 고향과 옮겨온 타향, 두 곳 모두 따뜻한 인정이 촉촉히 스며 있는 다정한 곳이라고 속삭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