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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23. 2021

문화와 함께하는 여정

  다름과 옳고 그름

 

  한 달 전의 일이다. 남편의 대학 동창과 내 대학 동창 부부의 집을 방문했다. 그 부부와 우리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내가 대학 1학년 2학기에 접어들었던 1973년 9월 6일, 토요일. 우리보다 먼저 사귀고 있었던 그 두 짝꿍이 나와 남편을 미팅시켜 준 인연이다. 우리 부부의 중매쟁이 부부인 셈이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개인적 성향에다 코로나까지 겹쳐 만남이나 교류와는 거의 담쌓고 살고 있는 요즘으로서는 아주 귀한 시간이었다. 정오에 만나 밖에서 조금 이른 점심을 대접받고 그 댁 아파트로 옮겼다. 간단한 후식과 캔맥주를 차린 넓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대화가 깊어져 갔다. 아이들 이야기, 몸이 아팠던 이야기,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 부부 이야기, 지인들 이야기, 책 이야기, 음악 이야기, 종교 이야기, 취미 활동 이야기 ᆢ.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남편의 친구분은 그 대화와 관계되는 책들을 한 권 두 권 꺼내와 건네주었다. 이야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여름 창밖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서둘러 일어났다. 그런데 선물로 받은 책은 어느새 네 권이 되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 흥미가 가는 책부터 먼저 읽었다. 오늘 펼쳐 든 책은 월간 <신문예> 통권 103권, 2020년 5,6호이다. 48페이지부터 56페이지까지 9페이지에 걸쳐 문화비평 특집 난에 그분 글이 실려 있었다.


 제목은 <문화와 함께하는 여정 >.


 '사람들은 내 운명에 역마살이 끼었다고 말하곤 했다'로 시작되는 첫 문장부터 훅 빠져들어 끝까지 그대로 끌려들어 읽었다. 내용과 형식이 모두 좋았다. 그 내용을 대강 소개해 본다.


 ㅡ 네델란드의 헤르트 호프스테드 (Geert Hofstede) 박사는 그의 저서 <세계문화와 조직>에서 다섯 가지 가치 차원을 분류했다.


  1. 권력 거리 (Power Distance)


 2. 개인주의 (Individualism)


 3. 남성성 (Masculinity)


 4. 불확실성 회피 (Uncertainty Avoidance)


 5. 시간 지향성 (Time Orientation)


 다국적 기업 IBM은 세계 50개국에 펼쳐진 지사망을 대상으로 문화적 가치를 비교 조사하는 과정에서 얻어낸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이지 않는 문화 가치를 숫자로 정량화하여 비교하였다.


 필자는 자기 자신의 낮은 '불확실성 회피 현상 가치'를 예로 들어 이 글을 펼쳐간다. 불확실성 회피 성향의 점수가 높으면 확실하고 안정적인 것을, 낮으면 새롭고 도전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국가별 통계 수치를 보면 한국은 85/100, 덴마크 23/100, 스웨덴 29/100로 나타난다. 한국 문화의 보수성과 북유럽 문화의 진보성을 읽어낼 수 있다.


 어린 시절, 동네 골목 끝에 있는 백양산을 등반한 경험이 자신의 그런 성향을 결정 지은 주요인이라고 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누나들을 따라 해발 641미터, 백양산의 정상에 다다른 순간, 태어나 처음 보는 넓은 김해평야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는 믿을 수 없는 경험을 하였다.

 그날 이후 끝에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어 당장은 끝이라 보이는 저 경계 너머에 뭔가 더 넓고 새로운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무모한 도전과 방랑을 일삼게 되었다. 그 성향은 평생 동안 계속 이어져 5개 대륙 50여 개 나라들을 여행하며 세계 일주를 하였고 벨기에에서 15년을 살기까지 하였다.


 브뤼셀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한국 해양대학에서 호프스테드 이론을 경영학적으로 응용하는 박사 논문을 썼다. 여러 직업을 거쳐 현재는 다국적 기업들을 대상으로 자문과 코칭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인간은 생후 10년 내외의 기간 동안 경험하는 것들을 통해 자기 나름의 가치 체계를 갖게 되며 이것은 평생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가치들을 갖게 된다. 시대, 지역, 성별, 종교 등 어린 시절에 영향을 준 수많은 변수들이 개개인 고유의 가치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색깔의 렌즈를 눈에 끼고 남과 다르게 보고 해석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호프스테드 박사는 강의 전에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남성이고 네덜란드인이고 노인이므로 내 무의식 속에는 그로 인한 편견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내 말에서 이를 걸러내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편견을 인정하며 상대화시키는 말이다.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천하고 지역에 따라 다르며 한 편에서 보면 다른 편이 편견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진영을 떠나 객관적으로 보면 서로 간의 차이를 보여줄 뿐 우열이 없고 옳고 그름이 없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주입된 가치를 평생 지고 가며 산다. 나의 가치를, 렌즈를, 편견을 인식하고 상대화시키며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한다면 훨씬 더 자유롭고 다채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ㅡ


      ~  ~


 지난번 의사 파업의 시작과 진행과 결말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아주 다른 색깔의 안경을 끼고 서로 자신의 견해가 옳다며 팽팽한 갈등과 대립과 분열을 일삼는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주장하면 정당한 권리 수호, 남이 주장하면 치사한 밥그릇 싸움.

 가족 중에 의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의 견해 차이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 마냥 옳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객관적 시각이 필요하다. 서로의 다른 생각을 나누고 이해, 공감, 타협하여 타당한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성숙한 토론 문화가 우리 일상의 모든 곳에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참 재미있고 유익한 자리가 될 텐데 사실상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려면 자기주장에 필요한 합리적인 자료를 확보해야 하고 그것을 풀어 설명할 수 있는 설득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단순한 감정상 대립이나 고정관념만을 펼치면 상대방은 자기 입장이나 견해를 번복하기보다 굳게 지키는 쪽을 택하기 십상이다. 요즘은 알고리즘으로 자기 성향에 맞는 인터넷 자료들을 쉽게 많이 접하게 되니까 더 그런 것 같다. 가족끼리도 입을 다물면서 마음의 문까지 굳게 닫아 버리기 일쑤이다.


 이런 글을 읽고 쓰는 나 자신도 꽤나 닫힌 마음으로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는 실수 때문에 후회할 때가 많다.

 설익은 말과 행동으로 본의 아니게 관계에 금이 가게 하기 때문이다.

 설득력과 해박한 지식, 그것을 뛰어넘는 평소의 치우치지 않는 삶의 태도와 인격도 토론의 가치와 효과를 높이는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성이고 노인이며 7형제 중 다섯째로 국민소득 60달러인 시절에 국민학교를 다녔고 비평준화 입시제도 교육을 거쳤으며 국민소득 200달러, 유신시절 대학을 다녔습니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 중학교 국어 교사를 지냈고 시골 장남의 아내로 44년 간 주로 서울에서 살아왔습니다. 세 아이들이 별 어려움 없이 잘 자라 독립하여 12명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내 무의식 속에는 그로 인한 편견들이 들어 있습니다."


  2020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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