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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29. 2021

건너야 할 강

  비폭력 대화


 2018년 2월 25일, 남편의 월급이 통장으로 들어오는 마지막 날.

 아이들이 아빠 퇴직 기념 자리를 마련했다. 네 명의 손주들을 포함한 열한 명의 온 식구가 다 모여 외식을 하고 케이크를 자르고 박수 속에 꽃다발과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어서 큰애가 아빠에게 예쁜 쇼핑백을 하나 선물했다.


 쇼핑백 속에는 책이 두 권 들어 있었다.

 W 휴미실다인 지음 <몸에 밴 어린 시절> 가톨릭 출판사.

 마셜 B 로젠버그 지음 <비폭력 대화> 바오로 출판사.


 남색 천 재질의 두툼한 2층짜리 필통도 하나 있었다. 그 속에는 연필 세밀화 공부를 시작한 아빠를 위해 깔끔하게 깎은 4B 연필 석 자루를 비롯하여 포스트잇, 가위, 칼, 자, 볼펜, 형광펜, 고무지우개, 화이트 지우개 등등 20여 가지의 새로 마련한 문방구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필통 겉면에는 아빠 이름까지 써 붙여 놓았다.

 아빠가 어릴 적 맛보지 못한 풍요로움을 조금이라도 누리게 해 주고 싶은 딸의 마음을 이 작은 필통 하나에 가득 담아 선물한 모양이다.


 또 한 가지, 투명한 비닐 서류 보관철에 넣은 '비폭력 대화 교육 프로그램 안내서'가 2부 들어 있었다.


 서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엄마와 아빠께 강추드리는 비폭력 대화 수업 관련 자료입니다. 제가 직접 들어 보고 좋아서 추천드리는 거예요. 편안하게 좋은 기운 받으러 간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시면 좋겠습니다.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은 '편안한 복장'과 '열린 마음'입니다. 두 분 함께 들으셔도 좋고 따로 들으셔도 좋습니다. 비용이 20만 원 이상이라서 비싸다고 느끼실 수 있지만 수업을 받아 보시면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는 걸 아실 거예요."


 프로그램 안내서의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우리가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필요로 하고 부탁하는지에 집중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과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배운다.


 *비폭력 대화의 4가지 요소


 1. 관찰

 내가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판단이나 평가를 내리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2. 느낌

 그 행동을 보았을 때 어떻게 느끼는지, 아픔, 무서움, 기쁨, 즐거움, 짜증 등의 감정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활용한다.


 3. 필요, 욕구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자신의 어떤 욕구나 기대, 희망, 가치관이 충족되지 못했는가를 확인해 본다.

 자신이 포착한 느낌이 내면의 어떤 욕구와 연결되는지를 말한다. 우리가 갖게 되는 느낌은 우리 자신의 마음 자세에 달린 것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욕구와 희망, 기대, 가치관이나 생각을 인정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난처럼 들리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기 방어에 나서서 저항이나 반격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원할 때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비판하거나 분석하여 상대방을 탓하기보다 자신들이 서로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모두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4. 요청, 부탁

 막연하고 추상적이거나 모호한 말을 피하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말함으로써  긍정적인 행동을 부탁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폭력 대화의 두 가지 측면


 1. 위의 네 가지 요소를 솔직하게 표현하기


 2. 상대방에게서 똑같은 네 가지 정보를 받아들이기


 나는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필요로 하는가?

 내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무엇을 부탁할까?  

 당신은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필요로 하며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무엇을 부탁하는가?


 남편이 물었다.


 "왜 폭력이라는 말을 쓰지?"


 내가 대답했다.


 "음~~, 꼭 주먹으로 때리고 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라 말로써 상처 주고 일방적으로 통제하려 드는 태도를 폭력이라고 표현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건너야 할 은 멀다.

 허약한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자기 자신이나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우리들.

연약한 自己愛의 노예가 되어 예민하게 반응하며 상대에게 까칠해지는 고착화된 습관.


 다른 사람들과 유대 관계를 맺고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대화 방법.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대화 방법.

 비폭력 대화 방법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인지ᆢ.

 원활한 공감과 소통을  위해 제대로 방향을 잡아 잘 나아갈 수 있을 것인지 ᆢ.


 부모로서 상대를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성숙한 뒷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우리 세 아이들에게 내면의 힘을 키워 주는 소중한 선물이 될  텐데ᆢ.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부모가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될 텐데ᆢ.


 비워서 낮아지고 새로워진 마음으로 마지막 남은 숙제를 향해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지금, 여기'의 선물이 아직 우리를 떠나지 않고 곁에서 기다리고 있다. 자기를 바라보아 주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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