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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28. 2021

넘어야 할 산

   방어기제로 무장한 전쟁

 

 2015년 5월, 둘째랑 살림을 합하자 친구들이 묻는다.


"ㅇㅇ(큰애)가 섭섭해하지 않아?"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봤기 때문이다.


 둘째에게 그 말을 전했더니 자기도 언니에게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밀어붙이기에만 능하지 남을 배려하거나 공감하는 능력은 뚝 떨어지는 나 중심적인 내 성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어느 날 조심스럽게 큰애에게 물었다.


 "엄마가 ㅇㅇ네랑 함께 살게 되어서 네가 혹시 신경 쓰이거나 섭섭하지 않니?"


 큰애의 대답이 바로 나왔다.


 "엄마, 아니에요. 저는 이미 충분히 받았어요. 엄마, 아빠 아니었으면 저 여기까지 못 왔어요. 여한 없이 받았어요. ㅇㅇ한테도 꼭 전해 주세요. 저는 이미 충분히, 여한 없이 받았으니까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말라고요."


 "그렇구나, 다행이다. 엄마는 별로 잘해 준 것도 없는데ᆢ."

 "고마워ᆢ"


 아이들 셋은 참으로 착실하게 잘 자라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이고 내적 에너지는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안다. 남편과 내가 너무 많이 다투었고 너무 자주 냉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퇴근하여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지적질.


 "이거 누가 그랬어?"


 남편이 집에서 가장 많이 쓰는 문장이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거실 TV 앞에서 오손도손 쫑알쫑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갑자기 긴장된 표정으로 풀이 죽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방문 닫아 버리는 아이들. 싸늘하게 얼어붙는 집안 분위기.

 분노하는 남편과 복수하는 나.

 부모의 불화로 인해 겪는 아이들의 불안이나 고통 같은 것들에 대해 눈높이를 맞춰 주는 일 따위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고 둘 다 자기만의 아성을 고집하며 살벌하게 서로를 향해 날을 세워 온 세월들이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서 같이 불렀던 동요.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고 아빠는 엄마를 좋아해~~.'  

 

 나는 이 노래를 도저히 소리 내어 따라 부를 수 없었다. 우리 집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ᆢ.

 우울하고 어두웠던 30여 년 전의 기억이다.

 부모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 같은 것은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각자 자기만의 트라우마에 갇혀 서로를 공격해 왔던 우리들. 앞으로 앞으로, 앞만을 바라보며 주어지는 온갖 역할과 임무에 충실하느라 빡빡하기 그지없는 메마른 삶을 살아왔다.


 1975년 스물다섯 살 첫 월급을 받던 날부터 2018년 예순여덟 살, 정년퇴직으로 일을 놓기까지 44년의 세월을 장남으로서 가장으로서 생계유지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남편.

 성실, 근면, 자조의 기본적인 미덕으로 무장하고 힘든 직장 생활에 매진하느라 옆이나 뒤를 보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거기에다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는, 결코 녹녹지 않은 모범생 아내의 빳빳한 목까지 감당해야 했으니ᆢ.


 지난 토요일, 백운 호수 맛집 식당을 거쳐 카페에서 맛난 빵이랑 달콤한 팥빙수를 맘껏 먹으면서 큰애랑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이야기 끝 부분에 큰애가 말했다.

 "사랑과 야망, 드라마 보면서도 엄마 아빠 엄청 싸웠어요. 그러면서도 계속 보더라고요."

 1987년 96부작으로 MBC에서 방영된 김수현 극본 주말 드라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박장대소하며 말한다.


 "근데 엄마, 남성훈이랑 차화연, 김용림이 아빠랑 엄마, 할머니랑 정말 비슷해요."


 나도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정말 많이 웃었다.

생각해보니 세 사람의 극 중 캐릭터가 우리 집의 세 사람과 너무 비슷했고 심지어 외모랑 그 분위기까지도 꽤 많이 비슷하다는 새로운 발견을 했다.


 치밀하고 성실한 남편, 많이 감성적이고 빈 구석이 많은 아내, 뭔가 그런 며느리에게 불만이 있는 시어머니, 어머니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아들. 사랑하면서도 계속 삐걱대는 두 사람.


 그 드라마를 보는 당시에도 아마 우리가 그 드라마와 비슷하다는 걸 느끼고 깊이 감정 이입되었던 모양이다.

 전쟁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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