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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Dec 12. 2021

오래된 인연

   귀중한 재산

 50년.

 50년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시간 단위를 어느덧 너무 쉽게 입에 올리는 우리들이 되었다.


 2021년 11월 29일, 30일 그리고 12월 1일, 2박 3일 동안 중ㆍ 고등 동창 네 명과 함께 짧지만 뜻깊은 여행을 했다. 목적지는 또 다른 동창이 살고 있는 경북 경산. 이틀간의 숙박도 친구네 집에서 묵기로 했다. 2박은 너무 폐를 끼칠 수 있으니 하루라도 1박은 다른 숙소를 구하자는 친구들의 제의를 집주인은 단칼에 잘랐다.


 "무슨 소리 하노? 같이 재밌게 놀려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데ᆢ. 그런 말 하려면 아예 오지도 마라."


 한 명은 부산에서 한 명은 동탄에서 두 명은 서울에서 대구로 향했다.

 우리 네 명은 최근 3,4년간 종종 함께 여행을 해 왔다.

 동행하는 네 명 중 두 명은 그 친구를 고등학교 졸업 후 거의 50년 만에 처음 만난다.


 출발 전 지침을 정했다. 점심과 저녁은 무조건 맛집 외식으로, 아침은 친구 집에서 간단하게. 지출 경비는 일정 금액을 똑같이 나누어 넣은 공용 지갑에서 편하게 꺼내 쓰기. 기록이나 영수증 같은 것은 일절 챙길 필요가 없다. 잔액은 다음 여행 경비로 남겨 놓는다.


 수서에서 친구를 만나 오전 10시 30분 SRT를 타고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탄에서 탄 친구가 우리 옆자리로 찾아왔다. 12시 17분에 도착한 동대구역에는 이미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산에서 우리를 맞이하러 오는 친구와는 대구 수성못에서 만나기로 했다. 얼마 전 97세 친정 어머니상을 치른 친구가 문상 다녀온 우리들에게 인사차 점심을 샀다.


 수성못 앞 스타벅스에서 한 차례 티타임을 갖고 다섯 명이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직은 늦가을 분위기인 수성못을 한 바퀴 산책하고 경산을 향해 친구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올랐다.


 저녁 식사는 친구네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맛집, 상호가 <즐거운 대구탕>인 식당에서 1만 원짜리, 도톰한 대구살 토막이 수북이 담긴 알짜배기 생대구탕을 감탄사를 연발해 가며 맛나게 먹었다.


 편한 잠옷 차림으로 식탁에 둘러앉아 집주인이 준비해 놓은 와인과 치즈 안주에다 오래된 선생님들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들을 곁들여 웃고 또 웃다 보니 어느덧 자정이 넘었다.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우리들은 사회 과목을 맡으셨던 담임 선생님의 경상도 사투리를 손짓과 함께 실감 나게 재연하는 친구의 흉내로 웃음의 절정에 이르렀다.


 "러시아 혁명을 ㆍㆍ 일바씻써요. (일으켰어요.)" ^^


 서울보다 확실히 맑은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정갈하게 준비해 둔 이부자리 속으로 쏘옥 미끄러져 들어갔다. 모두들 평안한 숙면으로 빠져들었다.


 각자의 사생활을 적당히 존중하며 느긋하게 시작한 둘째 날 아침, 정성스레 준비되어 있는 재료들로 쌀밥, 된장국 아침밥을 마쳤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초겨울 날씨, 일기예보에 따라 준비해 간 비옷을 입고 친구의 안내와 차량 봉사로 돌아본 곳은 그 유명한 대구의 김광석 거리와 김원일 작가의 마당 깊은 집. 인적이 한산한 평일의 비 내리는 오전이라 가는 곳마다 안내 봉사자들의 친절한 환대를 받았다.


 점심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1호점, 2호점이 나란히 성업 중인 홍합밥 집으로 안내되어 녹두부침개와 동동주를 곁들인 호사를 누렸다.


 오후에 향한 곳은 불로동 고분군과 폐쇄 철도 고모역.

 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널리 알려진 고모역은 6ㆍ25 전쟁 당시 징집 군인들의 집합 출발 장소였다. 전쟁터로 떠나는 남편과 아들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먹을 것이라도 하나 전해 주고 싶은 맘으로 인근 많은 마을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1925년 간이역으로 출발하여 1931년 보통역으로 개편, 2006년 폐쇄되었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토착 지배 세력의 집단 무덤으로 추정되는 불로동 고분군. 1500년 전의 삶과 죽음을 담고 있는 211개의 무덤. 그들을 품에 안고 있는 낮은 언덕들은 비에 젖어 고즈넉했다.


 서울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싸고도 풍미가 넘쳐나는 맛있는 월남 국숫집에서 갖가지 메뉴로 푸짐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아늑한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부르고 등 따신 시간.

 미국에서 1년, 일본에서 4년을 생활한 적이 있는 친구는 그곳에서 구한 아이디어 소품 살림 도구 20여 개를 이용해 그 용도를 알아맞히는 퀴즈 대회 시간을 열었다. 답을 맞힌 사람에게 줄 상품까지 준비해 놓았다.


 머리 굳은 60대 후반 할머니 네 명은 생각 없이 온갖 오답들을 쏟아냈다. 안타까워하는 출제자가 다양하게 던져 주는 힌트의 도움을 받아가며 어렵게 정답을 맞히고 상품을 받느라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마지막 밤.

 어제는 수다, 오늘은 영화 한 편을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선정된 작품은 윤가은 감독의 <우리 집>. 정서가 비슷한 동창들인지라 그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비슷하게 공감해 가며 편안한 시간을 가졌다.


 드디어 마지막 날인 사흘째.

 달력상으로는 12월 첫날인데 우리의 여행은 마지막 날이었다. 어제 귀갓길에 구입해 온 효모 발효빵들과 샐러드, 토마토 브로콜리 수프의 화려한 식탁이 뚝딱 차려졌다.


 다들 뿌듯해하며 최근의 식탁 예절이라는 음식 사진 촬영을 하고 각자들의 가족 카톡방에 올리니 감탄사 연발의 리액션들이 메아리 되어 돌아왔다.


 꼼꼼하게 준비해 둔 계획표대로 오늘은 청도 관광이다. 유명한 청도 감으로 빚었다는 감 와인이 제조, 보관되는 1킬로미터 길이의 와인 터널은 꽤 이국적이었다.

 마지막 관광지는 청도 읍성.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을 조선시대 선조 때 석축으로 다시 쌓았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의 읍성 철거 정책으로 지금은 성벽 일부와 기저만 남아 푸른 하늘 밑에서 오래 전의 땅 싸움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었다.  



 점심으로는 여행 때마다 항상 찬조금을 보내주는 남편 한 분의 지원으로 거하게 여행 마지막 식사를 했다. 메뉴는 족발 세트, 돈가스, 순두부. 남편에게 인증샷을 올려야 된다는 친구의 주문에 따라 다 함께 머리 위로 팔을 뻗어 하트를 날리는 사진도 한 장 남겼다.


 아침에 먹었던 싱싱한 샐러드와 이국적인 빵 맛을 떠올리며 경산 생협에서 로컬 채소를 구입하고 어제 들렀던 베이커리에서 친구가 미리 예약해 둔 4인분 올리브 치아바타 빵을 찾아서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16시 22분 출발, 18시 09분 수서역 도착.


 우리 집 저녁 식사 시간은 7시다.

 가방을 던져둔 채 입은 옷 그대로 바로 저녁 밥상을 차렸다. 냉장고 속 먹을거리는 충분하다. 데워서 식탁에 올리기만 하면 완성이다.


 그 새 카톡방에 친구들의 글과 사진이 마구 올라오고 있다. 재주 많고 부지런한 친구는 벌써 경쾌한 휘파람 음악을 배경으로 이번 여행 동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결산 보고도 있었다. 잔액 13만 원.


 "일흔다섯 살까지 한 달에 한 번씩 다닌다 해도 우린 별로 시간이 없어."


 "다음 여행은 3박 4일 사이판으로 어때?"


 "조~오~치~~."


 꿈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집에 도착들 했겠구나. 친구 덕분에 호강스러운 2박 3일을 보냈네~ 혼자 청소에 빨래에 몸살 날라 쉬어가면서 해라이~♡


 다들 삶의 현장에서 새 에너지로 홧팅하고 잘 살그래이. 너희 친구들이 곁에 있어 감사하고 참 행복하네요♡♡♡♡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정말이지 옛말 그른 것 하나도 없데이~!!


 나도 참으로 간만에 옛 친구들 만나 오래 전의 추억을 더듬으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구나~


 많이 웃으며 즐겁게 보낸 시간들 정말 감사하다~!!


 너희들이 기쁘게 편안하게 잘 지냈다 하니 더욱 고맙고~♡♡♡


 남은 삶도 각자 열심히 살면서 서로 소식 나누며 지내자~^^*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어 좋았네요. 대구 출생으로 늘 대구를 그리워했는데 친구 덕분에 제대로 보고 덤으로 청도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다 또 만나고 좋은 시간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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