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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Feb 25. 2022

 ㅇㅇ네 집에서 점심 먹었어?

  사랑이라는 허울 속에 숨긴 통제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제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에게서 계속해서 전화가 오고 또 남편이 아이들에게 긴 통화를 하는 등 다섯 가족이 또 한 번 긴장의 회오리에 말려들었다.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12시가 넘어 자리에 누웠지만 새벽 3시까지 그 상태가 이어졌다.


 잠깐 얕은 잠 끝에 다시 눈을 뜨니 다섯 다. 두 시간밖에 못 잤지만 그냥 일어나고 말았다. 거울에 비친 얼굴에 다크 서클이 완연하다. 콧날 양쪽 눈가가 더 짙은 음영을 드러낸다.


 월, 수, 금 사흘 동안 하루에 네 시간씩 가사를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오신다.

 내가 둘째네에 머무르는 동안 나의 부재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구인 사이트를 통해 아주머니를 소개받고 딸들이 아빠랑 같이 인터뷰를 하여 결정한 일이다. 큰애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2월 11일, 금요일.

 나는 아직은 아니라는 아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12월 정기검사에서 발견된 재발로 남편의 항암 치료가 3주에 한 번씩 2월 14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일정이 잡혔기 때문이다. 수술 후 5개월 만이다. 항암 치료받는 사람을 홀로 둘 수는 없었다. 얼마나 무섭고 힘들겠는가? 

 안부를 물어오는 시동생과 시누이들은 내가 이만해서 다행이라며 고맙다고들 했다. 친정 형제들도 결정 잘했다며 격려해 주었다.


 남편은 내가 곁에 있으면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받겠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하고 있었지만 아이들도 나도 그 말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았다. 다만 남편의 그런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서 내가 내린 결정이었다.


 "엄마, 그렇다고 완전히 들어간다고는 하 마시고 정 마음이 쓰이시면 잠은 꼭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그냥 낮에만 잠깐씩 들러서 돌봐 드리세요."


 둘째가 강하게 주장했다.

 알았다, 고맙다고 대답해 주고는 그 이후 집에서 계속 머물며 남편과 함께했다. 내가 와 있어서 너무 좋다고 안도하는 남편을 보며 착잡한  마음가다듬었다.


 2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 5일 간 입원하여 항암치료를 받고 귀가한 남편은 기진맥진했다. 온 가족이 한 마음이 되어 남편을 격려했고 도왔다. 아이들도 내가 아빠 곁에서 자리를 지켜주고 있으니 아주 안심하며 마음들을 놓았다.


 이틀에 한 번씩 아주머니가 오시는 날은 낮 동안 내가 밖으로 나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런 날은 가까이  둘째네 집에서 방학 중인 두 손주의 학원 오가는 일과 점심 챙겨주는 일들을 가볍게 도와주곤 했다. 도우미 없이 초등학교 저학년인 두 아이들을 데리고 주 20시간 대한 약사회 근무를 하는 둘째네 집에는 내 손이 가야 할 일들이 많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오전 중에 볼일이 많았다. 먼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뒷설거지를 끝낸 후 장부터 보아 왔다.


 시골에 미처 처분하지 못한 작은 논이 하나 남아 있다. 며칠 전 그것에 관련해서 공문이 한 통 날아왔다.

 농지원부 주요 제도개선 추진 방안이라는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제목으로 농지 대장 전환에 관한 안내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자세히 읽어 보니 우리 논에 대해 바로 잡아야 할 사항이 있었다.


 우리 논을 임대 경작하고 있는 사촌 동서와 여러 차례 통화를 하고 도움을 받아 필요한 서류들을 갖추느라 주민센터, 등기국, 우체국, 문방구 등을 드나들어야 했다.


 돋보기 없이는 글을 읽을 수 없는 데다 A4 용지 석 장이나 되는 아리송한 공문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집중하여 거듭 읽어 보고 적힌 대로 주민센터 담당 공무원을 찾아갔지만 본인들에게도 낯선 업무인 모양이었다. 등기국에서 필요 서류를 발급받아야 한다는 정보 하나를 건졌다. 메모를 부탁하니 친절하게 적어 주었다. 나이 들어 생각과 행동이 굼뜨지만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다.


 천천히 차곡차곡 정리를 해갔다. 어제에 이어 오늘 오전에는 고등 지방법원 등기국과 우체국에 들러 일을 마무리하고 둘째네 집에 가서 12시 50분 학원에서 손주들을 데려올 계획이었다.


10시 30분경 등기국에서 서류 발급 차례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열어보니 둘째의 카톡이 와 있다. 오늘은 사위가 재택근무를 하며 손주들을 돌보기로 했으니 엄마는 마음 편히 쉬시라는 내용이다.


 알았다고 답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일을 진행했다. 필요한 서류들을 다 갖추어 빠른 등기로 사촌 동서에게 보내는 것으로 일을 끝내었다. 미루어 오던 다른 한 가지 일도 처리했다.

 시계를 보니 2시. 아주머니는 2시 반에 퇴근하신다. 자주 가는 동네 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가자미 미역국.


 내친김에 도서관 카페에 들러 뜨거운 라테 한 잔과 함께 이것저것 정리도 하고 글들을 읽다가 산책로를 잠깐 지나 6시경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처리한 일들을 이야기 나누고 저녁상을 차렸다.


 이야기 도중 남편이 물었다.

 "오늘 점심, ㅇㅇ네 집에서 먹었어?"

 이건 또 뭐지? 나는 살짝 긴장하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뇨."

구차하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못 느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식당에서 밥 먹었다, 카페에서 차 마셨다 하면 쏟아질 걱정과 염려를 피하고 싶었다. 그러다 코로나에 걸리면 남편 자신의 모든 치료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는 경계경보를 수도 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참 피곤한 일이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옆에서 입만 열면 잠 못 잤다, 힘들다, 어지럽다, 먹기 싫다 한결같이 부정적인 만을  없이 뱉어내남편의 불평불만일일이 같이 근심 걱정하며 공감해 주는 일도 너무 벅차다. 완전 스트레스다.

 아주머니가 오시는 날만이라도 내가 집을 벗어난다는 게 우리 가족들의 약속인데 남편은 또 나를 자기 사고방식대로 통제하려 드는 것이다.

 평생 해 온 일이다.


 자신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불안으로 가장 만만한 아내의 자리에 있는 나를 끊임없이 통제하려 든다. 아무리 말해도 마이동풍이다. 자기 합리화를 위한 2절, 3절, 듣기 싫고 영양가 없는 지겨운 연설이 더 길어질 뿐이다.


 부모에 효도, 사회에 공헌, 국가에 충성을 외치며 대대장으로 대학 수석 졸업, 대기업 최연소 임원 승진, 어머니 가슴의 빛나는 트로피 임무 수행 등의 화려한 이력을 후광으로 변함없이 자신만의  막힌 논리를 펼친다.


 머리끝이 쭈뼛해졌지만 애써 무시하고 저녁을 차려 먹었다. 저녁 밥상머리에서도 감사나 평화보다는 불평불만의 긴장만 가득했다. 환자이니 이해는 한다. 그것도 보통 환자가 아닌 암 투병 환자이다. 그러나 둘만 사는 집에서 나이 70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배우자를 코앞에 앉혀 두고  이래야만 하나? 한 숟갈 먹고 한숨 쉬고 두 숟갈 삼키고 가슴을 훑어 내린다. 온갖 인상을 다 써 가면서.


 힘들다고 말이라도 해 가면서 먹어야 조금이라도 더 먹을 수 있다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반복하는 그 이기적 자기애는 내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  사람의 인격에 실망하는 일은 견디기가 참 힘든다.


 한창 설거지 중인 내 뒤통수 뒤 식탁에 앉아 있던 남편이 소파로 옮겨 앉으며 이야기 좀 하자고 한다. 내키지 않았지만 알았다며 부엌 마무리를 서두르는데 남편이 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많이 참았다는 듯 굳은 목소리로 첫마디를 뗀다.


"오늘, 둘째네 집에 갔어?"


 순간 머리끝이 확 긴장한다. 뚜껑이 열리는 것이다. 환자 특유의 힘없는 목소리를 가장하유순한 듯 말하지만 집요하다. 항암 치료로 고갈됐던 기력이 조금 회복됐다고, 내가 집으로 돌아온 지 열흘이 넘었다고 또 원점으로 돌아가나?


 마침 그때 둘째에게서 안부 전화가 왔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 옆에 있는 남편이 들으라는 듯 지금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둘째가 폭발한다.


 엄마 지금 당장 나오라고ᆢ


 낮에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고 엄마가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다 하는 말 다 맞장구쳐 드리고 대신 저한테 말씀하시고 엄마 행동을 제한하지 마시라고 열 번쯤이나 얘기했는데 이러면 답이 없다고ᆢ


 이어서 큰애도, 아들도 같은 요지의 전화들을 걸어왔다.


 "엄마 스스로는 아빠의 그 분위기를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지만 이건 인내의 문제가 아니에요."


 "엄마, 버티시다 큰일 나요. 그때는 선택권도 없어요."


 나는 또 아이들을 우리 부부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버리게 되어 너무 미안했다. 내가 힘들다고 아이들한테 말하지 않고 좀 더 지혜롭게 넘어갔어야 아이들이 힘들지 않았을 텐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성장 과정 내내 힘들게 지나온 엄마 아빠의 긴장된 분위기 때문에 많이 아파하는 아이들인데ᆢ.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끝에 카톡글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 너희들 마음 잘 알면서 엄마가 너무 가볍게 행동했구나. 너희들 고마운 지원 잘 기억하고 있을게. 아빠가 좀 나쁘긴 하다. 그런데 불쌍한 게 더 크다.

 나쁜 것도 불쌍하고

 아픈 것도 불쌍하고ᆢ

 엄마, 이 자리를 좀 잘 지켜볼게. 고마워♡


 뒤이어 아빠랑 오랜 통화를 끝낸 큰애가 댓글을 달았다.


 네, 아빠께 좀 잘해 보시라고 구체적으로 말씀드렸는데 과연 될는지는ᆢ ㅠㅠ


1. 매사에 긍정적으로 리액션하기

2.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3. 상대에게 '그렇구나' 하기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좋은 꿈 꿔요.


 아침 8시 20분.

 여덟 시간 이상의 수면 시간을 철칙처럼 지키며 기상 후 스트레칭 체조까지 자신만의 루틴이라는 아침 일정을 꼬박꼬박 다 끝낸 남편이 방문을 열고 식탁으로 나왔다. 나는 어제 그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잠을 거의 못 잤다고 용기 내어 말했다.  새벽에 일어나 일필휘지 긴 글 편을 이렇게 써 재낀 바람에 내 마음결이 한결 다듬어진 덕분이다.

 남편은 난감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했다. 별로 와닿지 않았다. 어제의 그 분란이 나로서는 쉬이 넘어갈 수 없게 그 뿌리가 깊고 지긋지긋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책보다는 반복을 하지 말자고 마무리를 짓고 아침 식탁에 앉았다.


 오늘 하루, 또  평범한 일상을 성실히 걸어가 보는 것이다. 뚜벅뚜벅, 아무 일 없었던 듯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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