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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Feb 26. 2022

아끼면 똥됩니다요.

  트라우마

 재래시장을 보기 위해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이수역에 있는 남성 시장이 집에서 가깝다. 며칠 쨍하니 추웠던 날씨가 오늘은 제법 풀린 듯하다. 7호선을 타고 바로 가는 대신 30분 정도 허밍웨이 산책로를 걸어 동작역에서 4호선을 이용하는 코스를 택했다.


 걷는 동안 친구와 통화를 했다. 중ㆍ고 ㆍ대학 동창이다 보니 서로의 근황에 대해 나눌 이야기가 많다.


 오후 4시, 저녁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인가? 시장 안은 생동감이 넘쳤다. 길가를 꽉 메우며 진열된 온갖 과일들과 야채들과 생선들, 스티로폼 접시에 랩 포장된 반찬류까지 모두 살아 숨 쉬는 듯 생기를 띠고 있었다. 길게 펼쳐지는 시장통의 활기찬 인파와 넘쳐나는 상품들을 보는 순간 울컥하는 뜨거운 감정이 밀려왔다. 세상은 이렇게 활기차고 이렇게 풍성한데 이걸 누리지 못하고 병마와 싸우고 있는 남편 생각이 예기치 않게 불쑥 떠올랐다. 뜨거운 눈물이 넘쳐나 눈시울을 손에 꼭 쥔 손수건으로 꾹꾹 누르며 사람들 사이를 쳐 지나갔다.


 눈물은 참으면 더 그치지 않는다. 저만치 건물 뒤 허술한 공터가 보였다. 그곳에서 잠시 머물렀다.


 자주 들르는 대형 정육점에서 LA 갈비 한 덩이를 사고 닭집에서는 닭발 1 킬로그램 짜리 한 봉투를 샀다. 다시 닭발 곰탕을 끓여 볼 생각이다. 가방이 묵직해졌다.

 돌아서니 껍질을 벗긴 도톰한 알밤이 눈에 띈다. 한 봉투 구입하고 시장 입구에서 고소한 기름 냄새 폴폴 풍기는 따끈한 부침개도 두 장 샀다. 부추전 한 장, 녹두 빈대떡 한 장.


 더 이상 구입하면 배낭이 너무 무거워진다. 싱싱하게 빛나는 갖가지 야채와 과일들이 충동구매를 부추기지만 과감히 돌아섰다. 이미 집에도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올 때는 바로 집 앞에 내려주는 마을버스를 이용했다. 버스 속에서도 마음이 자꾸 뜨거워진다.


 현관문이 빼꼼히 열려 있다. 환기 차 조금 열어 놓았다며 남편이 현관으로 나왔다. 드문 일이다.

 짐을 내려놓고 두터외투를 벗어 걸었다. 돌아서서 거실에 서 있는 남편에게로 다가갔다. 허리를 안았다. 울면서 말했다. 시장에 넘쳐나는 물건들과 활기찬 사람들을 보니 당신 생각이 나서 너무 마음 아팠다고.


 키 큰 남편은 앙상하니 마른 몸으로 말없이 내 등을 토닥였다. 그 동작마저 힘겨워 보인다. 

 남편이 말했다.

 "나는 당신 덕분에 많이 누렸어."


 싱크대 앞에서 사 온 물건들을 정리하며 소파에 앉아 있는 남편과 자연스레 옛날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그 시장에 참 많이 다녔지?

 

응, 아버님 어머님 제사 때마다 그리고 애들과 같이 살 때도 참 많이 사 날랐지.


 입구에 있는 그 전 부치는 집에서 따끈따끈한 돼지 족발도 먹고 막걸리도 마시고.


 막걸리는 문경새재 조 껍데기 막걸리가 맛있었지.


 맞아 맞아.


 서래마을 막걸리 전문집도 많이 갔잖아?


 응, 2층 그 집. 이젠 없어졌더라.


 여러 가지 막걸리 중 골라 먹는 맛이 있었어. 공주 알밤 막걸리가 생각난다.


 우리 참 많이 다녔다. 생맥주 집도ᆢ


 응, 일산 들꽃 피는 마을 카페, 생각나?


 그래, 꽤 여러 번 갔었지. 양평 수목원도 좋았어. 여기저기 휴양림 콘도도 좋았고.


 동생이 사는 단양도 좋지.


 벚꽃 피면 현충원에도 가 보자.


 이렇게 상상으로도 가 볼 수 있네.


 그럼~~.


 함께 여행했던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미국, 영국, 중부 유럽, 스페인 산티아고 등등. 그리고 2 년 간의 함안 농촌 살이.


 '같이'라는 말과 '~하자'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엄명 내린 차가운 남편에게 나도  기죽지 않고 많은 일들을 계속 밀어붙여 왔다. 집을 늘려 가고 공동체 활동에 함께 참여하고 아이들 교육을 위한 투자를 하고 친구들과의 부부 모임을 하고 심지어 댄스 강습까지 ᆢ. 예외없이 반대부터 겪어야 하기에 추진하는 과정은 많이 힘들었지만 결과는 거의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가기 어려웠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 남편도 결국은 협조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성향과 입장이 많이 다른 둘이 44년 동안 끝없이 부딪히고 갈등하면서도 부부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충실했던 만은 변함이 없었다.

 남편 말대로 한 번도 바람피운 일 없고 (초등학교 남자 동창들은 그런 남자는 한 명도 없으며 내가 속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건 속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다.) 한 번도 월급을 안 가져온 적이 없다. 10원 한 장 손대지 않고 본인을 위한 소비보다는 가족들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와 아이들도 모두 성실하고 건강했기에 지금의 이 가정이 이렇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가능하다. 철들지 않는 우리를 어여삐 감싸 안으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끝없는 은총이다.


 남편에게는 결핍으로 인한 불안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온 아픔이 있다. 내성적이고 극도로 예민하며 기억력 뛰어난 천성착한 장남으로서의 힘든 농촌 성장기를 거쳐온 탓이다.

 그런 이유로 남편은 누리는 에 익숙하지 못하다.


 "당신은 다 먹어라, 다 먹어라 하지만 나는 다 먹어 버리고 나면 다음번에 먹을 게 없을 것 같아서 다 못 먹어."

  "그건 국민소득 60 달러인 60년대 이야기이고 지금은 3만 달러인 2020년대예요. 먹어도 먹어도 남아요. 아끼면 똥 됩니다요."


 불과 며칠 전 식탁에서 주고받은 말이다. 지금까지 숱하게 주고받은 대화이지만 아직도 이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연년생 어린 외손주 남매가 마구 그려대고 오려대는 A4용지 소비도 못마땅해한다. 딸과 사위는 거실에 던져둔 종이 뭉치가 줄어들기 바쁘게 박스째로 택배주문을 결재한다. 온 집에 아이들이 그려댄 그림과 얼기설기 오려 붙인 작품들이 넘쳐난다. 아이들은 생명력이 넘쳐나고 끊임없이 새로운 만들기 놀이에 몰두한다. 덕분에 내가 쓸 이면지 부피가 두툼해진다.


 "내가 평생 써도 못 쓴 양을 쟤들은 6개월도 안 돼 다 써 버려, 저렇게 키워도 돼?"

 남편이 언짢은 표정으로 강한 불만을 드러낸다.

 안타깝다.

 본인이 누리지 못하니 가족들에게도 너그럽지 못하다. 따뜻하게 품어주는 사랑이 자리잡을 공간이 없다.

 생각하면 마음 아픈 일이다.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저리 고집스럽게 꼭 붙들고 있는지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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