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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pr 03. 2022

여러 얼굴을 가진 층간소음 5

  물, 너까지도ᆢ!

 평생 1가구 2주택 이상을 소유해 본 적이 없다. 조국의 경제 성장기에 편승해 조금씩 집을 늘려  수는 있었다. 국민소득 증대와 물가 상승보다 훨씬 큰 폭으로 전례 없는 부동산 가격 폭등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혼란스러워지고 정부는 허둥지둥 온갖 대책을 다 내놓은 2020년.

 그보다 2년 전인 2018년, 시골로 떠나면서 아이들과 전세 살던 집을 정리하고 우리 집을 정리하여 같은 동네 안의 다른 단지에 적당한 크기로 마련해 둔 우리 집.


 2년 후 귀경하여 내 집을  월세 놓고 다른 곳에서 전세 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월세 수입으로 인해 사업자 등록을 해야 했고 세금 신고를 해야 했다. 그런 일들과는 무관하게 월급쟁이 남편의 고정된 수입에 의존해 평범하게 살아오던 터라 꽤 성가스러웠다. 게다가 정부는 점점 더 부동산 소유에 대한 규제를 강화시켜 갔다. 1가구 1주택 정책뿐만 아니라 실거주 조건까지 충족시켜야 했다. 할 수 없이 조금은 여유로웠던 가재울 신축 아파트 입주 생활을 5개월 만에 접고 자택으로 들어왔다.


 월세만큼 수입이 줄어들었지만 내 집에서 산다는 안정감은 좋았다. 익숙했던 동네 이웃들 곁으로 돌아와 편안했고 친구들 만나기도 훨씬 수월해졌다.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층간소음.


 밤 12시 전후, 우리가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위층에서 뭔가 가구를 끄는 듯한 소리, 딱따구르르 구슬 같은 것이 굴러가는 소리, 톡톡톡 두드리는 소리 등이 밤의 적막을 깨고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아파트 마당에 나가 창문들을 올려 보았다. 우리 집 위층에만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이튿날, 좀 많이 힘들어하는 남편이 정중하고 자세하게 당신의 전화번호까지 어서 A4 용지 한 장에 사연을 적어 위층 현관문에 붙여 두고 왔다. 그 댁에서도 바로 남편 핸드폰으로 문자 연락이 왔다. 소음이 들릴 때면 언제든지 연락해 달라고 전화번호까지 보내 주었다. 그 번호를 저장하고 떠오르는 카톡방 프로필 사진을 보니 미술 쪽 예술을 하는 청년인 듯했다.

 소리가 많이 거슬릴 때 남편은 문자를 보냈다. 깊은 밤중인데도 바로 답장이 왔다. 죄송하다는 답이 올 때도 있었고 몇 시간 내내 꼼짝않고 컴퓨터 작업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층간소음이 생길 일은 없다는 다. 꽤 신경이 쓰였다.


 쉽게 방문하거나 경비실에 알릴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지난번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사람에게 먼저 전화를 넣었다. 2년간 좋은 관계를 맺어 오고 있었던 터라 전에는 층간소음이 어땠는지 그간의 사정이 궁금했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예쁘고 젊은 아주머니인 그분의 대답이 의외였다.


 그 집에 살 때 다양한 소음들이 참 많았어요. 윗집뿐만 아니라 아래층 어떤 집은 동네가 시끄럽게 종종 부부싸움을 하는 집도 있었어요. 저렇게 어떻게 사나 싶었지요. 그런데 저는 그냥 눈을 딱 감았어요. 친정에서 엄마가 힘들어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지방에 사시는 친정아버지가 워낙 까칠하셔서 위층과 분란이 잦았어요. 결국 위층이 이사를 가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이웃과 남편의 중간에 낀 엄마가 엄청 힘들어하셨어요. 마음 고생이 심했어요. 그걸 지켜보며 저는 웬만한 층간소음은 문제 삼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아직 자녀는 없이 멋진 남편분과 둘이 조용하게 알콩달콩 사시는 작가분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고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너그럽고 부드럽게 들려준 그 대화 내용이 내 마음을 아주 따뜻하게 채워 주었다. 남편에게도 그 이야기를 전했다. 과거 우리에게도 비슷한 실수를 한 미안한 경험이 있었기에 남편도 결을 많이 삭혔다.


 처음보다 훨씬 줄어들고 약해졌지만 요즘도 밤이면 간혹 딱따구르르 구슬이 굴러가는 소리, 뚝딱거리는 망치 소리, 물건을 끄는 찌익 소리들이 들린다. 그 소리를 얼굴 모르는 윗집 청년이 예술 작업하는 모습으로 바꿔 그려보며 예민해지려는 감각을 누그러뜨린다. 날카롭게 각을 세우려 드는 감정의 회오리가 조금씩 평정되어 갔다.


 엉뚱한 곳에 숨어 있던 엄청난 복병이 곧이어 또 시커먼 얼굴을 드러냈다. 세탁실 하얀 타일 벽 위로 지저분한 물이 여러 군데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나무 선반을 지나 흘러내리다 보니 나무가 썩어 물 색깔이 점점 더 짙어졌다.

 참 난감한 일이다. 살고 있는 아파트 내부관 공사가 어디 보통 일인가?


 고민하며 망설이다 문자로 조심스레 알렸더니 청년의 어머니 되시는 아주머니가 내려오셨다. 깔끔하신 분이다. 나보다는 어려 보였다. 사업을 하신다고 했다. 그분이 잘 알고 있다는 단골 거래처 사장이 다녀갔다. 누수 공사 전문가라고 했다. 일단 보일러 물을 모두 빼고 주위 바닥을 완전히 말린 후에야 작업이 가능하다고 알려 왔다 .

 바쁜 일정들이 있다며 공사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두세 차례 공사 계획을 묻고 대답하는 문자가 오고 갔다. 공사가 끝나고 우리 집 선반이 깔끔한 새 합판으로 바뀌는 데까지 두 달 정도 걸렸다.

 그것이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얼마 전 무심히 쳐다본 그 타일 벽에 또 가느다란 물줄기가 서너 줄기 또르르 선을 그으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 눈을 의심하며 손바닥으로 쓰윽 훔쳐 보았다. 물줄기가 분명했다. 공사를 끝낸 지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내 간이 더 철렁 내려앉았다. 이걸 또 어떻게 알리나? 꽃샘추위로 썰렁한 지금은 난방을 멈출 수도 없으니 날씨가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적당한 때를 기다려 보자며 혼자 마음을 접어 버렸다.

 방이 아닌 세탁실 타일 벽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누군가 우리 집 위층의 버튼을 눌렀다. 돌아보니 그분이었다. 이때다 싶었다. 잠깐 엘리베이터 우리 층에서 내리기를 청하여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심스러운 나의 알림에 엄청 난감해하며 그러잖아도 옆집에서도 벽이 젖는다고 연락이 와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정말 이사라도 가 버리고 싶다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바로 어제 오후의 일이다.


 아래위, 옆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공동주택에서 평화롭게 사는 일이 만만치 않다.

 갈등 빚기 십상인 갖가지 문제들이 이러저러한 얼굴들 하고 예고도 없이 툭툭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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