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얼굴을 가진 층간소음 6
다정도 병病인 양하여ᆢ
경남 함안군 가야면 춘곡리.
산과 들, 논밭으로 둘러싸인 시골 농가 마을.
집집마다 거의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한 분씩만 사시는 서른 채 정도의 집들이 모여 조그만 동네를 이루고 있다.
이곳이라고 해서 층간소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주하고 있는 읍내 아파트를 나서서 시골집 앞 넓은 차도 한 귀퉁이에 승용차를 주차시킨다. 잠긴 대문 열쇠를 따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둔 담 넘어 뒷집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날아온다.
"망구 왔나?"
M Q. Kim이라는 세련된 이니셜로 표기되는 남편의 멋진 이름을 완전 경상도 사투리 발음으로 거칠게 부르며 말을 걸어오는 이웃이 있다.
약간 쉰 듯한 시큼털털한 큰 목소리가 조용한 온 동네의 공기를 가른다. 소탈한 성격 탓도 있지만 귀가 잘 안 들리는 때문이기도 하다. 남편의 초등학교 여자 동기 동창이라고 한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 이 동네에서 결혼하여 칠십 평생을 한 동네에서 살아온 완전 터줏대감 할머니시다.
어릴 때는 동네 여자애들의 대장이 되어 온갖 놀이를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거침없이 마당 안으로 따라 들어와 말을 건넨다. 대부분 혼자서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사람만 보면 말을 걸고 싶은데 다른 이웃들은 모두 너무나 뻔하게 그간의 사정을 다 꿰고 있거나 일을 하느라 들판에 나가고 없다.
조그만 텃밭에서 맴도는 우리 부부가 자신의 심경을 마음 편하게 표출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다.
낯선 나보다는 초등학교 동기 동창, 어릴 적 고향 친구인 남편을 훨씬 더 좋아한다. 언제나 처음 향하는 쪽은 남편이다. 하긴 공부 잘했고 효성 지극한 착한 모범생에다 인물 빠지지 않는 남자 동기 동창이다. 60년 가까이 타향살이로 떨어져 지냈지만 반갑기만 한 모양이었다. 남편은 나란히 서서 완전 초보 수준으로 다루는 핸드폰을 건네받아 먹통이 된 기능을 살려주기도 하고 며느리에게 전화 좀 넣어 달라는 부탁도 선선히 들어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별로 곁을 주지 않는 남편을 뒤로하고 점점 나에게로 방향을 바꿔 왔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데다 공유할 대화 거리가 거의 없다. 소통은 포기하고 그저 일방적인 하소연에 장단 맞추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었다.
매번 하는 말은 판박이로 고정되어 있다.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는 하소연과 비가 온다는데 지붕이 새어서 걱정된다는 말, 손주들 이야기, 아이들이 다녀갔고 언제 또 온다는 소식 등이다. 때때로 바로 옆집에서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이웃 할머니의 흉을 격하게 보기도 한다.
어제까지 같은 마루에 앉아 오손도손 다정하게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는데 그새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상대 이웃집 할머니도 다른 시간에 찾아와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한다. 거의 70년을 한 동네에서 이웃으로 살아오신 분들의 서로에 대한 못마땅한 분노가 안타깝다. 그러시냐고, 힘드시겠다고 맞장구쳐 주는 일 말고는 해 드릴 게 없다. 언젠가는 또다시 평화를 회복하겠지만 간혹 갈등의 기간이 길어질 때면 나도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45년 전 이 집을 지으시면서 아버님이 손수 심으신 탱자나무 울타리 밑으로 아직 따뜻한 찐 계란 두 개를 불쑥 건네주기도 하고 마산 사는 아들네가 사 왔다며 치킨을 먹으러 오라고 부르기도 한다. 뭐라도 하나 주고 싶어 야단이다. 매번 응하기도, 거절하기도 부담스럽지만 적당히 기분 좋게 받아들이며 넘어간다.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당신 아들을 시켜 우리 집 탱자나무 울타리 가지를 커다란 전기톱으로 싹둑싹둑 쳐 버린다.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다.
쑥쑥 새 가지 뻗치며 무성하게 잘 자라는 우리 탱자나무가 당신네 집 시야를 가려 저 아래 큰길을 내다볼 수 없어 답답하다는 게 그 이유다. 그리고는 삼만 원을 요구한다. 당신 아들의 한나절 노동력에 대한 대가다.
두 말 않고 잘하셨고 수고하셨다며 그 돈을 드리면 뾰족뾰족한 탱자나무 가시들을 말끔히 치우느라 여간 힘들지 않았다는 공치사를 한참 되풀이한다. 언제나와 같이 마치 싸움이라도 걸 듯 강한 어조의 큰 목소리다. 그 말에도 고맙고 죄송하다며 비위를 맞춰 드린다. 사실 우리 집 텃밭 쪽으로도 마구 튀어와 떨어져 있는 잔잔하고 날카로운 가시 조각들을 치우는 일도 꽤 성가시긴 하다. 텃밭일을 하다 바싹 마른 작은 가시 조각들에 손을 찔리기도 한다.
엄청 호의적인 우리에게도 이리 대하는데 새로 이사 오는 낯선 사람에게는 어찌할는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이 집을 매입한 50대 초반의 젊은 군인 가장은 이 할머니의 선을 넘는 간섭과 참견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부모님 때부터 안면 트고 살았던 우리들이라 훨씬 더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새 주인은 뚝딱뚝딱 싱크대도 바꾸고 밭에 여러 작물들도 심고 본격적인 집단장을 했다. 어느 날 가 보니 집이 산뜻한 색의 페인트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바로 그 윗집, 동창 할머니의 집도 같은 색깔로 환하게 칠해져 있었다. 왈왈왈 쏟아내는 일방적인 요구에 젊은 새 주인이 덥석 후한 인심을 베푼 모양이다.
골목을 사이에 둔 두 집 사이에 어떠한 갈등의 씨앗도 싹트지 않기를 소망했다.
우리가 떠나오던 날, 슬픈 표정으로 눈물 글썽이며 언제 다시 얼굴 보겠냐던 그 모습이 짠하게 눈에 밟힌다.
그분 말씀대로 부모님 산소가 있으니 자주 가 봬야지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