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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pr 11. 2022

여러 얼굴을 가진 층간소음 7

  다시는 듣지 않기를 소망하는 ᆢ

 퍽~!!

 무척 낯선 소리다.


 1990년대 후반의 4년 동안 우리 다섯 가족이 살았던 등촌동 동성 아파트.

 38평형 1동, 44평형 2동, 55평형 1동이 사각형을 이루며 지어져 그 가운데에 꽤 넓은 마당이 있었다.


  40대를 지나가고 있었던 우리 부부는 서로의 너무나 다른 성향으로 팽팽하게 대립하면서도 주말 저녁 식사 후의 느긋한 시간에 심심찮게 동네 생맥주집을 드나들었다. 골뱅이 무침이나 치킨을 안주 삼아 쌉싸름하니 시원한 500 CC 생맥주잔을 꽤나 비웠다.

 가장 맛있었던 맥주는 벨기에의 브뤼셀 그랑플라스 광장의 야외 카페에서 마셨던 생맥주다.

 우리에게 그런 시간도 있었구나.

 술을 좋아하는 남편은 생맥주집 가자는 나의 제의는 거의 모두 오케이 했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던지 둘이서 두세 시간을 훌쩍 넘기고 아쉽게 집으로 향하곤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어쩌고 저쩌고 쫑알쫑알 흥에 겨웠다.

 그러면서도 정작 중요한 갈등 부분의 소통은 꽉 막혀 있었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우리들의 미숙했던 시간들이다.


 그날도 그러한 하루였다.

 대로변 상가에 있는 생맥주 집에서 나와 다정하니 손을 잡고 5분쯤 걸어 아파트 입구로 들어섰다.


 가로등 몇 개가 아파트 마당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시간은 자정을 전후한 깊은 밤. 적당한 맥주로 느슨해진 우리에게 초여름 밤의 선선한 바람은 매혹적이었다. 발걸음도 가벼웠다.

 바로 그 순간, 눈앞 어둠 속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풀썩 땅으로 떨어졌다. 곧이어 둔탁한 소리가 났다.


 퍽~!!


 불길했다.

 한달음에 다가가 보니 아뿔싸, 사람이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자가 끈이 가느다란 검은색 슈미즈 차림으로 쓰러져 있었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첫 목격자가 되었다.


 여름밤 열린 창문으로 어수선한 공기가 전해지고 사람들이 바로 모여들었다.

 얼굴이 불콰하니 붉어진 중년 남자 한 명이 짧은 반바지에 상반신은 훌러덩 벗은 흐트러진 차림으로 아파트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급하게 챙겨 들고 나온 듯 하얀 러닝 셔츠에 허둥지둥 두 팔을 마구 쑤셔 넣고 머리통을 집어넣으며 우리 쪽으로 향했다. 무서웠다. 나는 조그만 소리로 옆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저 남자가 여자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해 주세요."

 사람들이 119를 불렀다. 구조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다친 사람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말로 그 남자의 접근을 막았다.


 여자는 반듯이 누워 있었다.

 나는 여자의 머리맡으로 다가가 땅바닥에 닿아 있는 머리 밑으로 살그머니 내 두 손바닥을 밀어 넣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여린 소년 한 명이 다가왔다. 엄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머리를 받쳐 줄 부드러운 게 뭐 없겠냐고 했더니 소년은 선뜻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 주었다. 저려오는 손을 살며시 빼고 운동화 두 짝 앞 부분을 살짝 눌러 머리 밑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어떤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침묵 속에서 엄마의 머리맡을 지켰다.


 요란한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119 구급차가 도착했다. 여자가 간이침대에 실려 옮겨졌다. 남자도 구급차에 올라 함께 떠났다.

 무거운 밤공기 속에서 사람들도 각자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갔다.

 심란한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그 자리로 가 보았다. 엉성한 잔디가 사람들의 발길에 여기저기 짓눌러져 있었다. 그 위에 오뚝하니 하얀 운동화 한 켤레가 홀로 남겨져 있었다. 간밤의 참혹했던 사건을 다 지켜본 침묵의 증인이었다.


 어린 아들은 넋을 잃고 맨발로 자기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엄마 아빠가 없는 큰 집에서 충격에 쌓인 그 밤을  어떤 마음으로 밝혔을까? 그동안 얼마나 숱하게 부모들의 힘든 장면을 지켜보아 왔을까? 

 수군거리기에 바빠 아무도 소년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나도 그랬다. 조용히 사라진 소년에게는 그게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년의 하얀 운동화를 4층 그 집 현관문 앞에 가만히 가져다 놓았다.


 몇 날 며칠 여러 소문들이 아파트 공기 속을 떠돌았다.

 55평형 4층에 산다. 여자는 이웃과의 어떤 교류도 없이 문을 꼭 닫고 산다. 남자는 술을 마시면 골프채로 여자를 때린다.


 북쪽 부엌 베란다 벽의 상반부, 가슴 높이에 있는 창문으로 뛰어내린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약자가 물불 가리지 않고 도망친 것이다.

 살아남으려고, 맞아 죽지 않으려고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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