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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May 25. 2022

부모가 되어 보니 1/2

   우애를 부탁해♡

 아이들 세 가족이 모두 코로나에 노출되었다. 맨 처음 시작은 둘째네부터였다. 초등학교 4학년 외손녀를 시작으로 3학년 외손자 그리고 부부로 이어져 네 가족이 모두 감염되었다. 차라리 한꺼번에 앓는 것이 더 나은 면도 있다며 서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버스로 일곱 구역 거리의 가까운 곳이라 매일 현관 앞까지 먹거리 배달을 다녀왔다. 환하게 불 밝혀진 부엌 창문으로 마스크 낀 부석하니 부은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안부를 나누었다. 걸상에 올라서서 창문 밖으로 해맑은 얼굴을 내미는 손주들과 서로 손바닥 키스를 날리고 돌아섰다. 잘 이겨내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손주들은 등교하기 시작했다. 딸은 잔기침이 남아 밤에 특히 힘들다고 했다. 그런 몸으로 가사를 담당하고 직장 일을 해야 하니 힘든다. 격리 중에도 계속 회사 일을 해야 하는 사위도 뭔가 딱 떨어지는 완치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는 중 며느리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가족 카톡방에 떴다. 조심하느라 무던히 애썼는데도 근무지에서 전염된 모양이다. 토요일 아침이었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신 입주 아주머니께서는 소식을 듣고 바로 돌아오셨다. 6개월 된 어린 손녀를 돌보아 주려고 오신 것이다. 통념되는 상식대로라면 2주일 가량 휴가를 가지겠다고 통보할 상황이었다. 우리는 너무나 고마워하며 마음을 놓았다.

 적진으로 들어오셨다, 혈맹 가족이 되셨다 등의 말로 아주머니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일요일 당직을 서게 된 아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그 이튿날 아들도 양성으로 확진되고 어린 손녀에게도 증상이 나타났다. 며칠 힘든 시간들을 보냈지만 비교적 쉽게 지나갔다. 뒤이어 아주머니께서 제일 힘들게 겪고 계시다면서 성심껏 잘 보살펴 드린다고 했다. 우리들 모두 마음으로 힘껏 응원을 보냈다.


 뒤이어 큰애네 집에서도 코로나 소식이 들려왔다. 고1이 된 큰손녀가 학교에서 제일 먼저 옮아왔다. 뒤이어 딸과 사위까지. 다행히 중2인 둘째 손녀는 피해 갔다. 큰손녀와 딸은 평균에 속하는 증상을 겪었고 사위는 꽤 오래 힘들어했다고 들었다.


 이렇게 세 아이들 가족이 모두 힘든 과정을 겪으니 부모인 우리도 덩달아 마음이 힘들었지만 또 잘 넘어가 주고마웠다. 특히 세 아이들이 힘든 일을 겪으며 서로 돕고 힘이 되어 주는 것이  고마웠다.


 토요일부터 앓게 된 며느리가 이튿날 증세가 심해졌지만 일요일이라 병원도 약국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때 막 코로나를 벗어난 둘째가 남겨서 보관 중이던 중요한 치료제들을 퀵 서비스로 보내 주어 아주 요긴하고 고맙게 잘 용했다고 한다. 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묻고 다양한 먹거리와 정보들을 챙겨 줘 가며 세 가족들이 모두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에는 미처 몰랐던 일을 나중에야 전해 듣고 알았다.

 딸들과 사위들, 아들과 며느리, 모두 예쁘고 고맙다.


 부모가 되니 자식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 중의 하나가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일이다. 아주 간절한 바람이다.


 지난해 봄, 사순절 어느 주일에  <생활 성서> 출판사에서 도서 홍보 판매 활동을 나왔다. 성당 1층 로비에 넓게 진열되어 있는 책들을 한 바퀴 주욱 둘러보는데 눈에 확 와닿는 책이 있었다.


안셀름 그륀 著,  <우애의 발견>.


 바로 한 권을 샀다.

 책장을 넘겨 갈수록 가슴 뿌듯한 감동이 올라왔다.

 '그래, 이거야. 우애의 중요성이 바로 이런 것이지.'


 내가 겪어온 친정 7남매들의 긴 세월 인연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다섯째이며 유일하게 대졸자인 나는 어릴 때는 형제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성인이 되어서는 많은 부담을 느꼈다.

 나이 차이도 많은 데다 한 명 한 명 워낙 동질성이 떨어지는 역동적인 성격들이라 힘든 일이 많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나에 대한 기대를 떠올리며 그 관계에 신실하느라 긴 세월 많이 애써 왔다. 60대 후반이 되어서야 그 짐의 무게로부터 조금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다행히 87세인 큰오빠부터 64세인 막내까지 지금 모두 생존해 있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라고 서로를 격려한다.

큰오빠는 아무래도 당신이 너무 오래 산 것 같다는 서글픈 말을 하시기도 하고 야무지기 이를 데 없던 큰언니는 단기 기억력이 많이 떨어져 가고 있다.  며칠 후인 6월 4일은 어머니 20주년 기일이다. 제사를 모시는 막내네 집에서 모처럼 7형제 모두 한자리에 모여 보자는 큰 꿈을 가지고 있다.

 삐죽삐죽 튕겨 나가려고 하는 순간들을 서로 다독이며 위태위태하게 여기까지 왔다. 이만만 해도 좌충우돌, 우리 부족한 7남매들의 지난했던 삶이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뒤이어 아이들 생각을 했다.

 78, 81, 88년 생인 세 아이들을 생각하며 책을 세 권 더 구입했다. 내가 전하기에는 역부족인 내 마음을 이 책이 다 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기회를 엿보다 셋 모두에게 한 권씩 전했다.

 책 속표지 첫 장에 한 줄 써 놓았다.


 <아빠, 엄마의 부탁 : 1년에 한 번씩 읽으면서 축복받은 행복한 삶을 누리기 바란다.>


 책을 전하면서 덧붙였다.


 "엄마 유언이라고 생각해 줘."


 어설프게 표현한 내 진심이다. 아이들은 별 저항 없이 무심하게 받아 들었다. 

 육아와 직장일로 워낙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다. 이 책이 책꽂이 어느 한구석에 꽂혀 오랜 잠을 자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아이들 손에 전해 준 것만으로도 큰일을 해낸 듯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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