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May 26. 2022

부모가 되어 보니 2/2

   서로에게 축복이 되는 형제자매 관계를 위한 <우애의 발견>

안셀름 그륀 著 <우애의 발견> 요약, 정리

*머리말

형제자매의 관계는 친구 관계와는 다르다. 친구는 찾고 선택할 수 있지만 형제자매는 선택할 수 없다. 형제자매는 서로에 대해 일생 동안 가까이에서 가장 길게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이러한 이유로 형제자매의 관계는 깊어질 수 있다. 형제자매는 서로 교류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많은 것을 배우고 터득한다. 즉 갈등을 대하는 법, 타인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법, 타인을 배려하는 법 등을 형제자매와의 교류를 통해 배우고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주 어릴 적부터 오랜 시간을 형제자매와 함께 보냈기 때문에 갈등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갈등을 잘 조정한다면 나중에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나의 관심사는 형제자매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는 갈망을 일깨우는 것이다. 나는 이미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형제자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그 관계를 지지하고 싶다. 형제자매의 갈등으로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에게는 일생 동안 시달리지 않도록 그 어려운 관계를 지혜롭게 대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다.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는 형제자매에게는 화해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다.


*추천사

애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용서와 화해로 이어질 때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나누며 부모에게서 받은 생명과 사랑의 축복을 감사할 때 우리는 정신적 정서적 영적으로 성장하고 충만해지면서 형제자매의 배우자와 자손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게 된다.

형제자매와의 관계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차례

들어가는 말 : 세상 사는 법을 배운다

성경 속의 형제자매 이야기

성공적인 삶의 다섯 가지 조건

우애를 위한 부모의 역할

형제자매간의 경쟁과 갈등

유산 다툼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

서로 이해한다는 것

나의 가족 이야기

작별하기

나가는 말 : 당신은 형제자매가 있습니까?


*성공적인 삶의 다섯 가지 조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이 성공하기를, 달리 표현하면 행복하기를 갈망한다. 행복이란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것, 곧 자신의 가장 내밀한 본질인 영혼과 일치하는 것을 뜻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받고, 소중하게 여겨지고, 지지받는 것을 의미한다.


형제자매와의 만남에서 우리는 형제자매가 조건 없이 사랑하며, 서로 가치를 인정하고, 자기편에 서서 서로 힘이 되어주며, 있는 그대로 서로 받아들여지는 체험을 하고는 한다.


이런 체험은 자신과 깊게 만나고 자신과 화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어떤 사람은 형제자매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형제자매 사이의 좋은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신과 화해하는 삶을 실현하는 본질적인 토대를 갖게 된다. 그런 화해의 삶이 바로 행복이고 성공한 삶이다.


1. 정체성을 향한 갈망

'성공한 삶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알고 싶은 것은 '나는 누구인가?' '내 인격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라는 나의 정체성을 알려는 갈망이다. 삶의 의미는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이 될 때, 내가 진정으로 살고 있을 때 찾을 수 있다. 나의 참된 본질인 유일무이한 자아를 만날 때 비로소 삶은 충만해진다.


내가 나의 형제자매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우리 모두가 독특하다는 점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의 고유한 재능이 있고 유일무이한 인격을 갖췄다. 나는 내 형제자매들의 다름을 체험함으로써 내가 누구인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모두 동일한 것이 아니라 각자는 독립된 인격체임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이런 유일한 인격으로서 나 자신을 항상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내가 내 형제자매들을 대하면서 체험한 또 다른 것은 나 역시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에게는 나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 측면이 있다. 내가 내 형제자매들과 다투거나 질투심에 사로잡힐 경우 그런 것을 체험한다. 하지만 내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면서 내가 체험하는 것은 내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으며 내가 그들에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성공한 삶을 위한 조건은 항상 참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외면하면 내적 분열을 체험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적 분열은 항상 자신을 참된 자신의 모습에서 멀어지게 한다. 나는 내 형제자매들과의 만남에서 나의 참되고 고유한 자아를 찾을 수 있다.


2. 결실에 대한 갈망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들은 번성하고 활짝 핀 느낌을 준다. 내가 이웃에게 의지하고 나 자신을 이웃에게 내어줄 경우 나의 삶은 활짝 피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나의 사명을 발견한 경우 나의 삶은 생기 넘치고 번성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삶은 무엇으로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가?

삶이 활짝 피는 데에는 형제자매와 함께하는 체험이 큰 도움이 된다.


나는 그들의 소명을 고유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동시에 나는 나의 고유한 소명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시기심이 줄어들고 경쟁심이 약해진다. 그리고 나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장점을 발휘해 나의 고유한 소명을 찾을 경우 나의 삶은 활짝 피고 열매를 맺는다.


형제자매 관계에서는 각자는 해가 거듭할수록 자신의 역할을  찾게 된다. 자신의 본질과 상응하는 역할을 찾은 사람은 자신의 삶이 조화를 이루고 성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3. 마르지 않는 샘의 갈망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 같다며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지쳐 있고 소진된 상태에서 힘들어한다. 하지만 우리가 힘을 길어 올리는 샘은 순수한 영적 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결속의 샘도 있다. 내가 내 형제자매들과 결합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외부의 도전에 제대로 응답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이다. 가족과의 결속, 형제자매와의 결속은 우리가 힘을 길어 올리는 중요한 샘이다


이런 결속은 또한 우리에게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힘과 신뢰를 북돋아 준다. 우리가 삶의 힘을 길어 올리는 샘은 치유의 샘이기도 하다.


4. 좋은 관계를 향한 갈망

모든 사람에게는 사랑하고 또한 사랑받기를 바라는 갈망이 있다. 이런 갈망은 주로 연인 관계에서 실현된다. 하지만 연인 이전에 우리는 부모에게서 사랑받는 체험을 한다. 그리고 형제자매와도 사랑하거나 사랑받는 체험을 한다. 형제자매 사이의 사랑은 낭만적이진 않다. 이런 사랑은 끊임없는 다툼 속에서도 표현된다. 서로 다투는 가운데서도 형제나 자매에 대한 사랑은 계속된다. 서로 다툰 다음에도 다시 화해한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로 함께 지낸다.


이것은 장차 부부의 사랑을 위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는 실제적인 사랑이다. 우리가 형제자매의 관계를 통해서 배우는 이런 사랑은 현실적으로 잘 어울리는 사랑이다. 이런 사랑은 직장에서나 공동체에서 많은 갈등과 불화를 체험할 때 사랑 자체의 힘을 믿도록 도와준다.


5. 사회적 능력에 대한 갈망

훌륭한 지도력의 본질인 사회적 능력은 기업이나 사업의 경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회적 능력은 더 많은 뜻을 가지고 있다. 친구들을 서로 결합시켜 사이좋은 관계를 이뤄내는 능력이기도 하고 신뢰와 희망으로 살아가는 능력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고 홀로 고립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힘들어한다. 따라서 어렸을 때의 사랑과 친밀함이 넘치는 환경에서 서로 신뢰하며 성장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이것은 우리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시인할 때에도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좋을 것이라 확신을 할 때에도 큰 도움을 준다. 약점을 지닌 형제자매의 참모습을 알지만 형제자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체험은 배우자와 관계를 맺는 일에도 도움을 준다. 우리는 배우자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우리의 단점과 잘못까지도 받아들인다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눈 체험에서 우리는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과도 서로 결합하고 화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각자 필요한 삶의 공간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을 익힌다. 형제자매의 좋은 관계가 행복한 삶에 본질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애를 위한 부모의 역할

형제자매가 서로 화목하지 못하다고 부모를 탓해서는 안 된다. 형제자매의 관계에 대한 책임은 항상 그들 스스로에게 있다. 하지만 부모가 유의해야 하는 근본 원칙이 몇 가지 있다.


먼저 부모는 자녀를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부모가 올바로 처신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부모의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때때로 인내하기 힘들다.


부모가 아무리 최선을 다하더라도 자녀의 욕구에 온전히 부응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부모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어차피 완전한 족은 없으며 이것은 나중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부모는 자녀를 각자의 개성에 따라 넉넉히 받아들이고 항상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데 마음을 쏟아야 한다.


우리 형제가 서로 다툴 경우 부모님은 개입하지 않으셨다. 일상적인 다툼이 부모의 개입 없이 해결되면 자녀는 이후의 삶에서도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자녀는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지 않고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갈등 해결법을 찾을 것이다. 막강한 힘을 지닌 심판관(부모)이 없다면 스스로 합의를 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형제자매의 경쟁을 없앨 수는 없더라도 가장 크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자녀를 다른 자녀와 비교하지 않고 모든 자녀를 공평하게 대하며 사소한 말다툼에도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이용하는 것은 자녀에게 나쁜 일이다. 어떤 어머니는 아들을 왕자로 떠받들었지만 아들에게 남편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함으로써 아들을 자신의 불만을 처리하는 도구처럼 여겼다. 아들은 어머니를 신뢰하였고 때로는 같은 편이 되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를 통해 아들은 깊은 내적 분열에 빠졌다.


어머니가 딸을 이야기 상대로 삼아 남편을 실례로 들어 남자들의 나쁜 점을 비난하는 것도 비슷한 사례이다. 이로 인해 딸도 감정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딸은 자기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딸은 한편으로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쁘고 악한 남자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딸은 다양한 감정을 정돈할 수 없고 내적으로 분열되어 있음을 느낀다. 딸은 누구를 신뢰해야 하고 또 누구를 신뢰할지를 알 수 없다.


부모가 자기 자녀를 이런 식으로 이용할 경우 자녀의 성장에 심리적인 분열을  초래한다.


부모가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은 부모 자신의 친밀함, 이해나 사랑 등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자녀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이혼할 때 자녀에게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이혼의 모든 책임을 배우자에게 돌리지 말아야 한다.


형제자매가 분열되어 있을 경우 부모는 죄책감을 느끼며 이렇게 스스로 묻는다. 자녀의 사이가 서로 좋지 않은데 우리가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을 제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부모는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부모는 '우리는 줄 수 있을 만큼 주었다.'라고 시인해야 한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이 모든 자녀에게 온전히 다다르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자녀는 부모가 베풀었던 사랑을 서로 다르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부모는 서로에게 잘못을 미루지도 상대에게 자신을 정당화하지도 않아야 한다.


부모는 그런 행동보다는 과거를 하느님께 맡겨야 하고 하느님께서 있었던 일을 축복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 부모는 하느님께서 형제자매의 위기를 축복으로 변화시키는 분임을 확고하게 믿어야 한다. 부모가 서로에게 탓을 돌린다면 부모는 무력해진다. 그러면 부모는 분열된 형제자매를 도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부모가 기도로 희망을 일궈낸다면 분열된 형제자매 사이에 고요와 신뢰의 기둥을 새롭게 세울 수 있다. 그 기둥은 형제자매의 다툼에서 평화를 다시 가져다줄 것이다.


*유산 다툼

재산은 굳어 있는 것이다. 생명은 사랑하고 나눌 준비가 되어 있을 경우에만 용솟음친다. 물질적인 것은 생명을 용솟음치게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유산 상속에서 물질적인 것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들 사이에 사랑이 흐르도록 돌보아야 한다. 이런 노력은 우리에게 아주 유익하다. 그러나 되도록 많이 상속받으려는 노력은 오히려 우리의 내면을 마비시킨다.


중요한 것은 형제자매가 모두 만족할 만한 해답을 함께 찾으려는 노력이다. 가장 좋은 것은 부모의 생전에 가족이 함께 유언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훗날에 다툼은 없을 것이고 각자는 상속받을 수 있는 재화보다도 가족이 더 소중하다고 느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물음은 이것이다. 형제자매를 과연 신뢰하고 있는가? 아니면 형제자매 개개인에 대한 불신이 가족의 결속을 방해하고 있는가? 완전하게 공평한 해답은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제한된 방안에 만족해야 하고 이를 끊임없이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한편 자신의 재산에 집착하며 자녀에게 인색한 부모도 있다. 아까운 마음이 아니라 흔쾌한 마음으로 줘야 한다. 유산을 되도록 더 키우기 위해 부모가 모든 것을 관리할 경우 부모가 죽은 다음에 대부분 다툼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부모의 탐욕은 자녀의 탐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자녀가 부모의 인색함을 사랑의 거부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면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부모의 사랑을 둘러싼 싸움이 새롭게 번져간다.


돈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부모의 소장품 가운데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분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이때에도 열린 마음과 공동 대응이 중요하다. 각자는 자신이 소유하기를 바라는 물건들을 서로에게 알리는 것이 좋다. 그러면 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모든 것이 명료해질수록 그만큼 더 쉽게 타협할 수 있다. 하지만 형제자매가 자신의 바람을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을 경우 다른 형제자매가 가장 좋은 물건을 부당하게 챙겨갔다고 의심하게 된다.


유산다툼은 온전한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형제자매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힘은 각자가 과거의 다툼에 멈춰 있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 다툼을 화해하여 자신의 모든 역량을 자기 삶을 위해 사용할 때 나타난다.


상속을 많이 받은 사람이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며 더 많이 소유한 다른 형제자매를 시기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의 척도가 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늘 감사하며 산다면 최선의 상황이 아니어도 받아들일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

우리는 자주 서로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대한다. 상대가 너무 완고하고 이기주의자이며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를 그렇게 만날 경우 우리 역시 우리의 선입견에 빠져 그를 판단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 경우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관계가 편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달라져야 한다.


*내적으로 화해하기

나는 갈등을 빚고 있는 상대와 내적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나는 그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으며 다만 관계가 깨진 점을 안타까워한다.


나는 그를 단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상처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받아들인다. 나는 그가 상처를 주는 역할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그의 책임임을 안다. 내가 그 역할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 대신 그가 자신의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할 수 있다. 그가 상처에 집착하는 한 형제자매를 향한 공격은 계속된다. 나는 그의 공격성에서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가 언젠가 상처를 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의 형제자매와 다시 화해하기를 바라고 기도할 수 있다.


나는 내적으로 상대와 화해하고 상대에 대해 증오심을 품지 않음으로써 화해하지 않은 사람이 내뿜는 공격적인 에너지와 상처에서 자유로워진다.


그와 내적으로 화해할 수 없어 용서할 수 없다면 나는 상대에게 아직도 묶여 있는 셈이다. 이럴 때 그는 나의 기분을 결정한다. 그러기에 용서는 상대의 권능에서 나를 해방하는 것이다. 나는 그를 있는 그대로 둔다. 물론 이것은 체념이 아닌 언젠가는 그가 변할 것이라는 희망이다. 다른 가족은 제멋대로 사는 상대에게 평화와 기쁨을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 그 가족은 그런 태도를 취하는 상대를 안타까워해야 한다.


가족이 집에서 모임을 준비할 경우 참여하지 않은 형제나 원망하는 자매에 의해 그 자리가 엉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형제자매가 그 모임에 함께 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결정이다. 그는 자신의 결정으로 다른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영향으로부터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 화해하지 않은 형제자매는 가족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 화해하지 않은 그에게서 강한 공격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형제자매가 내적으로 그와 화해한다면 가족을 파괴하는 그의 힘은 빼앗긴다. 그러면 그는 더 이상 가족 전체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


내적 화해는 또한 죄책감에서도 자유롭게 한다. 증오에서 자유로워진다. 형제자매에게 언젠가 자기 고립에서 벗어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좋은 기억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과제이다. 그러면 기억들로 인해 나는 이제 가족의 소중함을 더 깊이 의식하게 되고 가족의 상실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내가 최선을 다해도 삶을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겸손해진다.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과 화해해야 한다.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나 자매에게서 무언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형제자매 가운데 혼자 누군가를 아예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희망은 가장 마지막에 사라진다.

숨을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한다.

내가 형제자매에게 더 이상 희망을 두지 않을 경우 서로의 관계는 깨어진다. 증오심에 가득 차 등을 돌린 형제자매의 변화를 아직 볼 수 없다 해도 우리는 변화의 기적을 희망해야 한다.

희망은 좋은 관계를 위해 문을 열어주는 태도다.

작가의 이전글 부모가 되어 보니 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