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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un 11. 2022

사랑의 음식, Soul Food 1

   택배 사랑

6월도 어느덧 중순으로 접어든다.

여섯 시가 채 못된 새벽 시간.

암막 커튼을 젖히기 바쁘게 이미 바깥을 가득 채우고 있던 밝고 맑고 은은한 빛들이 순간 방안을 완전 점령해 버린다.

이런 시간이면 으레 떠오르는 이야기 하나가 있어 나도 모르게 따뜻한 마음으로 싱긋 웃음 짓는다.


귀농살이하는 부지런한 노년들 이야기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 깜깜한 새벽에 잠을 깨면 바로 발딱 일어나 앉아서 날 밝기만을 기다린다고 한다. 얼른 나가 바깥일을 하고 싶어서다.


주로 아내들이 자기 남편을 흉보느라 아니면 은근 자랑하느라 들려주는 이야기들이다. 시골에서 2년 머무를 때 꽤 여러 사람에게서 들었다. 당사자들은 옆에서 싱긋이 웃고만 있다. 그 웃음 속에 조용한 기쁨과 자부심이 숨어 있다.


생계 수단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가 심고 가꾸는 작물들이 어여쁘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심고 싶고 가지 쳐 주고 싶은 나무가 있고 옮겨 심어야 할 모종들이 있고 뽑아 주어야 할 풀들이 눈앞아른거리기 때문이다.

농사일은 아무것도 모르나에게도 그분들의  그러한 심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짧은 시골 생활 동안 다른 사람들의 노고에 묻어서 별 어려움 없이 재미만을 누렸던 덕분에 더욱 그렇다.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지 않았고 모내기가 한창일 지금쯤이 어찌 보면 농촌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맺히는 푸성귀들과 열매들이 제각각 뿜어내는 왕성한 생명력의 신비함이 눈에 선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듣는 시골 소식들은 더 정겹고 반갑다. 내 깜냥에는 감당도 안 되는 시골 생활에 대한 진한 그리움과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경남 고성에 사시는 남편의 외사촌 형님은 해마다 두세 번씩 농산물 택배를 보내 주신다.

올해는 가뭄으로 작물 수확량이 나쁘다며 마늘과 완두콩과 들깨 가루를 담은 택배 한 박스를 보내오셨다. 사흘 전이다.

여든을 전후하시는 두 어른께서 이제는 차량도 없애버리셨는데 이렇게 꾸려서 택배를 부치셨다. 엄청 애쓰셨을 노고를 생각하니 마음이 찡하다.


굵고 단단한 마늘을 일일이 꼭지를 다 잘라내고 바싹 말려서 그물망에 넣으셨다. 작년에는 넉 접이었던 것이 올해는 한 접이다. 역대급 가뭄이라는 날씨가 심히 걱정스럽다. 동네 마늘도 거의 다 흉작이라고 한다. 보내 주신 마늘은 제일 좋은 품질이니 오래 보관해 두고 먹어도 된다고 이르신다.


초록 알맹이들이 가득 담긴 완두콩 비닐봉지도 무게가 묵직하다. 비만 제대로 와서 알맹이가 토실토실 영글었으면 두 배는 더 양이 많았을 것이다.

이 시기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제철 식품이기에 퍼에 나와 있는 완두콩 자루가 탐났지만 꼬투리 까고 음식 쓰레기 처리할 번거로움에 슬그머니 외면해 왔다.

묵직한 완두콩 비닐봉지를 들어 올리려니 새벽부터 밭에 나와 일하시는 형님의 부지런한 뒷모습과 다정하게 활짝 웃으시는 소박한 얼굴이 눈앞에 가득 떠오른다.


들깨 가루도 적당히 거피하여 까맣지도 하얗지도 않은 카페라테 색의 건강한 색깔이다. 영양가 풍부한 귀한 식품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온다. 손끝 매운 프로 농사꾼 형님의 야무진 살림 솜씨다.


마늘은 베란다 햇볕에 공기 잘 통하게 보관하고 완두콩은 조금씩 나눠 담아 들깨 가루랑 같이 냉동고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고 나니 엄청 부자가 되었다.


들깨 모종이 자라면 위로 자라 오른 어린 순을 똑똑 잘라줘야 곁가지를 쳐서 들깨 포기가 풍성해진다. 그 잘라낸 어린순도 귀한 맛이다. 양도 꽤 많이 나온다.

며칠 전 전화를 넣었다가 들깨 순은 다 따셨나는 내 안부 말에 깜짝 놀라시며 이미 한 차례 순을 땄는데 또다시 씨를 뿌려 잘 자라고 있는 모종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오늘 택배 잘 받았다는 감사의 전화를 드렸더니 첫마디에

"동시야, 들깨 씨를 빈 터에 다시 더 이 뿌리 다."

라고 말씀하신다.

귀한 들깨 순을 보내 주시려고 단단히 작정하고 계신 모양이다. 철없고 물정 모르는 내 한마디가 조카인 남편을 끔찍이 사랑하시는 형님 내외분의 마음을 바로 건드린 것 같다.


작년에도 정성 가득한 택배 박스들을 받았다.

4월 어느 날 카톡창을 통해

"동시야, 봄소식 보낸다"

라는 짧은 시 같은 예쁜 한 문장을 보내셨다.

바로 다음날 깨끗이 다듬은 대파를 비롯해서 머위, 쪽파 등을 꾹꾹 눌러 담은 대용량 택배 박스가 현관문 앞에 배달되었다.


극구 사양하시며 난감할 정도로 만류하시지만 용돈 조금 보내드리는 것으로 과분한 사랑을 받기만 한다. 감사하면서도 송구스럽다. 편하게 지내며 앉아서 받기만 하는 내가 너무 얌체가 아닌가 싶어서이다.


그렇지만 기쁘고 고맙고 행복한 마음이 훨씬 더 크다.


형님 존경하고 감사드립니다.


시숙님도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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