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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un 15. 2022

사랑 노래

   이창훈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 >

시를 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시인.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기 쉬운 감정의 가닥들을 붙들어 정체성을 밝혀내는 사람.

쉬이 넘어가 버리기 쉬운 생각들에게 말을 걸어 뿌리를 캐내는 사람.


고요한 성찰을 통해 길어 올린 지혜들을 상징성 짙은 비유와 여백 많은 음률 속에 담아 보석처럼 곱고 빛나는 한송이 향기로운 꽃으로 피워낸다.

그 광채와 향기가 읽는 이의 마음을 적신다.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켜 그 아름다움에 머물게 한다.


브런치 작가 이창훈 님의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를 청했고 받아 읽었다.

작년 가을의 일이다.


가을에 선물 받은 잘 익은 시들을 겨울 동안 내 마음속에서 천천히 느릿느릿 숙성시켰다.

나로서는 떠올리기 어려운 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문을 열어 반겼다. 낯설지만 신선하고 아름다운 손님들이었다.


이제 대기 속의 화창했던 봄기운이 끝나가고 더운 여름이 시작되려 하니 마음 한 자락이 급해진다. 조금이라도 봄기운이 남아 있을 때, 파릇파릇 본체를 드러내는 새 생명력들의 대열 맨 끝자리에서라도 겨울을 지나 봄으로 오는 동안 내 안에서 꼬물꼬물 싹트고 자라난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다.


이 한 권의 시집을 펴내기 위해 작가님이 쏟아 넣은 노력과 시간과 정성은 얼마만한 무게와 부피일까?

쉽게 선물 받아 쉽게 읽고 있는 나로서는 감히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백분의 일에라도 해당되는 시간과 마음을 담아 감사히 잘 읽었다는 대답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 어설픈 리뷰에 감히 도전해 본다.


차분하고 깊었으며 평화로웠다.


나 중심적인 공격적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며 조심조심 한 걸음 나아가고 아프게 두 걸음 물러서는 이타적 사랑이었다.

겉으로는 이룬 것 없어 보이는 조용한 사랑이 속으로는 점점 더 깊어가는 성숙한 사랑이 되어갔다.

한 편 한 편 시를 읽으며 내 마음은 점점 더 차분히 깊어지고 평화로워졌다.


내가 서러운 건

네가 미워서가 아니다

네가 아파서다

미움보다

받은 사랑이 너무나 크다는 걸

우는 가슴이 알았기 때문이다

          P14 <서러움의 이유>


한동안 이 시구에 머물렀다. 내 마음밭에서는 결코 자랄 수 없는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이런 마음이 가능하다면 그 관계에는 희망이 있다.

상대방을 평가하고 판단하기보다 그의 허물까지도 그의 아픔으로 보며  포근히 보듬어 주는 깊은 마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넉넉히 안아 주기에는 품이 너무 좁아 헉헉거리고 있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된다.

온통 흔들리는 내 마음을 조용조용 다독여 준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는 인내는 성숙한 사랑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당신이

흰눈처럼 말없이 떠나간 길을

아득하게 들여다본다


길가의 나무가 되어

오래도록 바라다본다

당신이

첫눈처럼 말없이 다가올 길을

오래오래 들여다본다

          P54 <나무>


이러한 이타적, 수동적 사랑은 무조건 희생과 양보로만 점철된 패자의 것이 아니었다.  

한 차원 더 높은 곳에서 더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기에 선택한 승리의 길이었다.


떠나면

아무리 멀리 떠나도


내 가슴으로 되돌아오는

너였으면

          P59 <부메랑>


자작나무 숲으로

사람이 아닌 숲의 정령들이 이끄는 대로

그 안의 오두막에 가는 건

세상에게 지는 게 아니지

뒤돌아보지 않는 아니 뒤돌아 볼 수 없는 저

세상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거겠지

          P62 <눈 오는 날의 사랑노래>


먼발치에서 그저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 될 수도 있음을 채 짐작도 못하는 미숙한 사랑이 있다. 

조용히 돌아본 적도, 인내로 애태우며 바라보았던 적도 없이 청춘이 쏟아내는 감정의 홍수에 휩싸여 성급하게 몰아붙이고 쉽게 훌쩍 던져버리는 단세포적인 사랑.


분수는 분수를 모른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

분수는

분수를 모르기 때문에 솟는다


중력을 거슬러

까치발을 하고 불안하게

저 너머의 사랑을 넘본다


퍼 올린 눈물로

온 세상을 적시기라도 하겠다는 듯


분수는

분수를 모르고 피었다 진다


땅으로 추락해

처참하게 깨진 물방울들이

물의 무덤으로 흐르고 흐를 때


슬픔의 키높이에서

무지개는 순간 피었다 진다

          P35 <분수>


分數를 모르는 噴水와도 같은 사랑.

인내도 섭리도 몰랐던 젊은 날의 찬란하기만 했던 미숙한 사랑을 다시 돌아본다.

이제 다듬고 기다리고 물러서서 깊고 따뜻한, 평화로운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할 시간이다.


그곳 그 자리

온통 그리움의 땅으로

꽃들 피고 지리라

섬들 물 위로 솟아나리라

샘들 고이지 않고 흐르고 흐르리라

          P42 <화양연화>


시인의 사랑 노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끊이지 않고 면면히 흐르는 유장한 강물이 되어 메마른 대지를 적시고 적막한 공기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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