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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un 28. 2022

결핍

창세기  2,16~17

 따뜻한 추억과 고마운 인연들이 쌓여 있는 성서백주간 모임. 내게는 특별한 의미로 와닿는 본당의 성서 읽기 그룹 활동이다. 매주 정해진 분량의 성경을 읽고 일주일에 한 번씩 열 명 안팎의 반원들이 모여 묵상을 나눈다. 121주 동안 진행되니 여름, 겨울 방학을 포함해 거의 3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성경의 신구약 전체를 통독하고 묵상하는 여정이다.

 이 과정을 한 번 거친 후 6개월 정도의 일정 기간 동안 본부 교육을 수료하면 모임의 봉사자 자격을 얻는다. 일종의 사회자 역할이다.


 아들의 대학 진학으로 낯선 이곳에 이사를 온 직후 이웃 교우의 권유로 발을 디뎠다. 그 이후 성서백주간은 최근 십여 년 간 내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어 왔다. 그 속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행사와 사건들이 추억 속에 아련하다.

 시골 생활과 코로나로 멀어졌던 성서백주간을 다시 찾았다. 4년 만이다. 임원들과 봉사자들이 젊은 교우들로 많이 세대교체되어 있었다. 반가운 일이다. 신선하고 활기찼다.


 4월 30일, 토요일 저녁 8시. 세례 받은 지 일 년 된다는 신영세자 한 분과 나, 이렇게 둘이서 첫 모임을 출발했다. 대표 봉사자님이 이것저것 세심하고 친절하게 잘 챙겨 주셨다. 비대면 코로나 뒤끝이라 본당 활동들이 많이 위축되어 있다. 

 이번에야말로 차분히 제대로 읽고 깊이 귀 기울여 보는 귀한 시간으로 잘 활용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목표는 나 자신의 진지한 성경 통독이다. 함께하는 교우의 숫자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마음을 먹는 데는 나이도 한몫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명이 되었다.

 50대 1명, 60대 3명, 70대 1명이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독립적이고 진지해서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쉬이 이루어졌다. 혼자서는 가기 어려운 여정에 두 명이라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든든한 동반자들이 다섯 명이나 되었으니 기뻤다. 감사한 일이다.


 6월 18일, 7주에 걸친 창세기 통독과 묵상이 끝났다. 창세기 책거리 겸 탈출기 출발을 자축하는 식사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매일 천여 명의 교우들에게 말씀 묵상을 보내시는 구속주 수도회 원장 신부님,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을 모시고 한 말씀 청하면 어떨까 싶었다. 반원들은 반갑게 동의했고 신부님은 기꺼이 승낙하셨다. 책거리 일정이 잡혔다.

 6월 25일 토요일 저녁 7시, 성당 바로 앞 식당에서 가볍게 식사를 끝내고 8시, 성당 교리실로 향했다. 센스쟁이 막내 총무는 잽싸게 주문받은 각종 음료들을 테이크아웃해 왔다.


 신부님의 창세기 총정리 강의에 이어 우리들의 질문, 소감 등이 이어졌다. 여기저기 책이나 강론 등에서 읽고 메모해 둔 지식 중심의 해석들과는 한 차원 다른 신부님의 요점 정리와 답변에 우리 모두 마음과 귀가 쏙쏙 열렸다.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우리들의 얄팍 질문에도 깊이 동조해 주시며 우문현답, 당신의 깊은 신앙 체험에 바탕을 둔 신본주의적 성경 해설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신부님의 진정한 권위에 근거한 넓은 품이 유난히 편안하게 느껴졌다.


 ㅡ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다 누려라. 그러나 선악과만은 안 된다는 하느님 말씀. 그러나 아담과 이브는 결국 그것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결핍되어 있는 그 부분끝내 시선을 뺏기고 마는 인간들의 본능적인 나약함,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선악을 판단하고 나아가 자기 합리화의 변명을 늘어놓고 타인 징계의 돌을 던지고 싶은 그 어리석음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다. 관계에 있어서 나에게 넉넉하고 유익하게 여겨지는 모습들은 아주 당연한 듯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부족하고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주관적인 내 잣대로 쉽게 평가하고 판단하여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쉽게 내치려 든다.  중심적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이다.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누리고 있는 많은 풍요보다 적은 결핍에 집착하는 나. 그 결핍이 나에게는 꽤 강도 높은 것이었고 많이 고통스러운 부분이었다. 아름다운 무지개로 보여 주신 빨주노초파남보의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할 줄 모르는 나의 아집도 한몫했을 것이다.


 교우들끼리 자주 선포하는 말이 있다.

"말씀을 붙잡고 간다."

 내가 붙잡고 가야 할 중요한 말씀이 뚜렷해졌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ㅡ 결핍에 묶여 만족을 모르고 감사를 모르는 인간은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에 대한 분노로 파국에 다다른다. 죽게 되는 것이다. ㅡ


 모임을 마치고 오손도손 얘기 꽃을 피우며 집으로 향하는 여름밤 골목길.  

 오늘 이 시간은 또 하나의 귀한 추억으로 따뜻하게 기억될 것이다.


 다음날인 26일 일요일. 저녁 식사 후 느긋한 시간.

오랜 기간 친하게 지내온 예쁜 자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봉사자까지 지낸 60대 초반의 베테랑 성서백주간 가족이다.

 "형님, 오랫동안 기도해 왔는데요, 오늘 남편과 2박 3일 ME교육을 다녀왔어요. 남편과 성서백주간도 함께 하기로 했어요. 다음 주부터 갈게요."


 이제 7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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