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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ul 02. 2022

효도 수영

   새 출발

6월 27일 월요일, 새벽 5시 40분.

살그머니 현관문을 나섰다. 구민 체육센터에 수영을 신청하기 위해서다.


일요일인 어제, 큰아이 부부가 다녀갔다. 중학생, 고등학생인 두 손녀들의 학업 뒷바라지에 한창 바쁠 때지만 투병 중인 아빠와 보호자인 나를 보러 맘먹고 자주 들른다. 지난주에도 아들네 세 가족이랑 함께 다녀갔는데 오늘은 사돈어른이 담으셨다는 열무김치를 챙겨 들고 왔다. 사돈어른은 나보다 열 살이 더 많으시다.


이야기 끝에  함안에서 수영을 다녔던 일이 참 행운이었다는 말이 나왔다.

"엄마, 수영 다시 시작하세요."

큰애가 바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에 들어갔다. 사위도 같이 거들었다.


찾아낸 정보들을 보여 주며 자세히 설명을 덧붙인다. 집에서 도보 25분인 거리에 구민 체육센터가 있고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한 강좌가 월, 수, 금, 오전 9시부터 50분간 진행된다. 한 달 이용료는 이만 삼천 원. 강좌명은 효도 수영.


마침 내일부터 신입회원 모집이 시작되는데 선착순 방문 접수이며 50명 정원에 빈자리가 다섯이라고 한다.

수영 강습 다니는 이웃들로부터 접수 신청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도전에 소극적인 내 성격에 그냥 나에게는 아무런 해당 사항이 없는 것처럼 무심히 지내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부엌 정리를 끝낸 후 카톡방에 올려놓은 자료들을 찬찬살펴 보았다. 어느새 중요 귀절들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거나 동그라미까지 표해 놓았다.

'한번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 끝에 '그래, 함 해 보자.'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집에서 나와 구민 체육센터로 가는 허밍웨이 산책길로 들어섰다. 여섯 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인데 아침 운동하느라 부지런히 걷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날도 이미 환하게 밝았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장마 중이라 물기를 흠뻑 머금은 키 큰 나무들이 무성한 숲길을 이루고 있었다.


체육센터에 도착하니 6시 5분.

건물 안은 이미 불이 환히 밝혀져 있고 왕래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마 6시에 시작하는 강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7시부터 시작되는 접수 신청 창구 앞에 임시 의자가 스무여남은 개 놓여 있다. 이미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주위에 흩어져 여기저기 서 있는 젊은이들도 여럿 된다. 무심히 자주 지나쳐 다녔지만 안으로 들어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위분들의 도움을 받아 대기 번호표를 뽑았다. 23번이다.


7시 접수 업무가 시작되기 10분 전쯤 직원 한 분이 나와서 큰 목소리로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셨다. 과장님이라고 한다. 접수증을 작성하고 신분증과 결제 신용카드를 미리 준비해서 잘 챙겨 들었다.

7시 정각에 접수가 시작되었다. 1인당 평균 2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7시 40분경 내 차례가 되었다. 다행히 신청이 접수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족방에 소식을 올렸다. 남편도 격려의 글을 한 줄 남겼다.

"엄마, 대단하시다."

큰애가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기적이에요. 며칠 전 동네 형님이 엄마 운동 꼭 챙겨 드리라고 하셨는데 그게 생각나서 어제 바로 서둘러 찾아본 거예요. 정말 잘 됐어요."


7월 1일, 금요일 아침.

서둘렀으나 아침 설거지까지 다 끝내고 나니 조금 늦었다.

여러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탈의실과 샤워실을 거쳐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여섯 레인 중 두 곳은 남자분들이 쓰고 네 곳은 여자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효도 수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느슨한 분위기이다. 레슨 없이 자유 수영으로 편하게 즐기는 방식이다. 수영장 물 밖에 안전 요원 겸 코치 한 분이 지켜 서 있다. 회원들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신의 체력에 맞게 자유 수영을 한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체력, 실력 다 달리는데 레슨 대열에서 헉헉거리며 훈련하는 수업은 이제는 무리인 듯하다. 어설프지만 함안에서 2년 동안 발차기부터 배워 온 기초가 있어서 다행이다.


넓고 한적한 자연 속에 우뚝하니 서 있는 함안 체육관. 그 1층에 자리 잡은 쾌적한 실내 수영장. 매일 아침 함께 수업했던 선생님과 이웃들의 모습이 새삼 눈앞에 선하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레인으로 퐁당 들어갔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 이미 준비 체조는 끝났다고 한다.

어디 사느냐? 이름은 무엇이냐? 나이는 몇이냐? 질문들이 쏟아진다.

80대 할머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표정들이 밝고 편하다. 거의 십 년 이상씩 다니고 있다는 단골 회원들이시다. 60대 후반인 나에게 새댁이라는 호칭을 붙여 주시며 부럽다고 하신다.

앞으로 계속 쉬지 말고 주욱 다니라고 충고도 해 주신다.


나도 바로 립 서비스를 날렸다.

"20년이나 오래 사셨는데 이리 건강하시니 형님들이 저의 롤 모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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