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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ul 09. 2022

친구 Day

   보석 같은 시간들

 멀리 미국에서 살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카톡방으로 카드 한 장이 날아왔다.


 오늘 7월 9일, 친구 데이라네요. 친구님들, 화려했던 젊음은 이제 흘러간 세월 속에 묻혀 가고 추억 속에 잠자듯 소식 없는 친구들이 가끔씩 그리워지네요. 서럽게 흔들리는 그리움 너머로 보고 싶은 얼굴들이 하나 둘 멀어져 가네요. 정말 바쁘게 걸어 왔는데 ᆢ.


 찬찬히 거듭 읽어볼수록 글의 내용이 점점 마음속으로 깊이 와닿았다. 답글을 넣었다.


 그런 날이구나. 70이란 숫자가 이렇게 우리 나이로 다가오다니. 그래도 이리 소식 주고받으니 다행이다. 먼 곳에 있지만 늘 안부 전해줘서 고마워. 잘 지내자.


 보고 싶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몇몇 친구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부쩍 그립다.

 부산 롯데 호텔에서 화려하게 열렸던 초등학교 졸업 30주년 기념 축하연도 선연히 떠오른다.

 일곱 분 중 여섯 담임 선생님과 7,80명의 남녀 동창들이 함께 했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그 행사를 계기로 서울에서 잠깐 동안 초등학교 동창회가 활성화되었던 적이 있다. 괜히 설레고 괜히 재밌었다. 사회적으로 유명인사가 된 한 동창은 그 부인이 남편의 동창회 참석을 너무 싫어해서 못 나왔고 대학 시절 그 친구와 뜨거운 염문을 뿌렸던 동창 여학생도 짓궂게 놀려대는 남자 동창들 때문에 그 모임에 나오지 못했다.


 40대 초반이었던 그때, 무척 바빴지만 일 년 정도 그 모임에 열중했다. 열렬한 환대와 시끌벅적한 웃음이 활기차고 즐거웠다. 동창회에 신고 갈 내 구두를 반짝반짝 닦아주기도 했던 남편은 귀가 약속 시간인 12시에서 5분을 넘었다는 이유로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 주지 않기도 했다. 저녁 8시에 강남에서 만나 밥 먹고 놀다 2차 노래방 행차까지 끝내고 허둥지둥 멀리 목동까지 돌아오다 보니 그런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종일 행사인 야유회도 두 번 있었다. 10월 24일, 공휴일이었던 유엔의 날에 한강에서 보트를 타며 아름답게 물든 강가의 단풍들을 구경했고 하루 날 잡아 서울 외곽에서 맛난 고기를 먹기도 했다.


 상경 이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부산 동창들의 소식도 알게 되고 밴드 모임도 활발했지만 나를 포함하여 몇 안 되었던 우리 여학생들은 얼마 안 가 서울 동창회 발길이 시들해졌다. 그 모임은 그냥 남학생들끼리만의 술자리 친구 모임으로 변했다. 아마 지금도 진행되고 있지 싶다.

잠깐 함께했던 것도 적당히 끊은 것도 모두 잘한 일로 기억된다.


 지난 5월 어느 날, 도심 한복판이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온통 꽃들이 만발한 봄날이었다.

 낮 12시 정오 시각, 맛집과 카페가 유난히 많은 서래마을 2차선 도로 양 옆길과 구석구석 골목길에는 젊은 인파들이 넘쳐났다. 근처 관공서와 사무실에서 점심시간을 맞아 몰려나온 젊은이들이다. 아직은 마스크 차림이었지만 걸음도 빠르고 무리 지어 터뜨리는 웃음도 활기찼다. 봄과 딱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그 인파들에 섞여 순간적으로 내 눈길을 끄는 일행이 있었다. 한껏 차려입은 세 여인들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예사롭지 않은 패션이다. 나이는 80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성향이 비슷한 오래된 친구들인 모양이다 .

 느린 발걸음으로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세 분이 유유히 거리를 활보하시는 모습. 다정하니 손까지 마주 잡고 서로의 우정에 기대어 화창한 햇빛 아래 당당히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나는 멀어져 가는 세 분들에게 이끌려 뒷모습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숱한 젊은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 곁을 휙휙 스쳐 지나가는데 나는 왜 그 장면에 사로잡혔는지.  

 이유는 간단했다. 나도 어느덧 이쪽에 가까이 와 있기 때문이었다.


 40대를 지나가고 있었던 어느 날, 여고 동창 친구들과 어울려 이태원 헤밀턴 호텔 뒤쪽 짝퉁 거리를 몰려다니며 쪼그리 옷들을 몇 벌씩 충동구매했다. 고터몰도 찾아다니며 친구들의 잘 어울린다는 부추김에 반짝이는 청바지도 망설임 없이 덥석 집어 들었다. 아직도 짬짬이 잘 갖춰 입는다. 맛있는 파스타도 찾아 먹고 앙증스러운 후식 케이크와 다양한 커피도 즐겼다. 그때도 참 좋았지. 친구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들이다.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 울었던 일, 웃었던 일. 모두 오늘 이 자리로 오는 길목마다에서 그대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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