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Jul 14. 2022

또  한 걸음 앞으로

 첫 영성체

 7월 10일, 일요일. 외손주의 첫 영성체 예식이 있었다. 등학교 3학년 남녀 어린이들이 여러 달에 걸쳐 가톨릭 교리를 공부하고 평일 미사, 주일 미사에 참석하며 기도문 암송을 익혀 왔다. 많은 봉사자분들의 뜨거운 수고가 뒷받침해 주었다.

 그 과정을 수료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천상 양식인 빵과 포도주를 내 몸에 받아 모시는 날이다.

 영적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일, 예수님의 구원 업적에 직접 참여하는 날이다. 열아홉 명의 어린이들이 참여하였다.


 예식 진행 중 신앙 고백 순서가 되었다. 신부님이 먼저 질문을 던지셨다.

 "여러분은 마귀를 끊어 버립니까?"

 어린이들은 연습한 대로 목청껏 입을 모아 대답했다.

 "네, 끊어버립니다."


 드디어 첫 영성체 시간. 빨간 수단과 하얀 드레스를 입은 귀여운 꽃봉오리들이 차례차례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

 성체를 치켜든 신부님이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몸!"

 한 명씩 신부님 앞에 바싹 다가선 아이들이 대답한다.

 "아멘."


 발그레 귀여운 조그만 입술들을 열고 납작하니 동그랗고 조그마한 흰 빵을 입안으로 받아 모신다. 난생처음으로. 그리고는 각자에게 어울리는 경건함으로 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예식이 끝나고 모여든 가족, 친지들의 축하를 받으며 꽃다발과 선물을 가슴에 한가득씩 안고 사진 촬영들을 했다.

 쨍하니 내리쬐는 7월의 햇빛,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모두들 웃는 얼굴들이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오랜만에 만난 사돈 친지들과도 인사를 하고 정담을 나누었다.


 이렇게 소중한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아이들이 끊겠다고 고백한 마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끊어야 할 마귀에 대해 너무 무심했고 너무 쉽게 사로잡힌 시간들이 아니었던가?


 이번 주 성서 백주간 묵상 범위와도 겹치는 부분이다.

 탈출기 23장 33절.

너희가 그들의 신을 섬길 경우, 그것이 너희에게 덫이 되고 말 것이다.


 그들의 신, 세속의 부귀영화, 풍족함을 섬기는 것이 마귀를 섬기는 것이고 그 결과 덫에 걸리고 만다. 주어진 상황에 순종하며 그 속에 담긴 내면적 의미를 찾기보다 내가 모든 생각과 행동 판단의 주체가 되어 나의 유익만을 추구할 때 그 덫은 나의 자유와 생명을 빼앗고 절망과 후회를 불러온다. 갈등과 스트레스의 고통 속에서 육체와 정신을 갉아 먹히느라 주어진 귀한 시간을 빼앗긴다.


 내려놓아야 할 것이 무엇이며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남에게 베푸는 친절은 위선이었고 완벽하고자 애쓰는 성실은 강박이었다. 그 뒷맛은 항상 씁쓸했고 허허로웠다.


 마귀를 끊어버리고 덫에 걸리지 않는 자유로운 삶, 진정 나를 사랑하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남은 시간 나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작가의 이전글 친구 D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