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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18. 2022

순대와 환율

   고공 행진, 식자재 가격

추석장을 보러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껑충 뛰어오른 야채 가격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 입력된 가격의 평균 두 배가 되는 가격표들이 붙어 있다. 사실 오르기 전에도 비싸다 싶어 망설이곤 했는데 이제는 내 상식을 건너뛴 가격들이라 아예 입력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추석 대목이라 그런가 보다 하며 그냥 지나쳐갔다. 그런데 추석이 일주일이나 지난 오늘도 야채 가격은 그대로 고공행진 중이다.


한 줌이 채 못될 듯 여릿여릿한 시금치 한 단, 손바닥 안에 쏘옥 들어올  만큼 작은 크기의 양상추 하나, 로메인 두 포기, 바나나 한 손 등이 모두 4990이라는 숫자를 달고 있다. 10원이 비는 5000원이다.

파프리카 두 개 한 팩 5990원, 알이 덜 배긴 엉성한 배추 한 포기 9990원.

상품 가격의 맨 앞에 적힌 숫자만으로 가격이 싸다, 비싸다를 인식한다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한껏 의식한 숫자들이다.

모두 눈길만 주고 그대로 지나쳤다. 


달막달막해진 유효기간 때문에 30%, 50% 할인된 가격표를 달고 매장 복도의 한 귀퉁이에 따로 놓여 있는 매대에서 버섯, 호박, 고구마, 무화과 골라 담고 행사 중인 가격의 방울토마토도 한 박스 샀다.

제철 식품이라며 매장 입구의 커다란 톱밥 상자에 담겨 꿈틀거리는 가을 꽃게가 눈길을 끌었다. 톡톡한 청국장을 떠올리며 오동통한 마리골라 저울 위에 올렸더 6700원이 찍힌다. 별로 발라 먹을 것도 없는 한 마리가 3350원.

계산을 끝내고 배달 상자에 옮겨 담았다. 영수증 찍힌 숫자가 거금 44960원이다.


총액이 3 원을 넘어야 배달이 가능하니 3만 원을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급하지도 않은 것들을 구매하며 신경을 썼던 때가 그립다. 이제는 3만 원을 넘기지 않기가 어렵다. 

나의 푸념에 계산대의 아주머니도 한마디 거든다.

"월급만 안 오르고 다 올랐어요"

식자재의 가파른 물가 상승은 서민 가계에 꽤나 위협적이다.


이유가 ?

수요가 급증하는 추석 대목장의 연장? 열흘 전쯤 지나간 태풍 힌남노? 추석 연휴 동안 이어진 농부들의 긴 휴업? 

 보는 일이 살짝 두려워진. 끼 집밥이긴 하지만 노인 둘이 사는 정이 이러할진데 확장기에 있는 네 명 가족 가정들은 어떠할까? 한창 자라는 손주들이 있는 세 아이네의 식비 부담이 크게 늘어났을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모든 물가 상승의 주범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더니 요즘은 환율, 환율이다.

가끔 들르는 재래시장에서 상인들에게 종종 묻는다.

"왜 이렇게 비싸죠?" 

정육점에서 엘에이 갈비를 사면서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사장님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무슨 큰 비밀이나 되는 듯 심각하게 대답한다.

"환율이 올라서요."

"아, 그렇구나." 

나도 고개를 끄떡였다. 수입품이니까.


순대 가게엘 들렀다. 여름철이라 남편이 원하는 쇠간을 구하기 어려워 꿩 대신 닭이라고 가끔씩 순대집에 들러 돼지 간을 구입한다. 추석 연휴 전에 3000원 하던 한 팩 가격이 4000원이다. 불과 며칠 새의 다. 1000원을 더 채워 5000원어치를 담아 달라고 주문하면서 내가 물었다.

"왜 1000원이나 올랐어요?" 

두껍고 다란 앞치마를 두르고 뜨거운 튀김 가마솥 앞에서 바삐 손을 놀리던 사장님, 납작납작 따끈따끈한 간을 썰고 있 아주머니가 바로 대답한다.

"환율이 올라서." 

"네에, 환율요? 순대도 수입하나요?" 

"몰라요. 도매상 사장이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아주머니가 한 팩을 채우는 동안 말을 이었다.

"하긴 이걸 익히는 가스도 수입이네요." 

아주머니가 바로 대답한다.

"맞아요." 


도대체 무슨 조화 속인가? 네이버 창에서 달러 환율 변동을 알아보았다. 향후 예상 수치가 심상치 않다. 물가 상승 요인이 환율이라면 물가는 한동안 내려올 줄을 모를 것 같다. 


2019년 9월 9    1196원

2020년 9월 11일  1186원

2021년 9월 28일  1184원

2022년 9월 1일     1395원

2023년 9월             1611(예상) 

2024년 9월             1630원 (예상)


내년 이맘때면 물가가 어떻게 된다는 말일까? 시골집을 얻어 텃밭이라도 가꾸며 살아야 할까?


봄에는 '봄소식', 추석 전에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사촌 형님이 보내주신 야채 박스가 생각난다. 야채 종합 선물이 담긴 보물단지다. 가지, 호박, 고구마 순, 깻잎 순, 고추, 고춧잎, 고춧가루 등이 담겨 배가 불룩해진 낡은 골판지 박스가 사방을 빙빙 둘러가며 노란 테이프로 도배되어 있었다.


80을 전후하는 형님과 시숙님은 10여 년의 시골 생활을 접고 옛날에 지내시던 서울로 돌아오신다. 그래서 '마지막 선물'이다. 

몸이 불편하고 운전이 불가능해지자 2,3년 전부터 귀경을 계획하셨는데 다행히 이번에 시골집 매매가 이루어졌다.

9월 20일이 이삿날이다.


형님께 전화를 넣었다.

"형님, 바쁘시죠? 서울에는 야채값이 금값이에요. 형님, 잘 챙겨 오세요." 

", 그렇다 카더라. 그래하고 있다." 

형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몇 년은 더 젊어지신 듯하다. 그동안 시골에서 정말 열심히 사셨다. 눈만 뜨면 거의 밭에서 지내셨다. 계속 밭을 일구어 경작지를 넓히고 야산 밑에 자리 잡은 집 주변 대지들을 정리해 오셨다. 에서 유를 창조하신 대가를 이번 매매로 어느 정도는 보상받으신 듯하다. 다행이다.


내년에는 모기가 기승을 부리고 잡초가 무성한 둘째네 집 빌라 정원에 시간을 좀 많이 투자해야겠다.

몇 포기가 되든 상치와 들깨에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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