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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15. 2022

달라진 추석 풍경

   2022년 추석

2002년 11월  80세의 아버님이, 2015년 5월  89세의 시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님이 별세하신 다음 해, 어머님과 형제들이 시골 본가에 모두 함께 모여 1주기 첫제사를 모시고 그다음 해부터 바로 장남과 며느리인 우리 집으로 제사를 옮겨왔다. 

2016년부터는 어머님 제사도 보태졌다.


무엇이든 최소화, 간소화하려 하고 번잡함을 아주 싫어하는 남편과 신경전을 벌여가며 열두 짜리 강화 화문석 돗자리를 깔고 젊은 시절 정성 들여 수를 놓아 만든 열 짜리 비단 풍을 꺼내

반듯한 제사상과 차례상들을 차려왔다. 10년 이상 해온 일들이다.

야무진 동서가 깔끔하게 나물과 전을 준비해 오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남편도 진지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점잖은 제주 노릇을 침착하게 잘 해내었다.

시동생 내외와 우리 부부, 참석 가능한 아이들 부부와 손주들이 함께하여 제사나 차례를 끝낸 면 언제나 뿌듯했다.


사상 위에 올릴 제수 생선들을 사기 위해 혼자 배낭을 노량진 수산시장을 드나들었다. 마트에 들러 필요한 야채랑 과일, 육고기들을 주문 배달시켜 준비된 재료들을 다듬고 씻고 익히며 음식을 마련하느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바로 전날에는 화장실을 포함한 집안 대청소가 필수다.


없이 제사를 끝내고 함께 식사를 마친 후 동서랑 아이들이 쌓여 있는 설거지를 도와주고 떠나가면 혼자 해야 하는 설거지와 음식, 냉장고, 그릇 정리들도 만만치 않다. 끝으로 나와 있는 행주들을 뽀얗게 삶아 씻어 보송하니 말려서 제자리로 착착 개어 넣기까지 적어도 일주일은 몸과 마음을 몰입. 나는 게 힘들어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이 일들을 해내 왔고 결과는 내 마음이 홀가분해서 좋았다.


2018년, 남편이 완전히 은퇴를 하고 막내인 아들의 결혼으로  아이들이 모두 가정을 꾸렸다. 우리 두 부부는 귀향을 결정했다. 남편의 본가가 있는 경남 함안. 그곳에서 보내는 2년 동안 차례나 제사도 간단해졌다. 서울 사는 동생이나 아이들은 참석하기 어려웠고 인근 도시에 살고 있는 두 시누이들과 함께 집 가까이 있는 부모님의 묘소에 찾아가 절을 올리고 식사를 나누는 형식으로 간소화되었다. 내 나이 예순넷, 남편은 예순여덟이었다.

2년 후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왔지만 제사는 성당 미사 봉헌으로 자리 잡았다.


추석 연휴 중 세 아이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의논하다 보니 추석 당일로 결정되었다.

아이들은 음식을 시켜먹자고 의견을 내고 필요한 것은 언제든지 알려달라고 했다. 일단 알았다고 말하고 나는 이틀 동안 대강 음식을 준비했다. 갈비찜, 방아전, 호박전, 시금치 나물, 가지나물, 연근조림, 오이양파 피클, 완두콩밥, 각종 과일. 큰딸 준비해  잡채와 김치, 유과도 보태졌다. 둘째가 미리 집에서 배달 주문하고 온 남국수 요리도 도착했다. 사돈명절 아래 보내온 쇠고기와  아들이 보내준 과일. 먹거리는 충분했다.  뿌리에 4500원 하는 무를 보고 망설이다 생략한 탕국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사위가 들고 온 커다란 장바구니 속에서 의외의 선물이 나왔다. 사돈어른이 준비해 주신 송편 재료들이다. 쑥을 섞은 쌀가루를 이미 익반죽해치대어 뭉친 반죽 덩어리와 속에 넣을 깨와 설탕이 담긴 비닐봉지다. 사돈이 일러주신 대로 견과류를 갈아 속에다 더 보태 넣었. 손주들이랑 사위들이 둘러앉아 반죽을 더 치대고 송편을 빚기 시작했다. 제각각 만들고 싶은 갖가지 모양들이 나왔다. 장미꽃, 와플, 포켓 몬스터 동물 캐릭터 등이 빚어졌다. 추석 기분이 물씬 풍겨 났다. 찜기에서 방금 익혀낸 초록색 송편들이 쫄깃쫄깃 고소했다.


식탁과 거실 바닥과 테이블 상에서 끼리끼리 카드놀이도 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각자 가족들을 잘 챙기면서 명절다운 고맙고 풍성한 시간들을 잘 보내었다.

1녀를 빼고 12명 가족이 다 모였다. 오늘 못 온 손녀를 위해 추석 용돈과 음식들을 따로 챙겼. 11개월 된 손녀는 한창 낯을 가리는 중이라 엄마 아빠 품을 떠나지 않고 찰싹 붙어 있는 통에 엄마인 며느리가 힘들었다.


저녁나절, 동네 예쁜 카페로 옮겨서 다시 자리를 마련했다. 음료와 팥빙수와 후식들을 앞에 두고 평소에 못 나누었이야기들이 오갔다.

어스름해진 시간, 아이들은 떠나고 남은 우리 둘은 다시 저녁을 차려 먹었다. 그리고 돌아가신 조상님들과 자녀들을 위한 기도, 남편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바쳤다.


음 명절에는 아이들이 모두 다 모여 있을 때 짧지만 경건한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 간단한 기도 양식을 준비해서 넉넉히 프린트해 오라고 아이들에게 부탁해야겠다.


세상을 떠난 부모를 위한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부모를 효도로 공경하며 은혜를 갚으라 하셨나이다.

세상을 떠난 부모를 생각하며 기도하오니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랐던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또한 저희는 부모를 생각하며 언제나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며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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