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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05. 2022

正義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네이버 초록창 위에는 평소와 달리 눈길을 끄는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오늘이 그런 날인가?

왼쪽 옆에는 앙증맞은 노랑나비 두 마리가 사이좋게 날고 있다. 지상을 떠나 저 높은 상공을 향해 날개를 팔락이고 있다.


나비 그림과 적혀있는 글귀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1940년대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그린 영화 <귀향>의  영상떠올랐다. 억울하게 희생된 어린 소녀들의 영혼을 상징하는 노랑나비의 화려한 군무가 화면을 가득 채우며 하늘로 훌훌 날아가는 마지막 장면이다.


대구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에서 오랫동안 열심히 활동해 온 동창 친구가 있다. 그 친구 덕분에 우리들도 계속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올해 2022년 2월 9일에는 '새로운 시선과 접근 방식이 돋보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다큐멘터리'라고 소개되는 영화, 박문칠 감독의 <보드랍게> 언론 배급 시사회에도 참석했다.


주인공 김순악 할머니는 대구의 실 푸는 공장에 가는 줄 알고 동네 아저씨를 따라 처음으로 기차를 탔다. 대구 소개소와 서울 소개소를 거쳐 강제로 만주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그 이후 할머니는 '위안부', 요시코, 마마상, 마츠다케, 왈패, 할매, 미친개, 김순악, 김순옥, 개잡년, 기생, 엄마, 사다코, 깡패 할매, 데루코, 순악씨, 식모, 술쟁이 등의 숱한 거친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왔다.


<Comfort>로 번역되는 영화 제목 <보드랍게>는 주인공 김순악 할머니의 말에서 인용했다.

"내 이야기해 가지고 '아이고 그랬구나, 참 애 다(먹었다).' 이렇게 보드랍게 이야기하는 사램없어."

감독은 그 뒷말을 잇는다.

"이 말 한마디는 여든두 해를 살아온 김순악의 삶의 회한을 오롯이 엿볼 수 있어 가슴이 뭉클해진다. 얼마나 위로받고 이해받고 싶었을까?"


'위안부'로 인한 피해가 전쟁 당시로 끝난 게 아니라 이후 생의 전반에 걸쳐 계속되어 거칠고 모진 전쟁터 같은 삶을 살았다.

'버린 몸띠(몸뚱이)'라 생각하며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서울, 군산, 여수를 떠돌며 전시 성폭력 피해가 전쟁 후에도 성매매, 기지촌 생활로 이어졌다.


이분들이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침묵하며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성의 정조를 강조하며 피해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긴 한국의 가부장제 때문이다. 그 폐해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병자호란(1636)으로 수십만의 조선 백성이 청나라의 포로로 잡혀가 노예생활을 하다 수만 명이 살아 돌아왔다.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부녀자들은 정절을 의심받아 모진 구박을 받고 (還鄕女, 화냥년) 반가의 부녀자들은 이혼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힘없는 나라의 가난한 백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개인의 삶이 철저히 난도질당한 정신대 할머니들의 삶은 전쟁과 군대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 '에 휘말린 하나의 기록이다.


1995년 2월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로 시작하여

1997년 12월 29일 정식 출범한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은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복지 지원과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펼쳐 왔다.


일본 민간인 여성인 모리카와 치코 씨가 저술한 <문옥주, 버마 전선 타테사단의 '위안부'였던 나>의 한국어판

 <역사의 증언 ㅡ버마 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펴낸 일도 그 중의 하나다.


이 책은 1923년, 대구에서 태어나 16살 때 헌병에 의해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은 문옥주 할머니의 일대기이다.


모리카와 씨는 문옥주 할머니와의 3년간에 걸친 인터뷰를 토대로 원고를 탈고한 뒤에도 여러 차례 버마를 방문하여 사실 확인 작업을 거쳤으며 1997년~98년에는 14개월간 장기 체류를 하기도 하며 일본군의 버마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온전히 밝히고 그 기록을 200여 페이지의 책으로 남겼다.

일본에서 '매춘 문제와 싸우는 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었던 모리카와 씨는 문옥주 할머니가 '위안부' 시절에 저축한 군사우편 저금을 찾아주기 위해 일본의 우정성과 어려운 싸움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말한다.

"문옥주 할머니는 전쟁 중에도 '위안부'라는  처지에 지지 않고 강고한 애정을 가지고 주위의 사람들을 대하고 전쟁과 군대를 투철한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살아오신 반생을 듣고 국가나 군대라는 것은 적과 우리 편에 관계없이 인간에 대한 폭력 장치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광포한 것이었다고 해도 우리들 인간은 그것에 의해서는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용기를 줄 것이라고 기대됩니다."


옮긴이 김정성 교수도 후기를 남겼다.

할머니들의 유린당한 청춘을 돌려드릴 수는 지만 진심 어린 위로는 가능하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비단 일본 정부와 일부의 몰상식한 일본 국민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문옥주 할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여러분들도 새로운 눈으로 자신의 인생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그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양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그 경험이 지금 당장 내 인생과 이 사회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양심이 제대로 모여 목소리를 내면 할머니들의 삶과 수많은 전쟁 피해자들의 삶이 적어도 불행했으나 그 가는 길이 외롭지만은 않았던 삶, 그래서 더불어 웃을 수 있었던 삶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합니다.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진상 규명, 국가 책임 정,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교육관 건립, 올바른 역사 교육 실시를 일본 정부에 촉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고 있지 않은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회 정의의 구현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짓밟힌 인간의 존엄성과 명예를 되돌려 드리기 위한 것이며 동시에 이것은 지금도 전쟁과 폭력 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세계 각지의 피해 여성들을 위한 활동이기도 하다.


박문칠 감독은 말한다.

피해자들을 수용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책임을 함께 성찰해 보자.

이분들의 삶을 공동체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오늘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 시대가 주목해야 할 사회 문제로 폭력 피해자에게 귀 기울여 주지 않는 편견과 차별은 결코 일본 '위안부'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Me too 운동으로도 드러난 여성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도 직결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브런치 작가 늘봄유정님이 2022년 8월 15일 브런치에서 소개하고 있는 두 권의 책에 실린 글나누어 본다.


후안 엔리케스의 < 무엇이 옳은가?>

우리의 인간성과 시민사회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가치이자 핵심 원리는 수수함, 관대함, 공감, 공손함, 겸손함, 연민, 예의바름, 진실함 등이다.


김정희원 교수 <공정 이후의 세계>

관계적 존재론에 기반한 정의의 개념을 다시 세우자.

인간은 모두 존재 자체로 존엄하다는 것이 정의이다.

구성원 서로를 돌보는 문화, 사회에 돌봄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 문화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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