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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01. 2022

난주, Maria

폭군이 죽으면 그의 지배는 끝나지만 순교자가 죽으면 그의 지배는 시작된다

1801년 순조 원년, 서슬 푸른 판관의 호령은 위엄이 넘쳤고 주위를 오가는 군관과 사령들은 각개 부장을 따라 분주했다. 찬바람 몰아치는 포도청 앞마당에 꿇어앉은 난주는 하릴없이 몸을 떨었다.

관비ᆢ

그것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통보이자 목숨만 부지하게 됐다는 천벌이었다. 명문 사대가의 맏딸로 태어나 비단옷에 휘감겨 살아온 유약한 아낙으로 과연 그 이름을 견딜 수 있을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난주는 하염없이 두려웠다. 무엇보다 떨려오는 것은 살고자 내려놓은 믿음이었다. 어리석은 죄를 자복한 것은 누구의 말인가. 다시는 미혹되지 않을 것을 다짐한 것은 또 누구의 뜻인가. 심문을 당하는 중 저도 모르게 흘린 背敎의 자락을 단숨에 거두어 꼭꼭 씹어 삼키고 싶었다. 딱딱하게 굳은 혀끝으로 두려움의 침묵을 뚫고 싶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니었다. 서방님을 따라 천국 문에 드는 것이야말로 난주가 바라는 유일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한 아이의 어미에게는 죽음조차도 쉬 허락되지 않는 호사였다.


난주의 품에 안겨 있던 경헌이 더럽고 해진 어미의 홑옷을 움켜쥐며 칭얼댔다. 여름에야 겨우 돌을 지난 아이다. 추운 토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보드랍던 볼살은 까칠하게 푹 파이고 두 눈은 윤기 없이 퀭했다.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울음을 달랬다. 삼키는 울음마다 딸꾹거리는 설움이 자그만 등짝에서 생생하게 울렸다. 그 살아 있는 것의 소리가 난주의 까마득한 정신을 일깨웠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바로 그 아이에게 있었다.


남편은 한 가지 일에 빠지면 무섭도록 몰두하는 이였다. 세상은 그를 신동이라 했지만 난주는 그러한 몰입이 때로는 두렵고 근심스러웠다. 정약전, 약종, 약용 숙부들에게 처음 천주의 이야기를 듣고 온 날은 온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세상의 진리를 깨우친 줄로만 알았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알았다고 자만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미처 몰랐다. 그것은 뼈아픈 멸시와 고통, 때론 죽음으로써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기쁨이었다. 정약종과 이승훈, 이가환, 주문모 신부를 비롯한 교도 백여 명이 처형당하거나 옥사했고 정약전, 정약용을 비롯해 난주와 같이 유배되는 이가 수백이었다.


어미란 양반이고 천민이고 하늘 아래 가장 강했다. 내 속으로 낳은 새끼를 위해 무엇인들 못 하랴. 죽으라 해도 죽을 것인데 살아야 한다면 살고야 마는 것이다.

살아, 살자꾸나. 하늘에 가거들랑 살아 있는 순교도 있었노라 자랑이나 하자꾸나.

흔들리는 마음에 빗장을 채우며 난주는 살아 있다는 죄스러움을 씻었다.

             

   <난주>, 김소윤, 은행나무,  P13~19



9월 첫날, 화창한 아침. 아낌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햇살은 남향 베란다를 가득 채운 초록 화분들의 어깨를 넘어 어느덧 거실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다. 찾아든 햇살속살거림도 며칠 새 완연히 달라졌다. 따스하고 부드럽고 평화롭다. 어서어서 쑥쑥 자라라고 성장을 재촉하며 정수리를  뜨겁게 내리쬐며 달구던 여름의 에너지를 뒤로하고 그동안 애썼다고, 이렇게 무성히 잘 자라 주어 고맙다고 넉넉하게 등을 토닥이며 다정한 가을의 말을 전해 준다. 튼실해진 가지에 무성해진 잎을 달게 된 식물들도 그에 응답한다. 지난여름  아낌없이 쏟아부어 주었던 그 뜨거운 사랑에 감사드린다고.


 9월. 누군가 9월은 떠난 이와 남은 자의 간극이 사라지는 계절, 보고픈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떠난 이를 위한 첫 기도를 치는 이라고 했다. 하늘과 마음과 모든 것이 깊어지는 계절이라고 했다.

그래서인가 가톨릭에9월이 순교자 성월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신앙 선조들의 삶을 기억하며 현재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는 이다.

 

한티 순교성지 글을 쓰고 난 후 의외로 많은 분들이 한국 천주교 박해의 실상과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댓글들을 달아 주셨다. 하긴 백 년이나 이어진 긴 세월과 만 명에 박하는 희생자의 순교 역사를 가진 민족이 그리 흔하겠는가? 아는 듯 모르고 모르는 듯 알면서 그냥 쉬이 지나쳐 버리기 쉬운 우리 순교 역사이다.


갑자기 찾아보고 싶은 책이 생각났다. 별로 잘 정리되어 있지 않은 책꽂이 앞에 섰다. 돋보기 너머로 책들을 훑었다.

찾았다.

제6회 제주 4ㆍ3 평화문학상 수상작. 

<난주 Maria>, 김소윤 장편소설. 은행나무, 2018년.

10여 년 전 성서백주간 봉사자 교육에서 인연 맺은 마리에스텔 수녀님이 작년 가을 이맘 선물로 주신 책이다.


성서 백주간 말씀 공부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시는 녀님은 순교자 심이 각별하시다. 특히 1801년 신유박해 때 참수당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순교 복자님을 많이 사랑하신다. 

올해 초에도 한 권의 책을 주셨다.

<말씀으로 새기는 정약종의 주교요지>, 정승현 엮음, 한님성서연구소, 2020년.

정승현 신부님이 정약종의 <주교>를 성경 말씀을 보완하여 신앙의 진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말씀과 교리와 해설 내용을 담은 책이다.


<주교요>는 정약종이 당시 하층민 출신의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유학자들의 천주교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한 순 한글 천주교 교리 해설서이다. 중국 북경에서 예수회 신부 마테오리치가 漢譯하여 1603년에 간행한 천주교 교리서인 天主實義를 근간으로 하여 당시 사회적 관심의 대상에서 소외되었던 부녀자와 서민층을 위해 한글로 펴 내었.

스페인 바르셀로나 성당의 건물 바깥  벽에 빼곡히 조각되어 있는 성서 속의 장면들이 글을 모르고 책을 가까이하기 어려운 노동자와 소외층 사람들을 위한 성서 이야기 내용이라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의 책을 앞에 두고 일단 <Maria>를 읽기 시작했.

1801년 중국 북경의 주교에게 신유박해의 실상을 알리고 도움을 구하기 위해 황사영은 충북 제천의 현재 배론성지 토굴 속에 숨어 길이 70센티, 두 자 가량 되는 명주천에 1만 3311자의 깨알 같은 한문 편지를 썼다. 黃嗣永 帛書.

교자의 밀고로 발각되어 스물여섯 살의 전도 창창한 젊은 학자, 햇살처럼 눈부신 젊은 지아비 황사영은 대역죄인으로 능지처참을 당한다. 그 황사영 알릭시오가 그녀, 정난주 마리아의 남편이다.


나고 자란 고향은 두물머리 마재, 아버지 성리학자 정약현의 맏딸. 숙부인 정약종이 남편 황사영의 천주교리 스승이다. 다른 두 숙부, 정약전과 정약용도 당대의 뛰어난 실학 사상가들이다. 남편은 처참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대역죄인의 가족인 시어머니와 난주 그리고 갓 돌 지난 아들 경헌은 잔혹한 고문과 혹독한 옥고를 치른 후 중죄인이 유배되는 제주 땅에 관의 노비로 정배 되었다.

시어머니는 유배된 거제도에서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차마 노비로는 만들 수 없기에 제주로 향하는 뱃길에 잠시 머무른 추자도에 몰래 버려두고 떠나온 돌쟁이 아들에 대해서는 감히 그 생사여부를 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운명을 하늘에 맡긴 채 도착한 제주에서 37년간 관비로 살다 이 세상을 하직한 정난주 마리아의 처절한 고통의 삶을 그린 실화 소설 <난주 Maria>. 34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이 막힘없이 단번에 읽힌다.


가족과 영원히 헤어지는 단장의 슬픔, 고문으로 손가락이 잘리고 상전의 매질에 등짝이 터져나가는 비천한 노비로서의 고통스러운 삶을 읽으며 뜨거운 눈물로 동참했다. 우리는 그 삶을 백색순교라고 부른다.


작가의 뛰어난 표현력과 객관적이며 방대한 자료 수집에 근거한 사실감 있는 사건 전개가 끝까지 긴장을 잃지 않고 펼쳐진다.


어제 오후, 사흘 전에 읽기 시작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리고 오늘이 9월 1일이다. 순교자 성월의 첫날에  순교자의 삶을 담은 책 두 권을 소개할 수 있게 된 은총에 감사드린다.



명의 순교자 앞에

                              이해인


오래전에 전에 흙 속에 묻힌

당신의 눈물은

이제 내게 와서

살아 있는 꽃이 됩니다


당신이 바라보던 강산과 하늘을

나도 바라보며 서 있는 땅

당신이 믿고 바라고 사랑하던 임을

나도 믿고 바라고 사랑하며

민들레가 되고 싶은 이 땅에서

나도 당신처럼 남몰래 죽어가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박해의 칼 아래 피 흘리며 부서진

당신의 큰 사랑과 고통이

내 안에 서서히 가시로 박혀

나의 삶은 아플 때가 많습니다

당신을 지 못한 부끄러움에

끝없는 몸살을 앓습니다


당신을 통해 주님을 더욱 알았고

영원의 한 끝을 만졌으나

아직도 자주 흔들리는 나를

조용히 붙들어 주십시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거룩한 순교자여

오래전에 흙 속에 묻힌 당신의 침묵은

이제 내게 와서

살아 있는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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