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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02. 2022

스무네 번째 본당 생일날

   새로운 다짐

2022년 10월 2일 일요일.

10시 20분, 집을 나섰다. 11시 주일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항상 안나 자매와 함께하는 길인데 오늘은 혼자다.

당 설립 24주년 기념, 당의 날 행사를 위해 구역 반장인 안나 씨는 어제 오늘, 이틀 동안 행사 준비로 아주 바쁘다. 9시 미사와 11시 미사 후, 미사에 참석한 전신자에게 비빔밥을 대접하는 일이다. 3년 가까이 코로나로 인해 많이 위축된 본당 활동을 격려하고자 하는 신부님의 고심이 담겨 있다. 지금쯤 많은 봉사자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바삐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혼자 는 길은 주위 풍경이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온다. 항상 붐비던 길이 한적하게 텅 비어 있다. 일요일 오전차분 분위기가 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시간에 쫓겨 종종거리며 바쁜 발걸음을 옮기던 분주한 일상. 그 틀에서 벗어나 조금은 느슨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평안한 휴식들취하고 있으리라.


빌라 단지 높은 담장 위로 길게 뻗어 나온 감나무 가지들 끝에 알 굵은 단감들이 실하게 달렸. 아직은 초록색 잎 속에 같은 초록색으맺혀 옹기종기 숨어 있다. 이제 곧 초록잎들은 노랗게 발갛게 변하며 땅 위로 향하주홍색으로 곱게 익어간 감송이들은 나뭇가지에 환한 불을 밝히며 선연한 알몸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다.  


성당 현관으로 들어서니 밝고 활기찬 분위기가 끼쳐 다. 안내 띠를 두르고 주보를 나눠 주는 봉사자들,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서로 반갑게 인사들을 주고받는 신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활짝 피어난 웃음주고받으며 넉넉한 마음들이 된다. 4층 전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다.


도심 주택가에 자리 잡은 우리 본당의 특징 중 하나는 마당이 없다는 점이다. 2차선 도로 옆 인도에서 네댓 개의 낮은 계단을 올라와 묵직한 유리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면 바로 1층 실내 공간이다.

아무리 도시라도 대부분의 성당들은 마당이 있다. 마당 안쪽 성당 건물 바로 앞에는 쉽게 눈에 띄는 성모 마리아상이 단정하게 서 있고ᆢ.

때로는 꽤 넓은 마당이 있기도 하다.


평상시의 성당이라고 하면 어둑한 성전보다는 아늑한 성당 마당을 먼저 떠올릴 것 같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아무 부담 없이 쓰윽 들어와 한 바퀴 빙 둘러보고 가는 곳.

아쉽게도 우리 방배4동 성당, 본당은 그런 낭만을 주지 못한다.

밤이든 낮이든 마음 내킬 때 편안한 차림과 편안한 마음으로 성당 마당에 들어와 한 바퀴 휘익 둘러보고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은  그냥 훌쩍 돌아서서 나갈 수 있는 그런 넉넉한 정취가 없는 셈이다.


오늘 신부님이 알려주셨다. 

우리 본당은 366평의 대지에 건평 746평으로 지하 1층 주차장, 지상 5층 건물로 지어진 아담한 규모.

현 주임 신부님이 부임하신 후 옥상을 정원으로 꾸며서 아름다운 옥상 정원이 마련되었다. 그 정원도 1층에서 엘리베이터로 올라와야 하니 외부인들은 알아차릴 수가 없다. 접근은 더더욱 어렵다.


며칠 전 성당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게 버스 노선을 물어오던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 여기가 성당이에요? 20년을 이 동네에서 살았는데 성당이 있는 줄 몰랐어요."


건물 전면에 성당 이름이 적혀있지만 별로 튀지 않고 그나마 꽤 높은 위치라 일부러 고개 들어 쳐다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다. 주차장 입구에도 조그맣고 세련된 예쁜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지만 그리 눈에 띄지는 않는다. 별생각 없이 무심히 지나치는 행인들에게는 그냥 일반 건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건물 바로 옆에는 조그마한 성모동산도 있는긴 세월 성당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니. 분도 조금은 독특하고 우리 성당 외형고정관념에서 많이 벗어나 있.

 

주위 다른 당들에 비해(20~30%) 우리 당의 지역 복음화율이 많이 낮다(12.6%)고 한다. 성당 마당이 없는 것도 그 한 가지 이유가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혼자서 보았다.


임 신부님은 4년 여 우리 당 사목을 하시면서 느낀 점을 말씀하셨다. 내년 여름이면 5년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다. 오늘 마지막 당의 날 강론을 하시는 셈이다. 

따끔한 내용을 부드럽게 표현하시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셨다.


우리 본당의 낮은 지역 복음화율을 보면 우리들 모두가 무관심, 신앙의 개인화 혹은 신앙의 익명화라는 늪에 빠져 있지나 않은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과는 관계가 없는, 나 자신만

만족을 위해 성당에 나오는 것이 마치 신앙생활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속적인 생각으로 부자일수록 신앙에 대한 열성이 약하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가 아니구나,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교회를 포기했구나, 가난한 이들의 진정한 벗이 되지 못했구나 생각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본당은 교황청에서 제시한 세계 가난한 국가의 코로나 백신 지원을 위한 모금에는 기대를 넘어선 7000만 원이라는 돈이 목표한 기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코로나 발생 직후 국내 취약층 백신 지원에는 미사가 폐지되고 신자들이 성당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5300만 원이 모금되었다.

캄보디아많이 도왔으며 캄보디아 어느 한 성당을 짓는 데 3000만 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아프리카 고통받는 교회 돕기, 케냐 물길 잇기에도  성당 카페 운영, 우리농 운영 수익금으로 지원의 손길을 뻗었다.


우리 당 신자들의 신앙 시선은 계를 향해 열려 있다.

200년 전, 목숨을 건 파리 외방선교회 신부님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우리 교회가 복음화되었던 그 모습 그대로 우리나라의 많은 해외 선교사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찾아가 열악한 환경에서 열정적으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는 교황청의 경제적 지원 당이 세계 10위 안에 들고 있는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서울에 적을 두고 있는 우리 본당은 시야를 전 세계로 넓혀서 아프리카, 남미 교회들에게 의료, 교육 지원을 해야 한다. 이런 것이 우리 본당에게 맡겨진 사명, 지역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다양한 활동이 아니겠는가.

우리 본당이 할 수 있는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 좀 더 많이 노력하자.

본당 설립 24주년의 의미를 바로 이런 노력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년, 2023년 1월 9일,  캄보디아에서 사목회의를 할 계획이다. 신자가 0.3%도 안 되는 열악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우리나라 선교사들의 열정적인 선교 현장을 둘러보고 세계 교회를 위해 우리 성당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묵상하며 세계 복음화를 위한 사목 계획을 세워 보자는 취지이다.


스무네 번째 본당의 날을 맞아 본당 신자들의 내면의 복음화, 지역사회의 복음화를 위한 특별한 은총을 청한다. 


례 후, 신부님의 회로 사목회장님과 지역센터장이신 동장님이 강단에 올라오셨다. 지역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방한복 한 트럭과 성금을 전달하는 것으로 미사가 끝났다.


1층 만남의 방과 2층 소강당, 6층 옥상에서 전신자 비빔밥 점심 파티가 열렸다. 사십여 명의 남녀 봉사자들이 이틀 동안 희생적으로 준비해 온 헌신 덕분에 정성스럽게 준비한 점심 대접이 척척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혼자서 20포기의 배추김치를 담아 기증한 자매님도 있었다.

푸짐한 떡과 따끈한 수육과 싱싱한 김치, 즐거운 대화로 6층 옥상이 온통 화기애애했다.


하나 둘, 의자가 비기 시작하자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흐리던 하늘에서 한두 방울씩 비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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