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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06. 2022

지금, 연애 중입니다. 1

 고백

2017년 6월, 서울시 교육청 강남 도서관에서 자서전 쓰기 강좌가 있었다. 친구의 소개로 지인들 몇 명과 함께 참석했다.

 ,  살 어린 두 손주가 있는 둘째네와 살림을 합쳐 일곱 식구가 함께 살 때다. 육아와 가사에 쫓기느라 글쓰기에 몰두할 수 없어 많이 아쉬웠다.


스무 남은 수강생들이 24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그동안 던 글들을 모아 두 권의 합동 수필집을 발간했다. 나도 80페이지에 달하는 15편의 글을 활자로 남기는 작은 열매를 맺었다.


강좌가 끝난 후 열정적인 한 분의 제의 후속 글쓰기 모임이 만들어졌다. 회장, 총무, 서기를 뽑고 모임의 이름도 정했다.

일꼬스모.

읽고 쓰는 모임.

읽고 쓰기로 우주의 조화에 기여하는 모임.

참신하고 독창적인 이름이라 담박 그 이름에 반했다. 지금도 많이 사랑하는 이름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각자  편 이상 제출한 글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로 했다.

카톡방을 통해 릴레이 소설 쓰기도 했다. 설레고 재밌는 작업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스무 명 남짓으로 출발했던 출석 인원이 어느새  자리 숫자내려앉더니 이제는 네 명으로 고정되어 버렸다. 카톡방 구성원으로는 아직도 열여섯 명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눈팅 회원들이다.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읽고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서너 달 전부터는 작품에 대한 의견 나눔보다는 참석 인원수 증가 대책 마련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다. 

고심 끝에 이번 달 9월은 단합대회 겸 야유회를 가져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총무님이 또 총대를 메었다.


선택한 장소는 해바라기 명소인  호로고루 성, 임진각 북쪽 기슭에 있는 삼국시대 성지(城址)이다.

삼국시대부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 치열하게 뺏고 뺏기는 각축전 끝에 백제, 고구려, 신라의 축성법이 들어 있다고 한다. 

지금은 강을 낀 넓은 판을 노란 해바라기로 가득 덮어 경기 북부 지역의 해바라기 명소로 알려져 있다.

평일인데도 여기저기 넓게 마련해 놓은 주차장들이  이미 만원이다. 빈자리 찾기가 힘들었. 


9월 말의 해바라기 꽃은 이제 한물간 듯 시들하니 많이 엉성해 보인다. 대신 임진강을 넘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툭 트인 시야가 멀리에서 찾아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아 . 

여섯  회원들오손도손 자유롭게 거닐교외로 나온 한가함을 마음껏 즐겼다. 봉고차 운전까지 맡아주신 총무님의 치밀한 준비로 고등어구이 맛집에 들러 푸짐한 점심을 먹었다. 늦은 점심인데도 식당은 왁자지껄 손님들로 붐빈다. 자리가 비기 바쁘게 다음 손님이 자리 잡는다. 우리 여섯도 겨우 한 자리 차지하였다.


다음 행선지는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언덕 위 카페였다. 넓은 대지예쁜 꽃과 나무와 잔디들이 아담하게 자리 잡았다. 마음껏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독립된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준비해 온 글들을 나누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 봉고차 안. 

역시 톡톡 튀는 분이 툭 한마디 던졌. 

"연애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하하하, 봉고차 안에 한바탕 웃음의 물결이 일었다. 

내가 말했다.

"맞아요, 뜨겁게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고백했다.

요즘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고 나에게 기쁨과 활력을 주는 연애 대상을 밝혔다.

읽기, 글쓰기다.

일꼬스모와 브런치이다.


코로나로 일상이 모두 단절된 막막하고도 단조로운 두려움의 시간. 더구나 지난 8월 26일 확진자가 되어 9월 1일 자가격리가 해제될 때까지의 힘들었던 집콕 시간,  후  달간 이어졌던 콜록콜록 후유증,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남편의 투병 생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끼 집밥을 준비하는 것도 긴장된 일이지만 은둔형 남편과 단둘이 지내야 하는 무겁고 촘촘한 시간과 공간도 버거웠다. 어두운 우울이 홍수처럼 범람해 와 우리 둘을 모두 삼켜 버릴 것 같았다.

이건 아니다. 내가 바로 서야 한다.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에서 유능하고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 희생자가 되기 쉽다.

그러지 않으려면 자기 감탄이 있어야 한다. ㅡ


아침 준비 시간, 포켓에 넣고 다니며 듣는 핸드폰 유튜브 강의. 오늘따라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명쾌한 가르침이 가슴속에 쏘옥 날아와 포옥 꽂힌다.


그동안 나의 빛이 되어 주었던 많은 고마운 일들을 기억해 본다. 이웃들의 격려와 기도, 알뜰살뜰 퍼부어 었던 친구들의 위로, 친인척들의 애틋한 사랑, 아이들의 꾸준한 지원, 환자 본인의 철저한 자기 관리 등이다.

모두 나의 자기 감탄의 소재들이다. 나를 힘내게 해 주고 나를 사랑하게 해 준다.


더불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무엇보다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나를 따뜻하게 지켜주고 힘을 잃지 않게 격려해주는  하나의 응원군이 있다. 

읽기와 쓰기이다. 일꼬스모 활동과 브런치살이다. 은은히 지속되는 나의 연애 대상이다. 고마운 자기 감탄의 불쏘시개다.


얼마 동안 계속될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우리들의 앞날. 어지는 일상이 기쁘든 슬프든, 힘들든 쉽든 매 순간 순응하며 수용해야 한다.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연애 대상, 읽기와 쓰기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 끝까지 잘 이어져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 힘으로 내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선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웃고 사랑하고, 웃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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