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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우물

by 서무아


우물가는 세를 들어 사는 아랫채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식구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는 만만한 장소였다. 문 하나 닫으면 밀폐되는 혼자만의 공간인 수세식 화장실에서 이빨 닦고 샤워하는 요즘과는 달리 눈만 뜨면 너나 할 것 없이 사방이 뻥 뚫려 있는 우물가로 가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했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시원한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기도 하고ᆢ



어머니는 거기서 온갖 야채를 씻고 생선도 다듬고 빨래도 하셨다. 여름철에는 꽁꽁 잘 감싼 물김치 통이나 수박이 우물 속에 잠겨 있기도 했다. 커다란 솥 하나 가득 삶은 국수를 뜨거운 솥째로 잽싸게 들고 와 넓은 대소쿠리에 확 부어 뜨거운 물을 빼내고 시원한 우물이 가득 든 큰 대야에 옮겨 담아 휘휘 저어가며 밀가루 물이 다 빠질 때까지 두세 번 헹구어 낸 다음 하나하나 둥근 똬리로 감아 다시 넓은 대소쿠리에 건져 물을 빼던 곳도 거기였다. 우리는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야금야금 갓 삶은 국수의 쫄깃거리던 맛을 즐기고ᆢ



우물 옆에는 꽤 넓은 시멘트 바닥과 브로크 담으로 된 장독대가 있었다. 식구가 많다 보니 커다랗고 조그만 여러 가지 모양의 많은 독들이 키 순서대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그 맨 앞자리에는 꼬부랑하게 손잡이가 달린, 오래된 약탕기가 두어 개 엎어져 있었다. 조막만 한 어린 약병아리 한 마리랑 마늘 한 줌 대추 몇 알 넣어 삼계탕을 끓이면 1인분으로 딱 맞던 정겨운 약탕기. 감기 몸살 앓고 입맛 뚝 떨어진 가족에게 주어지는 특식이었다. 어떤 때는 그 약탕기에 수삼 폭폭 삶아 꿀에 찍어 먹게도 했다. 수삼의 그 쌉싸름한 맛이 싫어 안 먹겠다고 투정 부리면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옆에서 지켜보며 채근하시던 어머니. 끝내 도리질하며 도망가면 그 등 뒤에 대고 큰 소리로 이름 부르시던 어머니. 언젠가는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어르고 달래던 어머니께서 계속 거절하며 투정 부리는 철없는 내게 너무 화가 나셔서 마당 안, 집 둘레를 몇 바퀴나 뱅뱅 돈 적도 있다. 나는 도망가고 어머니는 뒤쫓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장독대 시멘트 바닥에 파랗게 낀 이끼를 벗겨내고 독들 사이로 날아든 쓰레기들을 치우느라 플라스틱 빗자루와 키 큰 솔로 빡빡 문지르고 바로 옆에 있는 우물물을 시원하게 퍼부어 가며 대청소를 했다.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며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던, 정겨웠던 항아리들.



우물가의 또 다른 한쪽에는 반 평 정도의 조그마한 딸기밭이 있었다. 봄이 되면 하얀 딸기꽃이 피고 벌들이 붕붕거리고 그러다가 거의 하얀색에 가까운 쪼끄만 연둣빛 열매가 맺히고 그것이 점점 자라나며 살짝 분홍색으로 바뀌다가 마지막에는 딸기 고유의 윤기 나는 빨간색을 드러내며 까만 씨가 쏙쏙 박힌 진짜 딸기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진짜 딸기로 익어 갈 때까지 운 좋게 남아 있는 딸기는 거의 없었다. 어린 우리들의 눈길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들, 딸기 절대 손대지 마라."라고 어머님께서 여러 번 경고를 내리면서 며칠을 벼르다가 하루 날 잡아 한 번 수확하면 납작한 양은 도시락에 겨우 하나 가득 찰 정도의 양이 되었다. 식구들이 다 같이 한 번 먹을 수 있었다. 그런 경고 하에서도 몰래몰래 한두 개씩 따 먹는 금지된 장난.



나보다 네 살 위인 작은오빠 이야기다. 하루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오빠 혼자 몰래 딸기밭을 뒤적이고 있는데 뭔가 인기척 소리가 들려 뒤돌아 보니 아버지가 저쪽에서 오고 계셨다고 한다. 깜짝 놀라 숨을 곳을 찾다가 궁여지책으로 얼른 우물 안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우물은 겉으로 드러난 윗부분은 둥근 큰 시멘트 원통 (그때는 독깡이라고 불렀다)이고 1미터 정도 되는 그 시멘트 원통이 끝나는 지점부터 물이 고여 있는 맨 밑바닥까지는 야무지게 돌을 쌓아 놓은 돌담이었다. 우물 밑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한 번도 마르지 않았던 꽤 많은 양의 물이 고여 있었고 물기를 머금고 있는 돌은 미끄러웠다. 아마 오빠는 독깡 끝에 걸친 열 손가락에 매달려 돌 틈에 발을 끼우고 우물 안쪽으로 쪼그리고 앉아 숨을 죽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아버지가 우물로 오시더라고 했다. 아버지가 독깡 가까이 오신 순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오빠는 불쑥 튀어 올라 독깡을 뛰어넘어서는 꽁무니가 빠지게 대문 밖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정작 더 놀라신 분은 아버지.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시간에 갑자기 애가 튀어나와 번개 같이 사라지니 얼마나 놀라셨을까? 모처럼 형제들이 여럿 모인 자리에서 그 이야기로 웃음보따리를 터뜨렸다. 어느덧 50년도 더 넘은 옛날이야기이다.



여동생은 활달하고 운동신경도 뛰어나고 놀이도 좋아하고 집보다는 밖을 훨씬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어느 봄날, 꽤 쌀쌀한 날씨였다.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두꺼운 겨울 옷을 벗기고 원피스(그때는 간다꾸라고 불렀다)로 갈아 입혔다. 남동생이랑 셋이 봄볕 따스한 우물가에 모여 뭔가 놀거리를 찾고 있었다. 심심해진 여동생은 자기가 뒤로 돌아서서 물을 길어 보겠다고 했다. 지켜보는 우리들 앞에서 등 뒤로 물을 긷는 어설픈 흉내를 내다가 그만 퐁당 우물속으로 빠져 버렸다. 어리고 가벼운 몸이 물이 가득 담긴 두레박 무게를 감당해내지 못해 순간 물 속으로 끌려 들어간 것이다. 옆에 있던 우리들은 숨 넘어가는 목소리로 어머니를 부르고 어머니는 허겁지겁 뛰어가서 동네 아저씨를 모셔왔다.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도 달려왔다. 다급한 상황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긴 사다리가 동원되고 밑엣집 아저씨가 그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물에 함빡 젖은 동생을 안고 올라오셨다. 우리 집 우물은 수량도 풍부하고 깊이도 꽤 깊었는데 거꾸로 빠지면서도 돌우물 벽에 부딪치지도 않고 아무 데도 다치지 않아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어머니 말씀대로 아이들을 돌보시는 삼신할미가 계시는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씩 봄철이 되면 하루 날을 잡아서 동네 장정 서너 분을 모셔와서 우물 대청소를 했다. 여러 어른들이 힘을 합쳐 물을 대충 다 퍼내고 나면 힘세고 건장한 한 분이 독깡을 빙 둘러서서 내려다보며 조심하라고 훈수 두는 동네 사람들의 긴장된 시선들을 온몸에 받으며 침착하게 차근차근 미끄러운 돌들을 딛고 우물 바닥으로 내려간다. 별 장비 없이 맨몸으로 이쪽저쪽 돌을 골라가며 두 발을 딛고 두 팔로 잡는 암벽 타기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꽤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조금만 삐끗한 동작이 나와도 위에서 숨 죽이며 내려다보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걱정스럽고 놀란 탄성이 터져 나온다.


"으으어~~!!"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집중하는 순간이다. 무사히 우물 바닥에 도착하면 남아있는 물과 쌓여 있는 찌꺼기들을 바께쓰에 긁어 담고 큰 소리로 신호를 보낸다. 기다렸다는 듯이 위에 있던 사람들이 바로 끌어올린다. 이 작업이 몇 번 반복되면서 우물 속에서는 별별 것이 다 나온다. 숟가락, 젓가락, 대접, 유리구슬. 심지어는 신발짝도 나온다. 마지막에는 잔잔한 돌이랑 찌꺼기 흙까지 다 긁어낸다. 그 사이에도 물은 계속 퐁퐁 솟아나지만 끝까지 마무리를 다하고 그분이 올라오시면 우물 청소가 끝난다. 김치 안주에 막걸리 잔이 돌고 수고했다는 치하가 오가고 위험했던 순간들에 대한 무용담이 무르익는다. 한 나절 정도의 공동작업이 끝나고 모두들 다 돌아가면 다시 조용해진 우물가. 물이 차 오르는 처음 얼마 동안은 흙탕물이다가 몇 시간이 지나면 평소대로 맑은 물이 가득 차 있곤 했다. 물이 얼마만큼 차 올랐나, 얼마나 깨끗해졌나 수시로 달려가 확인해 보는 것도 어린 우리들의 큰 관심사였다.


우리 집 우물 청소는 이웃들이 함께 모여 구경도 하고 도움도 주며 음식도 나누는, 소박한 동네 연례행사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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