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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an 01. 2023

지금, 연애 중입니다. 10

  享有

 힘들었지만 후회는 없다.

 언젠가는 이 제목으로 꽤 많은 글들을 쓸 날이 있을 것이다. 2022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한 글자만 뺀 다른 문장으로 글 한 편을 쓰고 싶다.

 힘들지만 후회는 없다.

 언젠가는 지금 이 시간들을 그래도 좋았던 시간이라고 그리워할 날이 올 것이다. 한 살이라도 젊고 둘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누적되어 온 스트레스에 내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 작년 말이다. 나도 모르게 이루어졌다. 한 달 정도의 휴양 간 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읽을 수는 있었다.

 그때 우연히 읽게 된 브런치 작가 레오 박사님의 글이 많이 도움 되었다. 새 노트를 마련하여 정리 요약해 가며 수십 편의 글들을 정독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읽었겠지만 나의 상황을 나름 객관적으로 정리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결론 내어 주는 처방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답답한 심정이었을 때 장성숙 원로 심리학 박사님의 강의를 YouTube로 만났다. 수평적 인간관계를 이루며 개인의 평등을 중시하는 서구 문화에서 연구 개발된 심리 이론과 해결 방법은 수직적 인간관계 속에서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에서는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 현실을 직시하되 우리 문화에 맞는 해결 방법을 탐색해야 한다. 명쾌한 설명이었다.


 고매한 신학자분들의 영성 강의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나의 성장에 유익이 된다. 상황 그 너머에 있는 하느님의 뜻을 읽으라.  아버지 하느님, 그리스도 예수님, 도움 주시는 성령님이 나와 함께하시니 가능한 일이다.

 부족하고 흠 많은 내가 지금 여기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는 체험이 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어떠한 상황이나 여건에서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소망하는 이 가능하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

 그중에서도 자비에 대한 설명이 가장 와닿았다. 자비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말한다. 자비와 반대되는 개념은 판단이다. 어떤 판단이든 상대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다 듣기 전에 내리는 판단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세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 친구들의 무조건적인 공감과 지지 격려, 다정한 이웃들의 위로와 기도, 시댁 친정 형제들과 친척 지인들이 아낌없이 보내주는 정성. 참으로 많이도 받았다. 힘든 것은 변함이 없지만 내가 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 당위성과 가능성을 확인해 주는 표징들이었다.


 심리 상담실도 찾았다. 부부심리상담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박사님의 진료를 신청했다.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심층심리검사와 1회 심리상담을 받았다. 나 혼자 갈 수밖에 없는 부부심리상담이었지만 나에게는 필요한 작업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1월, 구두로만 설명 들었던 심리검사 결과를 다시 검토해 보고 싶었다. 전화로 문의했더니 심리평가보고서를 프린터해 줄 수 있다고 한다. 받아온 프린트물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어디서 무엇이 삐끗했는지, 지금 이 자리를 어떻게 유지하는 것이 최선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기본적으로 인지적 정서적 자원이 풍부하고 자아 강도와 탄력성이 높아 스트레스 인내력이 높은 편으로 여겨짐.

 그러나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나 욕구에 민감하지 못해 부부관계에서 경험한 정서적 상처나 고통이 제때 다뤄지고 소화되지 못한 채 지나갔을 가능성이 크겠음.

 화를 내는 것이 적절할 때조차 화를 내지 않다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분노가 표출될 수 있음.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불안 수준이 낮은 편이어서 걱정과 불안감이 많은 배우자를 이해하기 힘들고 이로 인해 공감적 소통에 제한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됨.

 W의 낙관적이고 대담하고 때로 위험에 둔감한 면이 배우자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을 가능성이 고려됨.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선호하는 W에게 H의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성향이 매우 위협적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여겨짐.


 보고서의 첫 장 머리말도 읽고 또 읽어 본다.


 본 보고서는 내담자가 자신을 돌아보고 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현재 심리 상태를 기술하고 성격 특성을 살펴보는 기초 자료입니다.

 고객님 스스로 자신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자신에 대해 숙고하는 계기를 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부부간 갈등에서 누가 잘잘못인지 누가 갈등의 원인 제공자인지 등을 판명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 드립니다.

 아래 기술된 내용들은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신에 대한 변화 불가능한 판단/ 평가가 아니라 나의 마음, 심리 구조에 대한 과학적 가설들이며 '이해의 틀'입니다.


 일주일에 한 편씩의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 2022년의 마지막 날, 올해의 쉰두 번째 이렇게 올릴 수 있는 것도 작은 기적, 격려, 행운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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