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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an 08. 2023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주님 축복 가득하기를 ᆢ

 2022년 12월 31일 오후 8시.

 송구영신 감사미사.

 말씀의 전례, 신부님의 강론 시간이다.    

 "제가 일 년 동안 이 자리에서 참으로 많은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어떤 말은 하느님의 음성으로 들렸을 것이고 또 어떤 말은 악마의 속삭임으로 들렸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잠깐 동안 각자가 침묵 속에서 직접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으로 하겠습니다."

 신부님의 깜짝 멘트에 모든 신자들이 벙긋 웃음을 머금었다. 신부님도 긋이 웃으신다.

 뒤이어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미사가 끝난 후 바로 송구영신 감사음악회가 이어집니다."

 사실인즉 음악회 시간을 좀 더 확보해 주시기 위한 배려이다.


 코로나로 인해 3년간 축소, 정지되었던 성당 행사들이 원상 회복되었다. 대림절 특강, 성탄 자정 미사, 송구영신 미사 등이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아직은 미흡한 신자들의 참여율을 예전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올해에는 두 가지 행사가 추가되었다.


 미사 시작 전, 각 단체의 봉사자들을 중심으로 본당 모든 신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뷔페 차림 저녁식사가 제공되었다. 준비한 삼백 명 분이 남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모두를 행복하게 했다. 1층 카페에서는 고품질 콜롬비아산 커피와 차, 음료들이 무료로 제공되었다. 삼삼오오 자유롭게 모여 앉아 음식을 함께하며 지나가는 교우들과 인사 나누기에 바빴다.


 미사 후에는 송구영신 감사음악회가 열렸다. 현악기가 없이 관악기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인 윈드 오케스트라가 초빙되었다. 사십여 명의 단원들이 무대가 된 제대 위를 꽉 메웠다.

 치유의 시간, 희망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신부님의 인사 말씀에 이어 임형진 지휘자가 서두를 열었다.

 "대화가 있는, 편안하게 즐기는 음악회를 같이 누려 봅시다. 첫곡은  센츄리온, 로마 백부장의 믿음과 군인으로서의 패기로 새해를 엽시다."

 ㅡA Centurion, 백부장.

 로마 군대의 백 명으로 조직된 단위 부대의 우두머리. 교회 초창기에 사도 베드로가 카이사리아에 와서 로마군 백부장 코르넬리우스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는 이방인을 교회로 받아들인 극적인 사건이었다.ㅡ

 이어서 레미제라블, 까밀라,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한국민요 모음곡, 영화 음악 The Rock, 비틀스의 Yesterday 등이 연주되었고 마지막 곡으로는 대학생활의 낭만과 패기, 희망을 품고 있는 롤스로이가 장엄함을 자랑했다.

 열렬한 박수 끝에 앙코르곡으로 헨델의 할렐루야와 비엔나 신년음악회 고정 앙코르곡인 라데츠키 행진곡이 연주되었다.

 "몇 년 만에 이렇게 박수를 받아보는지 감개무량합니다."

 상기된 표정으로 땀에 흠뻑 젖은 지휘자님의 이 말에 또다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거의 두 시간 가까운 긴 음악회가 끝났다. 시간은 2022년의 마지막을 향해 쉬지 않는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성전 문 앞 로비에는 뜨끈뜨끈 큼직한 콩백설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쏟아져 나오는 교우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는 봉사자들의 손길이 바빴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경쾌했다. 조금은 식어 아쉬웠지만 야심한 밤, 경비실을 지키고 계시는 아저씨께 떡을 내어드리니 반갑게 활짝 웃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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