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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an 15. 2023

보고 싶은 얼굴 2/3

  질풍노도의 시기

 삼십 센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카페 바로 옆자리가 꽤나 시끄럽다. 여자 둘에 남자 한 명, 남자와 여자 한 쌍이 한쪽에 앉고 맞은편에 다른 한 여자가 자리 잡았다. 혼자 앉아 책을 읽으며 눈길을 주지 않았기에 그냥 평범한 젊은이들이려니 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대화가 예사롭지 않다. 마주 혼자 앉은 여자애의 입에서 년, 놈자가 들어가는 단어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런 공공장소에서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존나, 씨팔, 다른 비속어들도 마구 섞인다. 나란히 마주 앉아 있는 한 쌍은 그 말들을 따라 하며 웃고 동조하고 비위를 맞춘다. 주위는 모두 조용하고 거의 혼자서 컴퓨터 작업들을 하고 있는 분위기인데 전혀 상관하지 않고 목청이 높다. 남자애와 옆에 앉은 여자애가 서로 사귀고 있는 한 쌍이고 맞은편, 거침없이 상스러운 대화를 주도하는 여자 아이가 이 셋의 리더인 모양이다.


 연이어 거침없이 욕이 이어지길래 고개를 들어 잠깐 무심한 눈길을 주었다. 어깨에 닿을락 말락하는 머리카락은 희끗희끗 염색되어 있다. 바로 옆자리의 두 명에게까지 시선을 돌릴 수는 없었다. 다시 내가 읽던 책으로 고개를 숙였다. 당장 태도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거침없이 함부로 욕을 달고 있던 말씨는 조금 누그러진 듯하다. 셋 모두 고3인 모양이다.

 계속 비어를 써 가며 같이 핸드폰 앱을 한참 검색해 대더니 졸업 선물로 팔만 원 짜리 액세서리를 사 달라고 남자애에게 요구한다.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순둥이로 보이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애는 자신의 귀가 시간이 열 시로 늦추어졌다고 말을 돌렸다. 앞에 앉은 여자애가 그럼 바로 노래방으로 가자고 제의한다. 셋이 이마를 맞대고 어느 노래방엘 갈 건지 검색하느라 바쁘다.

 조용한 카페 안, 모두 연상인 다른 고객들은 안중에도 없이 거친 메너로 예의 없이 서로를 대하고 있다. 바로 눈앞에서 그 현장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이제 중3, 고2가 되는 두 딸을 키우며 힘들어하는 첫째가 떠올랐다. 손녀들의 학교 생활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 던져진 학업도 학업이지만 교우관계에서 겪는 갈등도 넘기에 벅찬 큰 파도인가 보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영웅>에서와 같은 일도 벌어지고 교사와 학부모는 그 일에 개입하지 못한 채 비켜나서 속만 태우기도 한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과 그 가정의 고통이 크다. 25명 중에 1명 꼴로 있다는 소시오패스에 대한 이론들도 분분하다. 전화를 통해 이런 사연들을 전해 들을 때 내 마음도 많이 무거워진다. 학폭을 다룬 웹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 폭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이다.


 "아이들에게는 건강한 가정이 가장 큰 힘이 된다. 너랑 김서방이 잘하고 있으니까 잘 극복할 거다."

 "필요하면 심리 상담실도 활용해 봐라."

 격려의 말로 전화를 끝내지만 학업과 교우관계로 갈등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고민하는 부모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무겁다. 모든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기를 염원하는 간절한 화살기도를 바치는 것밖에 달리 도움 줄 일이 없다.


 둘째 외손녀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작년에 겪었던 일이다.

 1학기 기고사, 역사 시험시간. 문제를 다 풀고 답안지에 옮겨 쓰는 과정에서 잘못 미루어 쓴 것을 발견했다. 선생님께 새 답안지를 얻어 다시 부랴부랴 옮겨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급박했다. 정신없이 새로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는데 거의 끝내 가는 순간, 마침종이 울렸다. 손녀는 두 개 남은 답을 후딱 옮겨 썼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종이 울린 후 답안지를 작성하는 일은 부정행위에 해당되어 그 과목은 0점 처리된다는 것이다.

 성적에 민감하고 반장을 맡고 있었던 손녀는 충격에 빠졌다. 가족들도 모두 근심에 쌓였다. 한 과목이라도 0점 처리가 되면 특정 고교 진학을 포기해야 되는 실정이었다.

 사십 대 엄마인 딸이 학교로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딸에게서 전해 들은 선생님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그 사정을 충분히 알지만 그렇게 처리하지 않으면 다른 부모들의 항의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지켜본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0점 처리를 강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십 대의 감수성 여린 소녀시대.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같이 지내며 배우고 노는 학교라는 곳이 이런 곳이었던가? 배려와 아량이라고는 1도 없이 오로지 서로 상대를 경쟁자로만 여기고 내리눌러야만 하는가? 이런 처우를 받으며 다니는 학교와 친구, 선생님을 과연 아이들은 사랑하고 아끼고 존경할 수 있을까?

 결국 손녀의 역사 점수는 0점 처리되었고 특별고를 희망했던 꿈은 접었다. 전화 위복,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조심하자는 걸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끝을 맺었다. 많이 안타까웠다. 상처 입은 손녀가 가여웠고 지켜보며 힘들어하는 딸이 안쓰러웠다. 날카로운 눈으로 학우를 관찰하며 고발하고 엄마들을 통해 차갑게 감시하는 학교라는 곳이 살벌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것이 과연 정의 구현이며 준법정신 함양일까? 세계 경제 규모 한자리 숫자 안에 드는 선진 조국에서 물질적으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풍요를 누리면서 정신적으로는 이리 살벌한 곳에서 자라야 하는 청소년들이 과연 마음 둘 곳이 어디인가? 걱정스럽기만 하다.


 6년 전, 성당 다음카페에 실렸던 큰손녀의 글 한 편을 꺼내 본다.


 방배4동 성당 한마음 여름 캠프 후기

          갈산 초등학교 5학년 김 헬레나


 나는 외가댁 가족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 이모부, 사촌 동생 둘) 그리고 우리 가족 네 명과 방배4동 성당에서 주최한 '한마음 여름 캠프'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별 기대를 안 하고 갔지만 막상 다녀와 보니 꽤 보람이 있었다.


 첫째 날에는 5시 30분에 도착해 그 즉시 저녁을 먹었다. 원래는 좀 더 일찍 도착해 강당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받아야 했는데 우리 가족은 동생의 일정으로 인해 늦게 도착하였다.

 그다음에는 레크리에이션이 진행되었는데 평화방송 DJ인 김용주 님께서 진행해 주셨다. 주로 모든 모둠원들이 화합하고 마음을 모을 수 있는 놀이 등을 많이 한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끼리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니 재미있었고 같이 있던 분들과도 더 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잠들기 전까지 이모 가족들 방에서 사촌 동생들과 그림도 그리고 재미있게 놀았다.


 둘째 날에는 7시쯤 일어나 30분간 미사를 드렸다. (세부적인 부분은 생략) 오리엔테이션 후 우리는 포스트 게임을 진행했다. 총 8개의 포스트가 있었는데 각각 목걸이 만들기, 노래 제목 맞추기, 활쏘기, 제기차기, 투호 던지기, 딱지 치기 등이었다. 6개 포스트에서 도장을 받으면 추첨 자격이 주어지는데 우리 아빠가 운 좋게 뽑히셔서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그려져 있는 손거울을 받았다. 이 활동이 끝나고 점심 식사 후 우리는 다 같이 야외 수영장으로 갔다. 특히 우리는 외가의 세 가족이 모였기 때문에 속해 있는 사람이 많았고 그 덕분에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너무 재미있었던 나머지 나는 물놀이하는 4시간이 10분으로 느껴졌다.

 아,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는 김용주 님 (첫째 날의 레크리에이션 맡아주셨던 분,  위 참조)께서 캠프 파이어를 진행해 주셨는데 나는 가는 길에 발목을 다쳐 자세히 보지 못했다. 그래도 캠프 파이어를 한 이유는 이 캠프에 참가한 사람들을 더 화목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마지막 날이 밝았다. 평소처럼 아침을 먹은 후에 보물찾기 행사에 참여했다. 하지만 너무 꽁꽁 숨겨 놓아서 묵주 두 개밖에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묵주가 아주 좋은 것이다.) 그다음 미사를 1시간 동안 드리고 점심 식사를 한 후 집으로 출발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좋은 캠프였다.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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