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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an 21. 2023

보고 싶은 얼굴 3/3

  에바 부인

 <데미안>. 중학교에 입학하자 읽어야 할 고전의 첫손가락에 꼽혔다. 여러 번 도전했지만 매번 앞부분 몇 장만 읽다 멈추곤 했다. 싱클레어가 말하는 어두운 세계와 밝은 세계, 그 부분까지만 겨우 읽고 헤매다 책장을 덮고 또 덮곤 했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한 채  넘기다 결국 멈추는 일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언제였을까? <데미안>을 끝까지 다 읽었던 때는. 어느 날 무엇에 홀린 듯 폭 빠져 끝까지 다 읽었다.


 주인공인 데미안이나 화자인 싱클레어보다 훨씬 매력적인 존재로 다가온 인물이 있었다.

 에바 부인.

 데미안의 어머니, 싱클레어의 이상형 여인, 황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나아가야 할 정신의 지표.


 지금도 그렇지만 치밀한 독서 계획이나 깊이 있는 독해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닥치는 대로 문학 서적들을 남독하던 시절이었다. 에바 부인이 강렬하게 내 마음속의 이상적인 어머니상, 여인상, 인간상으로 새겨졌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갖추었다는 묘사가 왠지 마음에 와닿았고 홀로 자신의 자리에서 깊이 뿌리내리고 독립적으로 우뚝 서 있는 존재라는 것이 믿음직스러웠다.


 막연히 어머니라는 인격은 저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린 내 마음에 깊이 자리 잡았다.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일방적으로 공급받으며 의존해 왔던 모성의 테두리. 그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호기심과 열정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 자식들.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나 빚진 마음 따위는 없어야 한다.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진지한 모색과 탐구가 필요할 뿐이다.


 멀리멀리 꿈을 찾아 세상으로, 사람들 가운데로 나아가지만 지치고 피폐해지면 언제든 돌아와 갈증을 해결하고 허기를 채워 다시 비상하는 자식들의 영원한 안식처, 어머니.

 알을 깨고 나와 훨훨 날아오르는 새가 되는 비상을 경험하는 험하고 먼 길을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할 때 어떤 결핍도 없이 편안히 맞아주고 떠나보내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표본을 보여주는 사람이 에바 부인이었다.


 종종 생각했다. 에바 부인 같은 어머니가 되고 싶다고. 언감생심, 그 꿈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삶을 살아왔지만 아직 나의 꿈은 퇴색되지 않은 채 에바 부인을 향하고 있다.

 내가 머무는 곳이 아이들의 베이스캠프가 되기를 원한다. 필요하면 머물고 때가 되면 언제나 꿈을 좇아 한 발 한 발 내딛는 시발점이 되는 곳, 따뜻하고 안온한 공기가 머무곳, 그런 베이스캠프로서의 어머니, 부모, 고향이 되고 싶었다. 언제이든 기어이 이루고 싶은 영원한 나의 꿈이며 저 멀리서 은은히 빛나고 있는 내 삶의 목표이다.


 그 꿈이, 희망이 가치 있고 소중한 이유는 보고 싶은 얼굴들 때문이다. 나의 아이들과 그 배우자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 때문이다.

 그들과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편히 숨 쉴 수 있는 곳, 험한 세상에서의 비교 경쟁과 질시가 없는 아늑한 곳, 힘든 마음을 내려놓는 안식처.

 그곳의 안주인, 굳건히 그곳을 지키는 에바부인이 되려 하는 나의 귀한 꿈을 언제까지나 소중히 잊지 않을 것이다.


 이 꿈을 간직하는 데는 모교의 교훈도 한 몫 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첫시간이면 480명 전교생이 다함께 운동장에 모여 좌우 반듯하게 줄을 섰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고 외부 각종 행사에서 수상한 학생들이 연단에 올라가 상을 받고 학교 전체의 뉴스를 전해 듣는 시간. 매서운 바람이 외벌 교복을 파고드는 추운 겨울이건 따가운 땡볕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더운 여름이건 그대로 다 받아내야 하는 학교 운동장. 차렷, 열중 쉬엇. 똑 바른 자세로  시간 가까이 곧게 서 있어야 했.

 마지막에는 전교생이 다함께 목청껏 교훈을 암송하고 교가를 제창했다.


  겨레의 밭

              청마 유치환

 억세고 슬기로운 겨레는

 오직 어엿한 모성에서 이루어지나니

 이 커다란 자각과 자랑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갈고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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